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꾸러미를 든 아버지
50화. 세상과 나 사이
소제목: 책꾸러미를 든 아버지
필명: 기억을 꿰매는 사람 황미순
아버지는
내가 무얼 하든
그저 바라봐주시는 분이었다.
말없이. 조용히. 멀찍이서.
그러나 늘 가장 가까이 계셨던 분.
국민학교 다닐 적,
외지에서 돌아오시는 날이면
아버지 손엔 언제나
책 꾸러미가 들려 있었다.
내가 책 읽는 걸 좋아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셨던 아버지는
종종 전집을 주문하시기도 하고
장날이나 읍내에서 단행본을 골라오기도 하셨다.
그때 나는 그게
당연한 아버지의 역할이라 믿었다.
내가 좋아하니까,
아빠는 책을 사다주시는 거라 여겼다.
하지만 나중에야 알았다.
친구 집, 친척 집,
어느 집을 가도
그 시절 우리 집만큼 책이 많은 집은 드물었다.
아버지는
내가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한 번도 공부하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그게 어릴 땐 오히려 섭섭했다.
왜 우리 아빠는
“공부 좀 해라”
그 흔한 잔소리조차 안 하시는 걸까.
왜 다른 집처럼
성적에 엄격하지 않은 걸까.
그런데 지금,
내 아이들을 키우는 내가
그때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다.
공부하라는 말을 하기보다
그저 바라봐주는 일이
얼마나 큰 사랑이고
얼마나 깊은 믿음인지
알게 되었다.
억지로 되는 일은 없다는 걸
어른이 되어서야
내가 살아내며 느꼈다.
아버지는
공부를 말하지 않으셨지만,
늘 읽는 사람으로 살아가길
바라셨던 것 같다.
아무 말 없이
책상 위에 놓여있던 책 꾸러미.
그 조용한 응원 하나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
어쩌면 아버지는
나를 ‘키운’ 것이 아니라
내가 ‘자랄 수 있도록’
기다려주신 분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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