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다니던 버나비의 학교는 3월 하순 열흘 정도가 봄방학이었다. 그곳의 학교는 겨울방학도 크리스마스와 설을 껴서 짧고 봄방학도 짧은 반면, 여름방학은 두 달이 넘게 길었다.
우리는 캐나다의 첫 봄방학에 제규네와 함께 넷이 미서부 여행을 다녀왔다. 한국인 여행사에서 패키지를 이용했다. 미서부는 밴쿠버에서 가깝다 보니 상품이 다양하게 있는 편이다. 우리가 가고자 했던 여행 코스 상품은 크게 3가지로 나뉘는데, 1. 왕복 항공 이용(비싸다) 2. 한 번은 항공, 한 번은 버스 이용(가장 보편적) 3. 왕복 버스 이용(저렴하지만 시간이 많이 걸리고 피곤). 우리는 2번을 선택하여 갈 때는 항공, 올 때는 버스를 이용했다.
딸아이가 봄방학 전 심한 감기로 일주일을 꼬박 학교에 못 가고, 아직 완쾌되지 않은 상태에서 출발한 여행이라 걱정스럽게 시작하였다. 다행히 점점 호전되었지만, 아이한테 나도 감기가 옮아, 딸도 나도 약과 함께 한 여행이었다. 워낙 넓은 나라라 버스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 너무 많아 몸은 많이 힘들었지만, 평생 한이었던 미국도 보고(전에는 괌 말고는 미국 본토에 가본 적이 없어서 영어 전공자로서 미국을 가보지 못했다는 데서 오는 약간의 한 같은 게 있었다), 제규네와 함께 가서 더욱더 즐거웠던 여행이었다.
1일 차_도시 전체가 테마파크 같은 라스베이거스
밴쿠버 공항에서 2시간 반 정도 걸려 라스베이거스 공항으로 도착. 라스베이거스는 아시다시피 사막 한가운데 있는 카지노 도시다. 호텔과 카지노, 그리고 아무나 30분 만에 결혼식을 할 수 있다는 웨딩센터가 즐비한 특이한 곳이었다. 호텔들이 워낙 많다 보니, 호텔들마다 주제가 있다. 베네치아처럼 꾸민 호텔도 있고 파리나 뉴욕, 로마에 온 듯한 호텔 등등.. 그래서 라스베이거스의 여러 호텔을 돌다 보면, 마치 미니어처 나라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미니어처 세계 같은 라스베이거스
라스베이거스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벨라지오 호텔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밖에서 하는 분수쇼를 보고 나서 안에 들어가니, 꽃들의 향연이다. 진짜 나비도 있고, 무슨 식물원이나 거대한 화원에 온 듯하다. 시즌마다 수 억씩 들여 꽃장식을 바꾼다나.. 호텔 로비 천장에 있는 꽃잎 유리공예가 특히 너무나 아름다웠다. 꽃잎 한 장씩 만들어 붙인 것 같은데, 그 꽃잎 한 장이 백만 원이라고 ㅎㅎㅎ
벨라지오 호텔
2일 차_대망의 그랜드 캐년
내가 이번 미국 여행을 가는 첫 번째 목적은 그랜드 캐년이었다. 지금은 순위가 바뀌었는지 모르겠는데 그때는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 1위가 그랜드 캐년이었다. 꼭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지만 나는 광활한 자연을 보는 것이 좋다.
라스베이거스는 네바다주에 있고, 그랜드 캐년은 애리조나주에 있는데, 차로 4~5시간 거리라고 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그냥 사막이다. 호주의 사막과 비슷한데, 호주의 사막이 흙이 좀 더 빨갰다는 것만 다를 뿐 거의 비슷한 풍경이었다. 라스베이거스를 떠날 때 비가 와서, 조금 걱정이 되었다. 그랜드 캐년은 지대가 높은 곳에 있어서 안개가 끼면 잘 안보일 수도 있다고 하여..
그런데……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그랜드 캐년에 다가갈수록 점점 비가 눈으로 바뀌더니, 마침내 함박눈으로 변신.. 앞이 안 보이게 펑펑 쏟아지는 것이 아닌가.. 가이드 아저씨 여기저기 전화하느라 바빠지시고, 띠로리~~~~ 결국은.. 하늘이 무너지듯 너무나 속상하고 슬픈 소식..
갈 수가 없단다.. 흐어억~ 눈이 많이 오면 그랜드 캐년이 문을 닫는다고.. 왜 하필... 내가 뭐 때문에 왔는데.. 흑흑흑..
