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냉이 캐던 날
《냉이 캐던 날》
《마루 끝에서 본 세상》 2부, 제20화
이른 봄,
아직은 바람 끝이 매서운 날씨였지만
들녘에는 여인들의 모습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겨우내 저장해 둔 김치와 묵은 반찬에
익숙해질 만큼 익숙해진 우리의 식탁.
그 속에 싱그럽게 들어와 주는
첫 번째 봄,
그것은 ‘냉이’였다.
엄마도 할머니도
그날은 바구니를 들고 너른 들판으로 향하셨다.
초록이 채 올라오지 않은 밋밋한 논두렁과 밭고랑 사이,
엎드려 자세히 봐야 보이는 작은 풀,
그 속에 숨어 있는 봄의 보물.
나도, 현미도, 상숙이도, 정숙이도
그날은 아이답지 않게 진지했다.
고무줄놀이도, 소꿉장난도 잊은 채
바구니 한가득 채우기 위해
우리도 손을 부지런히 놀렸다.
할머니들은 손끝으로 냉이의 줄기와 뿌리를 살피며
언제나처럼 정확하게 골라냈고,
엄마들은
“이건 아니여~ 쓴 거야~” 하시며
우리의 바구니를 슬쩍 정리해 주셨다.
그 들판은 어느새
여인들의 조용한 속삭임과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채워졌다.
햇살은 조금씩 따뜻해지고
냉이 냄새가 손에 배어가던 시간.
우리는 그날,
냉이를 캔 게 아니라
봄을 처음 손으로 만졌던 것이리라.
어린 날의 봄은 그렇게
논두렁 냉이 향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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