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미정 Jul 14. 2020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니?

코로나 바이러스 그 이후 - 몬트리올

"잘 지내고 있는 거지?"


고단해서 블로그에 일주일 여 글을 올리지 않았더니 한 친구가 걱정을 참다못해 메시지를 보내왔다. 3월 말경 병원에서 조차 일회용 마스크가 부족한 현실이었다. 당시는 호흡기 증상이 있는 환자들을 보는 간호사들에게만 배급처럼 마스크를 나눠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정부는 예방차원으로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고 연일 보도했다. 마스크를 끼고 길을 가던 중국인과 한국인이 폭행을 당하기까지 한 사건이 뉴스에 보도되었다. 친구는 내가 전한 소식을 듣고 어렵게 말을 건네는 듯했다.


"나는... 그냥 네가 한국 들어왔으면 좋겠다"


그렇게 말해주는 친구조차도 간호사 이기에 그 걱정하는 마음이 전해져 가슴이 뭉클했다. 그런데 그만두고 한국으로 가는 것은 왠지 모르게 최후의 보루를 지키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




개인의 인권과 자유가 그렇게도 소중히 지켜지는 캐나다에서 아무리 팬데믹으로 인한 국가적 위기 상황이라지만, 의료진에게만은 그 소중한 가치를 하루아침에 박탈해 버린 느낌을 받았다. 정부는 병원 노조의 활동을 일시 중단시키는 행정 명령을 발동시켰다. 캐나다의 노조는 직종 불문 한국에 비해 그 영향력이 막강한 편이다. 파트 타이머들은 일시적으로 풀타임 인력으로 전환될 수 있었고, 의료진은 외국을 나갈 수 없도록 정부가 발을 묶었다. 물론 곧 캐나다 전체가 봉쇄되어 버렸지만 말이다.


간간히 외국에서 유입되는 확진자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한국 기사를 접할 때가 있다. 그렇게 보는 의견에 대해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나의 모국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있는 자유를 국가가 제한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너무도 갑갑하고, 감옥 속에 갇혀 있는 죄수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점점 더 상황은 좋지 않은 쪽으로 흘러갔다. 5월엔 장기 요양원 노인들의 사망률이 늘어가면서 확진 환자 간호를 위해 외부로 파견을 다녀와야 했다.


스스로에게 수 만 번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지 되물었다.
많은 고민 속에 내린 답은 그래도 "NO"였다.


캐나다의 공공의료 시스템은 위기 상황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다음에 2002년 SARS처럼 치사율이 높은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온다면 환자를 간호하다 이곳에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여차하면 '밥'도 거르고,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해야 하는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한국은 환자에게는 질 높은 의료 서비스를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지만, 그 속에서 일하는 의료진, 특히 간호사들은 자신들이 누릴 권리를 누리지 못할 때가 많다고 생각한다. 한편 캐나다는 실상 모두 무료도 아니지만, 무상 의료라는 허울과 함께 치료를 받지 못해 죽거나, 치료를 받더라도 질 좋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해 죽을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나는 간호사 일을 좋아하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간호인 것 같아 이 일이 소중하다. 소중한 만큼 잘 지켜내고 싶고, 나를 잘 보살피며 간호사 일을 해 나가고 싶다. 얼마 전 '코로나 영웅 호칭보다 필요한 건 의료 환경'이라는 뉴스 기사를 보고, '캐나다와 한국 의료 시스템의 장점이 양립할 수는 없는 것인가?' 많은 고민을 해 보게 된다.



http://mn.kbs.co.kr/news/view.do?ncd=4491998


작가의 이전글 시행착오와 실패의 경계선상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