결국 그랜드 캐년을 2시간 거리 앞에 두고 버스를 돌려야 했다는..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속상하다. 새벽부터 나선 길을 되돌아왔으니, 라스베이거스에 다시 도착했어도 아직 12시도 안 된 시간이다. 볼 거라곤 호텔과 카지노밖에 없는 라스베이거스에서 뭘 하나..어린아이들 데리고 슬롯머신 당기러 가기도 뭐하고.. 돌아오니, 억울하게도 해가 반짝.. 또 호텔 구경하고 그저 길거리 돌아다니고.. 너무나 속상하고 억울하고 지루한 하루였다.
돌아오는 길에 날씨가 맑아져서 찍은 네바다주의 사막 풍경
3일 차_LA 시내와 유니버설 스튜디오
라스베이거스에서 LA는 차로 6시간 정도 거리.. 운 좋게 맨 앞자리에 앉아서 미국 서부 구경 잘했던 날.. 사막만 실컷 보다가 Los Angeles 표지판이 나타나면서부터 차가 어찌나 밀리던지.. 꼭 서울 가는 경부고속도로에 있는 기분이었다.
차가 엄청 막혔던 LA 시내.. 그 유명한 베벌리힐스, 할리우드, 선셋 대로, 코리아타운을 차로 스쳐 지나갔다. 유명세에 비해 너무나 평범해 보여서 정말 여기가 그 유명한 곳들이 맞나 싶었고, 내가 정말 여기를 왔나 실감이 안 나기도 했던 곳들..
가이드 아저씨는 LA에서 사신지 10년이 넘으셨다는데, 왜 다들 LA LA 하는지 알겠다고 하신다. 정말 살기 좋다고.. 그건 난 모르겠지만, 차는 정말 너무 막혔다. 딱 서울 같았다. 저 멀리 보이던 산에서 그 유명한 Hollywood 표지판을 발견했을 때는 버스에선 다들 사진 찍느라 난리 부르스였다는.. LA 도착해서부터 이거 어디 있나 찾았었는데, 저녁때에서야 발견했다.
LA임을 느끼게 해주는 sign
매년 아카데미 수상식이 열린다는 코닥 극장은 생각보다 작고 초라해서 놀랐다. 배우들이 올라가는 계단도 너무나 평범하고.. 좀 오버하면 우리나라 국립극장이나 세종문화회관은 여기에 비하면 궁전 같다.
다들 해보는 손바닥 대보기 우리도 했다. 헐크랑 스파이더맨이랑 기념 촬영(돈 줘야 한다)
LA 시내 구경을 완전 수박 겉핥기로 끝내고, 이 날의 목적지 유니버설 스튜디오로 이동. 이제 드디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미서부 3대 테마파크 시작이다. 그 첫 번째가 유니버설 스튜디오, 두 번째는 디즈니랜드, 마지막은 샌디에이고에 있는 씨월드.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많이들 아시다시피 미국 영화 촬영 세트장 겸 영화 속 체험을 해보는 놀이기구 같은 것들이 있는 테마파크다. 디즈니랜드보다 놀이기구의 강도가 좀 더 세고 재미있어서, 어른들이 더 좋아한다고 익히 들어왔던 곳이다.
특히 Mummy는 영화 Mummy를 주제로 한 놀이기구인데,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그 당시에는 가장 재미있다는, 즉 가장 무섭다는 놀이기구였다.놀이기구에 약한나는 안 타고, 제규 엄마가 울 만수랑 제규를 데리고 탔는데, 다들 무섭다고 하는데도 울 딸은 이게 그렇게 재미있었단다. 미국 여행 내내 '머미,' '머미' 노래를 하고 다녔다.
이밖에도 쥐라기 공원, 심슨 라이드, 킹콩, 슈렉 등의 놀이기구를 타고 워터월드 스턴트쇼도 구경했다. 개인적으로는 심슨 라이드와 킹콩이 가장 재미있었다.
4일 차_아~ 디즈니랜드!!!
울 딸에게는 이번 여행이 '미국 간다'가 아니었다. '디즈니랜드 간다’였다. 사람들에게 "저 봄방학 때 디즈니랜드 가요" 이러면서 자랑을 했었다. 그렇게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디즈니랜드..
우리나라 에버랜드만 못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었는데, 아마 무서운 놀이기구가 없어서 그런 얘기가 나온 듯.. 심지어 울 딸 마저, 에버랜드만 못하단다. ㅎㅎ 우리나라 만세다. 사실 우리가 시간상 다 둘러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나는 디즈니랜드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나이답지 않게 내내 설렜다.
