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을 결심하고 나면 간호사 일을 계속해가며 영어공부를 병행하기 힘들어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캐나다와 같은 간호사 파트타임 제도가 흔치 않은 한국에서는 일을 계속한다면 주중 40시간 풀타임 근무 또는 3교대 근무를 하는 경우가 많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민 수속 진행을 위해 IELTS나 DELF와 같은 언어 성적을 만들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일과 동시에 가정도 챙기고 언어 연습까지 하는 것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잘 알고 있다.
특히 퀘벡에 오려면 불어도 함께 공부해야 하므로 이민 수속이 진행되는 동안 일을 그만두고 언어 공부에 매진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것이 인생의 이치이므로 어떤 선택이 더 좋다고 말하기 힘들다. 하지만 언어라는 것이 하루 30분이라도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기도 하고 1~2년 이내에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끌어내기 힘든 것 같다. 또한 일을 하지 않으면 이민 수속을 기다리는 동안 재정적인 면에서도 안정되지 못할 것 같다. 그리고 이민 후 일을 구할 때 한국에서의 최근 경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계속 간호사 일을 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더불어 가능하다면 특수 파트 (응급실, 수술실, 중환자실, 투석실) 경력을 한국에서 쌓고 오는 것을 추천한다. 아무리 작은 병원이라도 괜찮다. 이곳에서 일을 구할 때 한국에서 얼마나 큰 규모의 병원에서 근무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캐나다는 철저히 관련 파트 경력이 있는지를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가장 부러운 사람을 꼽으라면 한국에서 특수 파트 간호사로 일을 시작해 2년 이상의 경력이 있는 분들이다. 캐나다에서는 특수 파트 경력을 보통은 2년, 최소 1년 정도 있으면 경력으로 인정하는 편이다. 내가 이곳에서 약 일 년간 종합병원 내과병동 간호사로 근무한 후 중환자실 간호사로 이직을 하게 된 이유는 아래와 같다.
첫째, 처음에 일을 구하기가 병동 경력의 간호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쉽다.
우리나라와 달리 퀘벡은 이곳에서 졸업한 신규 간호사들을 특수 파트에 잘 배치하지 않는다. 그래서 특수 파트에 경력이 있는 외국 간호사들이 언어적인 장벽이 있다 해도 퀘벡에서 갓 졸업한 Bilingual 신규 간호사에 비해 고용 시 우선시된다. 나와 함께 재교육 과정을 이수했던 반 친구들 중에서도 특수 파트의 경력이 있는 친구들이 졸업 후 빠른 시간 내에 같은 분야에서 일을 구할 수 있었다. 몇몇은 영어 실력이 그렇게 좋지 못했지만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하지만 병동의 경우는 특수 파트에 비해 환자와의 의사소통이 훨씬 더 많은 경향이 있다. 그래서 영어뿐 아니라 불어의 중요성도 그만큼 더 강조가 된다. 또한 이곳은 한국에서의 경력이 모두 인정되어 외국인 간호사들에게 퀘벡 신규 간호사들에 비해 훨씬 높은 급여를 지급해야 한다. 시급 차이가 두 배가 되는 경우도 있다. 관리자들의 입장에서는 언어적으로 문제가 없는 신규 간호사들을 교육시키는 것이 더 빠르고 비용 효율적인 면에서 뛰어나기 때문에 신규 간호사들을 훨씬 더 많이 채용한다. 외국인 간호사들을 병동에 입사시킬 때 이러한 이유로 꼭 레퍼런스(추천서)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둘째, 고용 안정성이 훨씬 더 높다.
두 번째 이유는 첫 번째 이유와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다. 이곳은 처음 입사할 당시 내국인, 외국인 상관없이 바로 풀타임 포지션을 얻기는 힘들다. 대부분 Float team (병원의 필요에 따라 다른 부서에서도 근무를 해야 하는 팀) 간호사로 일을 많이 시작한다. 퀘벡에서 간호사가 되면 노조에 의무적으로 가입이 되며 노조의 힘은 한국에 비해 훨씬 더 강하다. 노사의 협약에 따르면 모든 간호사는 2년 이내에 고용 안정성을 얻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쉽게 비유하자면 풀타임 포지션을 약 2년 이내에 얻을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실상은 많은 파트타임 간호사를 뽑아 풀타임 시간만큼 근무를 주며 일하게 한다. 실제로는 풀타임 시간을 근무하지만 풀타임 혜택은 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재정이 탄탄하지 않은 현 상황에서 이 기조는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풀타임 자리가 생긴 경우 선택의 우선권이 seniority에 있다. Seniority는 근무 햇수에 따른 서열을 일컫는다. 예를 들어 신규 간호사가 나보다 6개월 내지 일 년을 먼저 입사한 경우, 나는 한국 경력을 인정받아 월급은 그 간호사보다 많이 받는다. 하지만 seniority에 밀려 풀타임 공석이 생긴 경우 둘 다 지원을 하면 내가 밀리게 된다. 이 부분이 포기를 하면 쉬울 것 같다가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부분인 것 같다. 예를 들어 간호사가 환자의 상태 악화를 발견해 내는 능력은 경력과 많은 연관이 있다. 그러다 보니 경력 간호사인 나는 병동에서 중환을 많이 맡아서 본다. 신규 간호사들은 언어적인 면에서 문제는 없지만 뒤에서 받쳐주며 가르쳐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풀타임 포지션이 생긴 경우 100프로는 아니지만 연공서열에서 밀리게 된다.
