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그 처절한 시간
우울증이라는 걸 알게 된, 어느 날부터 시작된 이야기
홀로 캠핑을 왔다. 정확히 말하면, 홀로는 아니고, 첫째 제외 둘째부터 넷째까지 아이 셋을 데리고 온
나의 홀로서기 도전 첫 캠핑이다.
방도 있고 거실도 있는, 프리미엄 아파트 같은 리빙쉘 텐트 대신
여자 혼자도 거뜬히 칠 수 있다는 돔텐트를 구입하였다. 캠핑장 예약사이트를 매의 눈으로 주시하고 있다가
빈자리가 생기자마자 광클릭을 했다.
비가 온다는데, 오전도 오후도 강수확률 60%. 번개모양도 그려져 있는데
나는 이 캠핑을 강행했다. 강행해야만 했다.
"홀로서기" 도전 중이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검증받고 싶었고 나에겐 혼자 할 수 있다는 증빙자료 같은 게 스스로에게 필요했다.
캠핑 준비와 텐트 설치와 철수는 늘 남편의 몫이었다.
남편 없이 모든 걸 스스로 해볼 수 있겠다.. [이혼] 그까이것, 할 수 있겠다.(있겠다 없겠다 있겠다 없겠다. 사실 분초 단위로 내 생각은 자꾸 왔다 갔다 하고 있다) 내게 가장 큰 걱정과 두려움은 아이 교육 문제도, 생활비를 버는 문제도, 아이넷의 대가족 살림살이를 해내야 하는 것도 아닌, '아 남편이 없으면 이제 캠핑은 못 가겠구나."였다.
헛웃음이 났다. 고작 캠핑... 고작 캠핑.. 이라니. 이것도 내가 홀로서기를 미루고 있는 이유 중 하나이지 않을까. 극복해내고 싶었다. 나의 이 지독한 머뭇거림을. 주저함을. 온갖 이유로 결정을 미루고 있는 답답함을.
다행히 캠핑장에 도착했을 때는 날씨가 맑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미친 듯이 텐트를 쳤다. 꼭 기네스북 기록에 도전하는 사람처럼 타이머를 설정해놓고 심호흡을 하고 시작했다. 딱 30분! 딱 30분이 소요된 것이다. ( 아니 천천히 여유 있게 해도 될 걸, 이것도 과한 나의 목표의식인 것 같다. 내려놓아야 할 것이 참으로 많은 "나"이다.) 곧 긴장이 풀리고 삭신이 쑤셔왔다. 굳이 이렇게 미친 듯이 설치할 필요가 있었을까 급 후회가 밀려왔다.
아이들의 점심을 챙기고, 물놀이를 준비하고, 물놀이 후 샤워와 방방 타임, 그리고 배고프지 않게 바로 삼겹살과 소시지 구이로 저녁 준비까지. 늘 캠핑 때마다 간편한 즉석밥 대신 냄비밥을 고수했기에 홀로 캠핑에서도 코펠에 고슬고슬 냄비밥을 지어내어 아이들을 먹였다. 노트북에 영화를 다운로드하여 저녁에는 극장으로 변신한 텐트 안. 장작불까지는 피우지 못해서 가스레인지로 한 마시멜로 구이였지만, 혼자 이것저것 분주히 움직였던 하루다.
처음엔 참 좋았다. 뭔가 한가롭기까지 했다. 뿌듯했다. 산을 하나 넘은 기분이었다. 절대, 절대 절대 절대 절대 혼자서는 못 할 것 같았던 캠핑. (물론 아직 텐트 철수가 남아있긴 하다. 설치보다 힘든 철수. 그리고 새벽 이 시간 보슬보슬 비가 내리고 있다. 이 캠핑을 '성공'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는 철수까지 마치고 다시 평가를 해보겠다. )
바쁜 와중에 문뜩문뜩 보였던 풍경은 가족단위로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이전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함께 온 사람들의 구성. 친구들끼리만 올 수 도 있겠고 여자들끼리만, 남자들끼리만 올 수도 있는 캠핑인데도 유난히 이번 캠핑은 죄다 가족단위인 것 같았다. 엄마, 아빠가 각자의 역할을 맡고 그 안에서 아이들은 즐겁게 웃고 있는 듯했다. 뭔가 가슴 한 켠이 휑~하였다. 우리 아이들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어쩌나. 아빠랑 함께 왔으면 더 좋았겠다... 생각하고 있으면 어쩌나... 그래서 그 빈자리라도 채워 볼량,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도 사주고, 매점에서 보석반지 사탕도 사주고, 야광팔찌도 사주며 아이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분주히 노력하고 있었다.
정말 걱정하고 채워야 할 것은 내 마음이었다.
아이들의 마음일 거라고 추측하고 신경 쓰고 있던 그 허전함은 사실은 내 마음이었다.
나는 여전히, 남편의 빈자리를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없을까 두려웠고, 마음의 시소는 캠핑으로 인해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쪽으로 기울어 가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건 단지 물리적 외형을 갖춘 가족만이 아니였기에
감히 이혼을 하고 싶다고 선포하고 떠난 캠핑인데, 내 마음은 물리적 외형은 기본으로 갖추고 그 안에 탑재된 따뜻하고 포근한 모습의 가정 소프트웨어를 여전히 꿈꾸고 바라고 있는 것이었다.
아이 넷. 결혼 18년 차. 워킹맘. 모든 것이 평범하지는 않은 나의 이야기.
우울증 극복 에세이가 될까. 홀로서기 성공 이혼 이야기 아니면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잘 살았습니다! 결혼생활 해피엔딩 스토리. 나의 이야기가 어떤 장르로 흘러갈지, 어떤 주제로 흘러갈지 나는 모른다.
과정이 끝난 후의 이야기를 담은 글이 아니고, 지금 시작되는 이 과정을 담고 있으니까.
평범하지 않은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싶지만 사실 또 내 이야기는 아주 평범한 이 시대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나'에 대한 진지한 고민부터 '가족'에 대한 수많은 생각들을, 깊게는 '인생'에 대한 이야기. 그 이야기를 담아낼 예정이다. 43살 순하고 순하기만 했던 엄마이자 여자이자 직장인이자 아내인 나의 이야기가 어떤 결론을 맺을 수 있을지 매일매일의 깊은 갈등의 시간을 글로 담아내고자 한다.
2021년 7월 11일 새벽. 연천 어느 캠핑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