디즈니랜드에서 가장 무서운 놀이기구는 '스페이스 마운틴(Space Mountain)' (10년 전 얘기다. 지금은 아닐 수 있다). 입장하자마자 모두들 가이드 아저씨를 따라가 예약을 해 두었는데, 오후 3시 반이 되어서야 탈 수 있었다. 수직강하는 아니라고 하기에 용기를 내어 타보았는데, 이 놀이기구는 롤러코스터나 바이킹 같은 스타일이 아니다. 이런 건 처음이었다. 거짓말 안 보태고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속도가 정말 빛의 속도라는.. 빛의 속도로 위아래 좌우로 휙휙.. 허리 꺾어지는 줄 알았다. 울 만수는 결국 울고.. 난 이날 오후 내내 충격에서 헤어날 수가 없었다는..
디즈니랜드답게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신데렐라와 사진도 찍고.. 미키마우스, 미니마우스 집도 구경하고.. 놀이공원은 어른도 아이도 모두 동심의 세계로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다녀오는 기분이라 그곳에선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 놀이공원은 늘 옳다.
5일 차_더 남쪽으로 샌디에이고 Sea World
이 날은 3대 테마파크의 마지막 Sea World다. 샌디에이고에 있는 수족관 겸 해양 놀이공원이라고 해야 하나.. 수족관 개념은 아니고, 우리나라 서울대공원 같은 건데, 바다 동물만 있는 테마파크였다.
샌디에이고는 LA에서 차로 2시간 정도 남쪽에 있는 도시이고, 멕시코와의 국경에 가까운 곳이었다. 그렇다 보니 3월 하순인데도 여름 날씨.. 불과 며칠 전 눈 때문에 그랜드 캐년을 못 갔다는 게 실감이 안 나는.. 이 동네는 특히 스페인풍의 집들이 많아서, 마치 강원도 양양의 쏠비치를 보는 듯했다.
씨월드에서도 일정이 참 바빴다. 수족관은 구경도 못했고, 동물쇼만 보다가 끝났다. 놀이기구도 몇 개 있었는데, 아이들은 후룸라이드 같은 놀이기구를 타고 신나 했다. 쇼는 물개쇼, 돌고래쇼, 애완동물쇼, 샤무쇼 이렇게 4개를 봤는데,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샤무쇼..
샤무쇼
샤무(Shamu)는 사진에 있는 것처럼 덩치는 무지무지 크고 멋지게 생긴 까맣고 하얀 고래인데, 이게 killer whale이란다. 실제로 조련사를 죽인 적도 있다고.. 이 고래가 덩치도 크고, 힘도 너무 좋아서, 쇼 중간에 꼬리지느러미를 이용해서 관객들한테 물을 뿌리는데, 정말 그 힘이 장난 아니었다. 이 물세례가 워낙 유명해서, 쇼 시작 전에 우비까지 판다. 우리도 앞자리여서(워낙 인기라 30분 전에 입장했다는 거)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우리까지는 물이 튀지 않았다.
3일 동안 다양한 놀이기구를 타보고, 다양한 쇼를 구경하면서 느낀 것.. 미국 사람들은 물세례를 참 좋아하는구나 싶다. ㅋㅋ 어디 가나 물이 튄다. 심지어 어떤 건 튀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퍼붓는다. 맞는 사람들도 너무나 행복해한다. 그 사람들이 행복해할 때 우리는 공포에 떨었다는.. ㅎㅎ
6일 차_동경하던 도시 샌프란시스코
LA에서 샌프란시스코는 차로 6시간 정도.. 나에게 이번 여행의 두 번째 목적인 샌프란시스코다. 어려서부터 많이 봐 온 안개 낀 금문교 사진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늘 가보고 싶었던 곳 중 하나였다.
이 날도 운 좋게 버스 맨 앞자리에 앉게 되어, 캘리포니아의 평원을 실컷 구경했다. 캘리포니아는 비옥해서인지 논밭도 많고, 오렌지나 아몬드 나무도 많고, 앵거스라는 품질 좋다는 까만 소도 참 많이 봤다.
차창 밖으로 본 샌프란시스코 시내언덕의 경사는 정말이 세상 것이 아니다. 그 언덕을 다니는 케이블카는 보지 못했다. 요즘은 전기버스가 주로 다녀서 많이 없어지고, 한정된 구간만 돌고 있다고.. 타보지는 못해도 보고는 싶었는데.. 아쉬웠다.
