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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Jul 14. 2021

심해로 가라앉아 버린 마음

엄마와 살겠다고 할 줄 알았던 두 아이의 배신. 그 속 마음

마음이 다시 가라앉았다. 며칠 전까지는 싱크홀에 빠진 것 같았는데, 지금은 수만 미터 심해 속으로 가라앉아버린 것 같다. 여기서 난 다시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 엄청난 무게의 수압이 나를 누르고, 어두 껌껌한 두려움이 엄습하고, 무엇보다 여기는 숨을 쉴 수가 없다. 내가 참을 수 있는 숨의 양이 가늠이 된다. 고작 몇 초? 몇 분이겠지. 올라갈까. 그냥 이대로 가만히 있을까. 가만히 있으면... 가만히 있으면, 가만히 가만히 있으면 난 어떻게 될까..... 어떻게 되. 겠. 지.


연례행사처럼 치러지는 이혼 소동이 또 비슷한 패턴으로 흘러가고 있고, 이 지긋지긋한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것 같아 내심 기대했던 마음이 산산조각 깨어지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내 마음은 가라앉아버렸다.

창문을 열고, 방충망도 열었다. 20층 꼭대기에서 하염없이 어두컴컴한 바깥의 반짝이는 예쁜 불빛을 보며 '엉엉' 울었다.... 이번 이혼 소동도 이렇게 끝나 버릴 것 같다는 느낌적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차하면 뛰어내 릴 것 같은 자세로, 마음가짐으로, 방충망이 열린 창문 앞에는 발 딛고 올라서기 딱 좋은 의자도 있었다....( 아니.. 내가 왜 이지경이 된 거지. 내 마음이 너무 무섭고 두렵고 낯설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 마음이 서글퍼서 다시 눈물이 났다. )


나는 아이가 네 명이다. 고1, 중2, 초5, 초1... 17살부터 8살까지. 사춘기를 지나 성숙해지고 있는 어른스러운 아이부터, 북한도 무서워서 못 쳐들어온다는 중2, 아이에서 사춘기로 접어들고 있는 초5, 마냥 철부지인 초등학교 1 학년. 총 9살 터울의 여자아이 네 명. 내 인생을 지탱해주고 있는 힘. 내 결혼생활을 유지하게 만들고 있는 '원흉'.... (아... 이런 단어를 선택하다니! )


이혼을 하게 되면, 통제적이고 가부장적인 아빠와의 오랜 마찰에 시달린 고등학생, 중학생 딸은 무조건 엄마인 나를 따라가겠다고 했다. 그곳이 서울이든, 경기도든, 인천이든 상관없다고. 전학? 그 까이것 한번 더 하겠다고.  이 아이들에게는 사는 곳이 바뀌고, 친구가 바뀌고, 적응했던 학교가 바뀌고, 학원이 바뀌는 것 따위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나 보다. 편안한 집. 쉴 수 있는 가정. 집에 들어왔을 때 흐르는 부드럽고 유쾌한 공기. 청소년 사춘기 딸들이 바라는 집은, 가정은, 이런 모습이었나 보다. 그리고 우리 두 딸들에게는 아빠가 없는 상태의 엄마라면 충분히 그러한 가정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평소에 남편에게 켜켜이 쌓아놓은 감정이 압력밥솥 폭발하듯 터져버린 나는, 일상생활이 마비가 될 정도로 감정 조절이 안되고 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눈물, 훅 올라오는 터질 듯한 감정. 미쳐버린 듯한 느낌으로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울부짖는 모습. 사회에서 쓰고 있는 평온한 모습의 가면은 온데간데없고, 나는 한 마리 야생동물 같은 모습으로 포효하고 있었다. ) 큰딸과 둘째 딸은, 아빠를 포기하면서 엄마가 다시 이전의 생기 있는 모습으로 돌아오고, 웃기고 개구진 유쾌한 엄마. 따뜻한 밥상을 준비해 놓고 맞아주는 엄마, 예쁜 옷을 사주고, 영화를 결제해주고, 조건 없이 필요한 물건을 구매해주는 쿨한 엄마로 변할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이혼의 고지가 목전인데, 나를 심해로 빠트린 건, 아빠를 따라가겠다는 셋째와 넷째 때문이다. 충격이고 배신이었다. 슬픔이고 절망이었다. 남편 없는 이혼녀가 살 집으로 구하는 첫 번째 조건이 셋째와 넷째를 안전히 보호할 수 있도록 나의 직장과 가까운 지역을 선정했고, 집과 학교의 거리가 도보로 3분 이내.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가 있어야 했고, 자전거와 인라인을 편히 탈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그것은 한창 공부해야 하는 첫째 둘째에게 적합한 교육 인프라가 갖춰진 환경이 아닌, 어린아이를 양육하기에 적합한 환경인 것이다. 셋째 넷째에게 포커스가 맞춰진 집.


그동안, 밥도 내가 해주고, 놀이터에서 놀아준 것도 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곳으로 이리저리 함께 놀러 가 준 것도 나다. 학원 대신 공부를 가르쳐준 것도 나고, 학교 숙제를 살펴준 것도 엄마. 바로 '나'다. 그런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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