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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웃긴 게 제일 웃겨

31화 – 창고 열쇠 복사 대작전


경보기가 달린 이후, 창고 문은 마치 군대 무기고처럼 굳게 잠겼다.
농기구 하나 빌리려면 집주인아저씨한테 전화를 해야 했고,
아저씨가 오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못 했다.

문제는…
아저씨가 가끔 전화를 안 받는다는 거였다.
농번기라 밭에 나가면 아예 전화기 진동을 꺼두는 모양이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세입자들 사이에 자연스레 불만이 쌓였다.
“삽 좀 쓰려는데 3시간 기다려야 한다니까!”
“빗자루 빌리려면 농사 끝날 때까지 기다리래… 그럼 가을에나?”

그때 102호 아저씨가 조용히 속삭였다.
“나, 열쇠 하나만 있으면… 복사할 수 있는데?”
101호 아주머니 눈이 반짝였다.
“좋아. 근데 열쇠를 어떻게 구해?”

문득 모두의 시선이 나한테로 향했다.
왜냐면 103호인 내가 집주인과 제일 친했고,
며칠 전 보일러 점검 때문에 아저씨가 창고 문을 열어줬거든.

그날 저녁, 나와 102호 아저씨, 101호 아주머니는 은밀한 작전을 세웠다.
“내일 아침에 아저씨 오시면, 내가 슬쩍 열쇠를 빌려서… 복사해 올게.”
“혹시 들키면?”
“그땐… 삽이 급하다고 둘러대면 되지!”

다음 날, 아저씨가 마당에 나타났다.
나는 태연하게 말했다.
“아저씨, 삽 좀 빌려주실래요?”
아저씨는 창고 문을 열어 삽을 꺼내 주며 열쇠를 문에 꽂아둔 채 다른 농기구를 정리했다.
그때였다.

102호 아저씨가 갑자기 기침을 했다.
“콜록콜록! 저… 물 좀…”
아저씨가 부엌 쪽으로 가는 순간,
101호 아주머니가 번개처럼 달려가 열쇠를 뽑아 내 손에 쥐여줬다.
“빨리!”

나는 열쇠를 손에 쥐고 근처 철물점으로 뛰었다.
철물점 아저씨는 열쇠를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이거… 특수키네. 일반 복사기로는 안 돼.”
“그럼 어떡하죠?”
“시내 큰 열쇠집 가야 하는데, 최소 이틀 걸려.”

이틀? 그 사이에 열쇠가 없어진 걸 아저씨가 눈치채면?
나는 덜덜 떨면서 마을로 돌아왔다.
그런데 돌아오니 아저씨가 마당에서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103호, 너 열쇠 안 봤지?”
“에… 예? 열쇠요?”
순간 뒤에서 102호 아저씨가
“혹시 바람에 날아간 거 아닐까요?”라고 거들었다.

다행히 아저씨는 잠시 헛웃음을 치더니
“내가 문에 꽂아뒀네…” 하고 넘어갔다.
그렇게 첫 번째 복사 작전은 실패로 끝났다.

그런데…
다음 날, 101호 아주머니가 나를 불렀다.
“이거 봐!”
그녀 손엔 반짝거리는 새 열쇠가 있었다.
“어제 내가 시내 나간 김에 복사해 왔다. 이제 우린 자유야!”

그 순간, 마치 비밀결사단의 비밀 무기를 손에 넣은 듯 우린 환호했다.
“이제 경보기 울릴 일도 없겠네!”
그날 저녁, 우린 창고 문을 열고 필요한 농기구를 꺼내 쓰기 시작했다.

문제는…
경보기 센서가 열쇠로 열어도 울린다는 걸 몰랐다는 거다.
창고 문을 여는 순간,
“삐! 삐! 삐! 삐!”
그날도 집주인의 트럭, 싼타페, 오토바이, 심지어 마을 이장님의 경운기까지 다시 모였다.

아저씨는 우리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냥… 창고에다 의자 하나 놓고 거기서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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