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펌프와 물 그리고 작은 시소
우리 집 우물은 어느 날 막혔다.
그 자리에 ‘펌프’라는 것이 생겼다.
이상한 이놈, 그냥은 물이 나오지 않았다.
바가지에 한가득 물을 담아 펌프에 붓고,
손잡이를 힘껏 위아래로 움직여야 물이 솟았다.
처음엔 힘들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게 참 재미있었다.
시소처럼 몸을 실어 손잡이에 올라타기도 하고,
내 작은 손으로도 ‘철컥 철컥’ 소리를 내며 펌프를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아빠가 해놓은 것 옆에 서서 구경하던 나는
어느새 펌프가 놀이기구가 되어 있었다.
온 가족이 물통에 물을 옮겨 담았다.
식구가 많았던 시절, 물은 미리 많이 저장해 놓을수록 편했기 때문에
항상 큰 대야나 통에 하루치 물을 담아 놓곤 했다.
펌프질은 귀찮기도 했지만,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그 시원한 물줄기를 볼 때면 오히려 신이 났다.
펌프질이 놀이가 되기도 했던 그 여름날들.
엄마는 새벽같이 일어나 언니 도시락을 두 개나 싸고
밭일을 나가셨다.
무더운 정오만 집안일을 하시고, 다시 밭으로 향하셨다.
엄마는 강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도 엄마의 심부름을 힘들어도 꼭 해야만 했다.
마당 쓸기, 마루 닦기, 가축들 밥 주기.
특히 토끼우리는 나와 내 동생의 몫이었다.
지천에 깔린 풀을 베어 토끼장에 넣어주는 일.
처음에는 토끼 두 마리였는데, 나중엔 토끼장이 열 개가 넘었다.
그만큼 풀을 베는 일이 많아졌고,
우리는 풀을 찾아 뒷산까지 올라가야 했다.
아침에 눈 뜨면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바로 토끼풀 뜯으러 가는 일이었다.
(6화 – 풀밭에서 배운 낫질과 토끼들》
“풀을 베는 일은 은근히 재미있었다.
아빠는 조심하라고 했지만,
난 감각적으로 낫질을 익혀갔다.”
여름 아침,
작은 손에 낫을 쥐고
동생과 함께 들로 향하던 기억.
풀을 베고, 토끼장에 넣고,
토끼들이 그 풀을 우물우물 먹는 모습에
지친 마음도 스르륵 풀리곤 했죠.
그 시절 아이들은
일을 놀이처럼 배우고
노동 속에서 삶의 리듬을 익혔습니다.
귀여운 토끼와 풀밭의 냄새,
해 질 녘 돌아오며 느끼던 뿌듯함까지—
《마루 끝에서 본 세상》 여섯 번째 이야기에서
그 따뜻한 여름날로 함께 걸어가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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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순이의 오래된 기억 조각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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