이 상황을 불평만 할 수 없는 것이 풀타임 간호사가 되면 많은 혜택을 얻는 반면 병동에 commitement(기여, 헌신)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로 Charge Nurse (책임간호사) 교육을 받은 후 필요시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나는 영어는 괜찮지만 불어만 해야 하는 상황이 종종 있기 때문에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나에게 그 풀타임 자리를 달라고 강하게 주장할 수도 없었다. 이런 이유로 영어만 쓰는 타주로 옮겨 갈까도 많이 고민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먼저 전문성을 길러보고자 타주로의 이동은 보류를 한 상태이다. 특수 파트의 경우 신규 간호사들이 거의 없기 때문에 연공서열 경쟁에서 약간 자유롭고 상대적으로 훨씬 빨리 풀타임 포지션을 얻을 수 있다. 내가 중환자실로 옮겨 온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셋째, 연장근무에 대한 보상이 확실하다.
내가 한국에서 가장 큰 불만이 있었던 부분을 꼽자면 병동에서 최소 1시간 많으면 3시간까지도 연장근무를 해야 할 때가 잦았다. 하지만 그 상황이 CPCR(심폐소생술)과 관련된 상황이 아닌 경우 연장 근무를 인정받기가 쉽지 않았다. 캐나다는 병동의 경우도 연장 근무를 관대하게 인정해 주는 편이다. 하지만 병동의 특성상 환자, 보호자의 요구에 응대하다 보면 응급 상황이 아니라도 일이 굉장히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 시간 관리를 제대로 못했다거나 업무 위임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여겨질 수 있어 매번 연장 근무를 신청하기 쉽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특수 파트의 경우 연장 근무의 이유가 확실한 편이라 승인도 훨씬 쉽고 연장 근무의 가능성도 적다. 내가 한국에 있을 때 기숙사 룸메이트가 중환자실에서 근무를 했다. 같이 출근을 해도 그 친구는 늘 나보다 늦게 나가서 빨리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응급 상황이 생기지 않는 한에서 말이다. 내가 중환자실에 근무해 보니 그때 그 상황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물론 최근 캐나다의 특수 파트 간호사들은 COVID-19에 노출될 가능성이 타 부서에 비해 훨씬 높은 상황이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선택에 장단점은 있다. 하지만 나는 최소한 들인 시간과 노력에 대한 보상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넷째, 업무 위임에 대한 스트레스가 적다.
이 부분은 개인의 성격에 따라 다를 수 있겠다. 병동에서 근무를 하는 경우 LPN(Licensed Practical Nurse); 부 간호사에게 업무를 위임해가며 일을 해야 한다. 병동은 간호사 1인당 간호해야 하는 환자 수가 많기 때문에 부 간호사에게 경구(PO)와 피하(SC) 주사약 투여 및 일정 부분 간호 처치를 일임한다. 하지만 모든 환자 상태 사정에 대한 책임은 RN에게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일을 위임할 때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것이 조금 귀찮았다. 모국어였다면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내과의 경우 약 투여 시 나의 선에서 검사 가능성에 따라 시간을 조정해서 주거나, PRN 약의 경우(필요시 투여 가능한 약) 나눠 줄 수 있는데 이런 것들을 구구절절 LPN에게 설명하는 것이 힘들었다. 차라리 내가 하는 편이 더 빠르기도 하고 내가 했을 경우 또 했다고 말을 해줘야 하니 이래저래 두 번 일하는 느낌이었다. 일을 잘하는 LPN들도 있지만 천성이 게으르거나 똑똑하지 못한 LPN과 함께 일할 경우 확인하는데 에너지가 훨씬 더 많이 들기도 했다. 한국에서 Functional nursing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고 늘 team nursing만 해서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근무하는 병원의 중환자실의 경우 LPN이 없기 때문에 내가 환자를 사정해서 투약과 처치를 의사와 바로 상의할 수 있는 것이 나에게는 잘 맞다.
이번 글에서는 나의 중환자실 선택의 이유와 함께 이민 오기 전 한국에서 경력 관리 시 특수 파트 근무를 한번 고려해 보기를 제안해 보았다. 사실 나는 한국에서 급성기 환자 간호를 하며 지쳐 병원을 사직했다. 그래서 캐나다로 이민을 와서는 호수를 낀 아주 작은 시골 동네의 양로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고 싶었다. 하지만 시골로 갈수록 불어만 쓰는 이곳의 특성상 그 꿈은 적어도 강산이 한 번은 변해야 이루어질 것 같다. 다음 글에서는 한국에서조차 힘들었던 병원 삼 교대 간호사 생활을 이 곳에서 다시 하게 된 이유와 함께 퀘벡의 의료 기관에 대해 설명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