49화. 세상과 나 사이

늦되었다는 말 앞에서

49화. 세상과 나 사이

소제목: 늦되었다는 말 앞에서
필명: 기억을 꿰매는 사람 황미순

저학년 시절,
지금 생각하면 별것 아니었던 일들이
그때는 큰 굴욕처럼 느껴졌다.

나는
몸이 약했고, 자주 아팠고,
뭐든 남들보다 조금 느렸다.

국민학교 교실 한구석,
늘 ‘나머지 공부반’에서
줄넘기 연습도, 받아쓰기 복습도
혼자 남아하곤 했었다.

가을 햇살이 교실 바닥에 기울고
친구들 목소리가 운동장 멀리서 들려올 때
나는 아직 책상 앞에서
‘세 번째 다시 배우는 것’을 하고 있었지.

어쩌면 선생님의 설명이 어려웠던 게 아니라
그때 내 마음이
이미 위축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쉬는 시간에도
딱히 먼저 다가가 친구를 만들지도 못했고,
‘놀자’고 말 한마디 꺼내는 것도
머릿속에서 수없이 연습해야 했던 아이.

나는
나보다 먼저 자라고 먼저 웃고 먼저 뛰던 아이들을
멀리서 바라보는 걸로 충분했다.
그런 나에게
‘늦되었다’는 말은
마치 조용한 낙인처럼 들렸다.

누군가는 나를 다그쳤고,
누군가는 ‘괜찮다’며 웃어주었지만,
그 누구도 내 마음속 속도까지
기다려주진 않았다.

**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그때를 떠올리면
“괜찮아, 천천히 해도 돼.”
하고 말해주고 싶다.

너무 느려서
아무도 몰래 울어야 했던 그 시절의 나에게.

지금 생각하면
학교는 그저
조금 시끄럽고
조금 무심한 공간이었을 뿐인데,
그땐 왜 그렇게
모든 게 내 탓 같았을까.

그런 날들이 지나고,
나는 조금씩 커졌고,
혼자 남는 시간에도
마음의 서재만은 자라났던 것 같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기억을 꿰매며 쓴다.
그때의 나에게
조금 더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주고 싶은 마음으로.


---

#해시태그

#세상과나사이 #기억을꿰매는사람 #황미순작가 #브런치연재
#저학년의굴욕 #늦되었던아이 #나머지공부반
#천천히자란아이 #위축된마음 #어린시절기억
#괜찮아천천히가도돼 #위로하는글쓰기

매거진의 이전글48화. 세상과 나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