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1장 [몸이 먼저 무너졌고, 삶이 그다음이었다]

by 정선후 린스아저씨


몸이 무너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적어도 이렇게 먼저 올 줄은 몰랐다.

처음에는 사소한 신호였다.


아침에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았고, 회의 중에는 집중이 흐트러졌으며, 사소한 말에도 괜히 예민해졌다.


“요즘 좀 피곤하네.”

그 말로 넘기기엔 그 상태가 이상하게 오래 갔다.


그 무렵, 나는 아들을 유학 보낸 지 5년이 지나 있었다.

아이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컸고, 그 시간을 견디는 방식은 건강과는 거리가 멀었다.


운동은 점점 멀어졌고, 술자리는 잦아졌다.

몸은 둔해졌고, 마음은 그보다 더 먼저 쇄약해졌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몸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판단이 느려졌고,

판단이 느려지자 선택이 어긋났다.

괜찮을 일에 괜히 힘을 쓰고,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버틸 여유가 없었다.


체중은 눈에 띄게 불었고, 숨 쉬는 것조차 편하지 않았다.

조금만 걸어도 몸이 나를 끌고 가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날, 가슴이 ‘툭’ 하고 내려앉는 느낌이 반복됐다.

심장이 제 박자를 놓치는 것 같은 순간들이 이어졌다.

처음엔 스트레스겠지, 하고 넘겼다.

하지만 그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병원을 찾았다.

진료실에서 의사는 담담하게 말했다.

“부정맥과 고혈압 증상이 있습니다.”

“약을 꾸준히 복용하셔야 합니다.”


그 말이 이상하게 멀게 들렸다.

아직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 나이인데.

지켜야 할 자리도, 책임져야 할 사람도 많은데.

그날 처음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살다가는 진짜 큰일 나겠구나.

그 ‘큰일’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떠올리지 않았다.

떠올리면 겁이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 깨달았다.

삶은 의지로만 굴러가지 않는다는 걸.

젊었을 때는 밤을 새워도 괜찮았다.

무리해도 하루 이틀 쉬면 회복됐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회복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조건의 문제가 되었다.


잠을 줄이면 그대로 티가 났고,

운동을 빼먹으면 하루가 흔들렸다.

몸은 더 이상 참아주는 존재가 아니었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내가 빠질 수 없는 자리는 늘 있었다.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나는 마음부터 다잡으려 했다.

몸은 따라올 거라고 믿었다.

문제는 마음보다 몸이 먼저였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는 점이다.


그래서 다시 운동화 끈을 묶었다.

대단한 결심은 아니었다.

그저 이 상태로는 더는 버틸 수 없겠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새벽이었다.

도시가 아직 잠들어 있는 시간,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 시간에 나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의 움직임은 초라했다.

숨은 가빴고, 몸은 무거웠으며, 예전의 나는 어디에도 없었다.

자존심이 먼저 상했고, 몸은 그다음이었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달린 날은 하루가 조금 덜 무너졌다.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문제 앞에서 버틸 힘은 남아 있었다.

그때부터 생각이 바뀌었다.

나는 강해지려고 운동하는 게 아니라

무너지지 않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몸이 먼저 무너졌고, 삶은 그다음이었다.

그 순서를 알게 된 뒤에야 나는 다시 몸을 붙잡기 시작했다.


지금도 완벽하지는 않다.

여전히 지치고, 흔들린다.

하지만 적어도 몸이 먼저 바닥을 치게 두지는 않는다.


이건 변화의 이야기가 아니다.

회복의 이야기라고도 말하지 않겠다.

그저 더 늦기 전에 멈추지 않기로 한 사람의 기록이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다시 운동화 끈을 묶게 된 가장 솔직한 이유다.


"몸이 먼저 무너졌고, 삶이 그다음이었다.

몸이 무너지면 삶은 버텨지지 않는다.

그 순서를 알게 된 건, 이미 많이 무너진 뒤였다."

아직 브런치에 적응중입니다. 긴 호흡으로 성실히 연재 하겠습니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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