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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정 Aug 20. 2020

Broken Heart Syndrome

남편과 사별한 한 환자로 인한 상념들

나의 환자 한 분이 심장 초음파상 Takotsubo cardiomyopathy 소견이 보인다고 했다. 중환자실로 옮겨 온 후 아직 오리엔테이션 기간이라 퇴근 후 그 날 업무를 돌이켜 본다. 공부가 더 필요한 부분은 짧게나마 책이나 인터넷을 찾아 정리하고, 시간 관리나 인간관계 등등 좀 더 나아질 수 있는 부분도 기록해 두는 편이다.


'Takotsubo'는 문어를 잡는 덫을 지칭하는 일본어이다.
cardio/myo/pathy : cardio(심장), myo(근육), pathy(병증) 즉 '심근병증'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심장의 펌프질에 주요한 역할을 하는 좌심실이 풍선 부풀 듯 부풀어 그 문어 잡이 항아리와 같은 형태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Broken Heart Syndrome' 또는 'stress-induced cardiomyopathy' 라고도 불린다. 그 이유는 주로 극심한 정서적 또는 신체적 스트레스 후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갑작스러운 질병이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 큰 사고 또는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 등을 들 수 있다. 하버드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보고된 사례의 90% 이상이 58세에서 75세 사이의 여성이었고, 대부분은 장기적인 심장 손상을 일으키지 않고 회복된다. 하지만 5% 정도의 환자는 심장마비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https://www.health.harvard.edu/heart-health/takotsubo-cardiomyopathy-broken-heart-syndrome


60대 초반인 나의 환자분은 이전부터 심장박동기를 가지고 있었으나 평소 건강히 생활하던 분이셨다. 한 달 전 남편과 사별 후 심적으로 매우 힘들어하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신장에 염증이 생겨 신장과 방광을 연결하는 스텐트(튜브)를 삽입하는 수술을 받으셨다. 모든 수술에는 위험성이 있지만 아주 큰 수술은 아니다. 하지만 그 수술 후 갑작스러운 패혈증 증상을 보여 중환자실로 온 경우였다.


Sepsis (패혈증) : 혈액이 인체에 침입한 세균에 감염됨으로써 나타나게 되는 전신성 염증반응 증후군을 의미한다. 빠른 시간 내에 사망할 수 있다.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참조)


인공호흡기와 진정제 투여 등으로 부르면 겨우 눈을 뜨는 정도의 의식 수준이었다. 치료에 호전이 없어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궁금했다. '주요 요인이 수술 그 자체였을까? 아니면 남편과의 사별 후 아픔이었을까?',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으면 심장이 상할 정도였을까?', '남편분이 살아 계시는 동안 정말 사이가 좋았을까? 아니면 서로 많이 미워하셨을까?'


한국에서 몇 년간 진료 전 상담 간호사로 일한 적이 있었다. 환자들의 방문 목적과 가져온 자료들을 정리한 후 교수님 진료 방으로 보내는 것이 주요 업무였다. 정말 60,70대 여성분들이 배우자와 사별 후 심한 두통 또는 일시적인 심한 건망증으로 오시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었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나의 직권을 남용(?)하여 똑같은 질문을 했었다.

부군 되시는 분과 사이가 굉장히 좋으셔서 돌아가신 후 많이 힘드셨습니까?


나의 예상을 깨고 대부분의 대답은 '아주 사이가 좋지 않았다'였다. 대부분 MRI 검사를 하거나 치매검사를 할 것이기 때문에 나의 기록이 큰 의미는 없었다. 하지만 귀한 시간을 썼으니 교수님께도 참고가 될까 하여 이런 정도로 기록을 남겼다.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부군과 사별 후 매우 힘드셨다고 함'


하루는 교수님께서 나의 방을 지나치시며 그 기록에 관해 언급하시기에 내가 물었다.

"심한 경우엔 죽지 못해 살았다고 하신 분들도 계셨는데 돌아가시고 난 후 왜 그렇게 마음이 아프셨을까요?"

"김 간호사, 아직 젊고 결혼을 안 해서 잘 모르는군, 사이가 아주 좋았던 부부는 말이야. 사별하고 다시 결혼할 수도 있어. 그런데 서로 못 죽여 안달이었던 부부가 더 마음이 아픈 법이야"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 아닌가 싶다. 삶의 많은 부분이 그러하듯 잘했던 것보다 못했던 것에 더 미련과 후회가 남을 테다. 누구인들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해 노력하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그 노력으로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일 것이다. 나는 마치 사별 후 '절절한 그리움'만이 아픔이라 여겼던 모양이다. 또한 '사랑'에 있어서만은 엄청난 '모순'을 바라고 있었나 보다. 함께 있는 동안 어떤 이유로든 서로 힘들었다면 사별 후에는 훌훌 털어 버릴 수 있기를... 함께 사는 동안 힘들었는데 사별 후 조차 미련과 후회로 병까지 얻는다면, '사랑'에 있어서 너무 가혹한 대접을 받는 것 같아서 말이다. 마치 한 순간도 행복할 권리가 없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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