어마무시한 샌프란시스코의 언덕
금문교는 생각대로 어마어마하게 길고 거대했다. 유람선은 1시간 정도 탔는데 그 유명한 섬이자 감옥인 알카트라즈를 보고 금문교 밑에서 되돌아왔다. 탈출하기 어렵기로 유명했다는 그 알카트라즈.. 영화 '빠삐용'과 'The Rock'의 무대였다는.. 물론 지금은 그냥 관광지. 길거리 기념품 가게에 빠삐용 죄수복도 팔고 있다.
금문교는 영어로 Golden Gate Bridge. 캘리포니아주를 Golden State라고 부르는데(아마 골드러시 때문), 이 캘리포니아주를 들어가는 문이라 하여 그렇게 이름 붙였다는 것 같다. 가이드 아저씨한테 제대로 들은 거라면.. (인터넷 검색하면 다른 유래도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금문교의 색깔이 금색이라고 오해하면 안 된다는.. 실제로는 주홍빛인데, 1년에 한 번씩 페인트칠을 한단다. 참~ 허무하게도 6시간 넘게 버스 타고 와서, 유람선 1시간 타고, 기념품 가게 잠깐 들리고 나니, 벌써 저녁.. 호텔 가야 하는 시간.. 이걸 어떻게 샌프란시스코 가봤다 하겠나.. 그냥 점만 찍은 거지.. 정말 아쉽다.
7일 차_ 북으로 북으로
샌프란시스코를 끝으로 미서부 여행은 끝났다. 나머지 이틀은 그저 북으로 북으로 밴쿠버를 향해 올라가는 것뿐.. 그동안 6~7시간씩 버스를 타고 다니는 것도 너무나 힘들었는데, 이틀 내내 버스 여행은 정말 다리뿐 아니라 온몸이 마비될 정도로 힘든 여행이었다. 캘리포니아주에서 오레건주로 북상.. 오레건주에서 큰 도시라는 유진과 포틀랜드를 거쳐, 워싱턴주로 또 북상.. 북쪽으로 올라오다 보니, 제법 눈도 오고, 눈 덮인 산도 많이 보인다. 날씨가 오락가락하니 무지개가 어찌나 자주 보이던지..
마지막 날의 하이라이트는 시애틀 아웃렛.. 쇼핑하라고 3시간이나 준다. 쇼핑할 건 그다지 없어도 점심 먹고 윈도쇼핑하다 보니 3시간도 금방 간다.
시애틀은 밴쿠버에서 2-3시간 정도로 매우 가까워서 밴쿠버 사람들이 자주 가는 곳이고, 특히 이 아웃렛은 많이 애용되는 곳이다. 게다가 캐나다는 뷔페가 거의 없는데, 이 시애틀 아웃렛 바로 옆의 호텔에 뷔페가 있어서 뷔페 먹고 아웃렛 쇼핑하기 딱이었다. 전적으로 내 생각이다.
8일 차_Thank God! 무사 귀환
집만 한 곳이 없다더니.. 물가 비싸고 날씨 추워도 캐나다에 입국하니 어찌나 좋던지.. 국경에서 운 좋게도 많이 기다리지 않아서, 생각보다 일찍 집에 도착했다.
국경에서 우리 집이 그렇게 가까운지 몰랐다. 3~40분 거리밖에 안되다니.. 집에 들어오니, 우리를 반겨주듯 창 밖으로 무지개가, 것도 쌍무지개가 떠있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수박 겉핥기 패키지관광의 소감은 미국이 역시 좋구나 했다. 배낭여행도 아니고 오래 체류한 것도 아니고 뭘 느낄 수 있었겠는가.. ㅎㅎ 거대한 땅덩어리, 못 쓰는 땅이 너무 많은 캐나다에 비해 비옥한 땅, 큰 도시 위주로 다녀서 그런지 온몸으로 느껴지는 풍요로움 등.. 지금은 움… 정치적 이슈가 많아서인지.. (할많하않) 2011년 그 당시 기준으로 캐나다 인구가 3천만 정도, 미국 인구가 3억 정도라고 했다. 읍내 살던 사람이 대도시 구경 갔던 거나 다름없다. 인구가 10배인 미국에 뷔페도 더 많고 아웃렛도 많고 물가도 더 싼 것이 당연할 것이다. ㅎㅎ
그 이후 우린 아직도 그랜드 캐년을 가보지 못했다. 다음에 갈 땐 반드시 눈 안 오는 계절에 가리라 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