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COVID-19으로 사망한 환자의 약 40% 이상이 Quebec 주에서 나왔고, 몬트리올은 가장 심하게 타격을 받은 도시였다. 안타깝게도 장기요양원 노인들의 많은 목숨을 앗아간 후에 이곳에도 규제가 풀리기 시작했다. 6월 25일경부터 식당과 쇼핑몰 등이 다시 문을 열었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최대 50명까지 모일 수 있도록 규제가 완화되었다.
그 규제 완화의 일환으로 간호사들의 부서 간 이동도 가능해졌다. 올해 3월 예정이었으나 COVID-19으로 인해 무기한 연기되었던 나의 중환자실 발령이 다시 2주를 남겨 둔 시점이었다. 병동에서 Day 근무를 마치고 퇴근했는데 아주 경미한 몸살 증상이 있었다. 바빠서 조금 피곤했나 보다 여길 정도로 경미했다. 저녁 잘 챙겨 먹고 타이레놀을 복용하고 잤더니 몸이 가뿐해서 다음날 근무도 무사히 마쳤다. 별 증상 없이 편안히 잠들었는데 한 밤중에 갑자기 근육통, 복통과 더불어 이가 덜덜 갈릴 정도로 오한이 왔다.도저히 안될 것 같아 call in sick (전화로 아프다고 결근을 알리는 것) 마저 겨우 했다. 타이레놀을 복용하고 극심한 오한은 가셨지만 다음날까지 열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그 당시 병동에 코로나 양성 환자는 없었지만 음성 환자를 모두 음성으로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간호사였기 때문에 병원 정책에 따라 COVID-19 center에 증상을 알려야 했고, COVID 검사를 하러 나오는 것 외엔 자가 격리를 하라고 했다. 내가 너무 힘들어서 응급실에 가고 싶다고 했더니 호흡기 증상이 없으므로 병원은 방문하지 말라고 했다. 병동에서도 지침을 따르라고 했다. 열이 떨어지지 않고 점점 심해져서 복통, 오심, 설사가 동반되었다. 한 차례는 화장실을 다녀오다 심하게 어지럽더니 침대에 와서 누웠다고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마룻바닥에 진땀을 흘리며 누워있었다. 깜빡 정신을 잃었던 모양이다. 기력이 없던 중에도 정신을 차리면 응급실에 가려고 center에 연락을 취했으나 통화가 힘들었다. 힘들게 통화가 돼서 나의 증상을 설명해도 돌아오는 답은 똑같았다. 심지어 나의 family doctor 조차도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진료를 봐줄 수 없다고 했다.
얄팍한 간호사 경험으로 나의 증상은 장염 같았다. 내가 특별히 장염을 일으킬 만한 음식을 먹지는 않았지만 병동에 장염 증상이 있는 환자나 직원이 한 명만 있어도 옮을 수 있으므로 충분히 가능성은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 증상 일 수도 있었다. 북미 쪽에서는 코로나 확진 환자들이 호흡기 증상을 보이기 전 소화기계 증상이 먼저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은 기침, 몸살 또는 장염 증상을 보이면 몸 값이 부쩍 올라 검사 결과 나올 때까지 나처럼 코로나 환자 대접(?)을 받는다.
그렇게 코로나 검사를 기다리느라 이틀, 검사 후 결과를 기다리느냐 또 이틀이 흘렀다. 코로나 의심 증상으로 자가 격리 중이니 병원의 동료를 부를 수도 없고 장염이라 생각하고 아무것도 먹지 않고 수분만 끊임없이 보충했다. 결국 코로나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다. 아주 조금씩 호전되었지만 5일 정도 전혀 먹지를 못해 육안으로도 살이 빠진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코로나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오자마자 병동에서 출근을 해 달라고 전화가 왔다. 공식적으로 연이어 쉬는 날이었지만 평소의 나였다면 내가 근무하지 못한 이틀을 채우기 위해서라도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도저히 일을 할 정도의 기력은 없어서 정중히 거절을 하고 푹 쉬었다.
나의 성격은 좋게 보자면 올곧고, 나쁘게 말하면 고지식해서 병원 정책을 시키는 대로 따랐지만, 내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연락을 준 동료가 말했다. 다음부터는 그런 일이 있으면 COVID center에 연락하지 말고 병원을 데려가 줄 테니 자기한테 연락을 하라며 너스레를 떠는 모습이 진심 고마웠다. 그 친구는 여기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나와는 코로나 확진 환자 간호를 위해 함께 파견을 나갔었다. 그 친구가 퀘벡의 공공의료시스템이 너를 죽이면 어쩌려고 그렇게 바보같이 집에 박혀 있었냐고 물었다. 자기는 목에 뭔가 이물감이 있으면서 열이 났었는데 center에 연락했더니 자가 격리하라고만 해서 바로 응급실로 갔단다. 한참을 수다스럽게 이야기하는 것도 정겹게 느껴지고 다소 흥분된 목소리로 퀘벡의 의료시스템을 비판하는 것 또한 신선하게 다가왔다.
아픈 후 쉬는 기간 동안 이민 후 생활을 돌이켜 보는 계기가 되었다. 문득 글로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처음 쓰게 된 글이 바로 아래의 글이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을 꽤나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본다면 아팠던 것이 순도 100% 나쁘지 만은 않았구나 위안을 삼는다.
현재는 중환자실로 옮겨 열심히 적응 중이다. 새로운 도전이라 일면은 힘들고 또 한편으로는 뭔가를 배우는 기쁨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