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쓴 적이 있듯이(에피소드 #12) 캐나다에선 지루할 틈 없이 다양한 명절과 행사로 1년이 채워졌다. 학교에서도 다양한 명절과 체육대회, 축제 등의 큰 행사들이 있었지만 그런 큰 이벤트뿐 아니라 깨알같이 소소한 Day들이 있어 잔 재미를 주었다.
Stuffy Day
학교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맞닥뜨린 Day는 Stuffy Day였다.
‘내일은 Stuffy Day이니 각자 Stuffy를 갖고 오라’는 말을 알림장에서 보고는 이게 대체 뭔가 했다. stuffy는 숨이 막힌다는 뜻인데.. 뭐지.. 담임선생님께 여쭤보니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stuffed animal(솜으로 채운 봉제 인형)을 갖고 오는 날이라는 것이다.
“그거 갖고 와서 뭐 하는데요?” 여쭤보니
“Nothing”
ㅎㅎㅎㅎ 그냥 책상 위에 앉혀 두거나 수업 중에 안고 있거나 그런 거란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인형 하나씩 안고 등교하며 사소하지만 웃고 즐기는 걸 보며 캐나다 학교는 희한하네 생각했다.
비슷하게 Teddy Bear Picnic Day도 있었다. 테디 베어 인형을 초대하는 날이라나. another Stuffy Day다.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테디 베어 인형을 또 신나서 들고 갔다.
학년 초에 comfort letter(에피소드 #9에 있다)를 쓴 것과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싶다. 편안한 집과 부모로부터 떨어져 학교에서 지내는 시간을 조금이나마 안심시켜주고 정서적으로 편안함을 느끼게 해 준다는 취지가 아니었을까 혼자 추측해본다.
Pajama Day
그리고 또 얼마 안가 Pajama Day란다. 정말 파자마를 입고 학교에 가는 거다. 캐나다 가서 사 준예쁜 디즈니 공주 파자마를 입고 룰루랄라 등교.. 선생님들 중에도 파자마 입고 오신 분이 계시고..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은 광경 ㅎㅎ 사진 안 찍어둔 게 너무 아쉬운 날.
친구들과도 집에서 파자마 파티를 하곤 했는데, 딸아이가 처음으로 같은 반 아이들 3명을 우리 집에 초대해 파자마 파티했던 날을 특별히 기억한다. 몇 주 전부터 아이들이 얼마나 들떠 있었던지.. 일요일 오후에 다들 잠옷 입고 모여서는 베개 싸움한다고 난리법석을 피우기도 하고, 둘러앉아 팝콘 먹으며 만화영화도 보고 잘 놀고 갔었다.
우리 집에서 파자마 파티
Pink Day (Pink Shirt Day)
캐나다에서는 2월의 마지막 수요일이 Pink Day 또는 Pink Shirt Day라고 하여 전국적으로 분홍색 티셔츠를 입는 날이라 한다. anti-bullying을 지지하는 표현이라는데.. 우리말로 하면 ‘왕따 반대’, ‘집단 괴롭힘 반대’가 되려나.
유래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다.
In 2007 in Nova Scotia, Grade 12 students David Shepherd, Travis Price and a few friends saw that a Grade 9 student was being bullied for wearing a pink shirt on the first day of school.
They knew they had to do something to show that this kind of behaviour was not OK.
They decided to go out and buy a bunch of pink shirts and hand them out to other students to wear.
By the end of that week, most of the students in the school were wearing pink shirts to show support for the Grade 9 student who was bullied.
요약해보면, 노바스코샤의 어느 학교에서 첫날 분홍색 티셔츠를 입고 온 9학년 아이가 놀림을 받는 것을 본 12학년 학생들이 같이 분홍색 티셔츠를 입고 다니며 왕따 당한 아이를 지지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 학생들뿐 아니라 경찰관들까지도 이날은 분홍 제복을 입을 정도로 전국적인 큰 규모의 캠페인으로 발전했단다.
우리 딸은 핑크 티셔츠뿐 아니라, 신발까지 핑크로 풀 장착..
100th Day
2월 말쯤이었던 것 같다. 100th Day란다. 100번째 날이라고? 뭐가 백 번째? 새 학년이 시작해서 학교 다닌 지 100일째 되는 날이란다. 안 세어봐서 잘 모르겠지만, 토요일 일요일 빼고 방학 빼면 될 것 같다.
100일 기념 이벤트는 사실 초등 저학년으로선 엄마 숙제나 다름없다는 불편한 진실.. 며칠 전부터 과제를 내주는데, 100일을 기념하기 위해 무엇이든 100개를 모아 오라는 것이었다. 그냥 100개를 가져가는 게 아니라 큰 종이에 100까지 숫자를 쓰고 뭔가를 붙이든, 그리든, 도장을 찍든 해야 한다. 이게 생각보다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1센트짜리를 100개 붙이자고 했더니, 누가 벌써 했다나.. 기왕이면 아무도 해보지 않은 걸 해보고 싶다고 하여 고민 고민.. 쌀알을 100개 붙일까 하다가, 너무 안 보일 거 같아서 포기..
Value Village(기부받은 물건을 저렴히 파는 중고 물품 가게인데, 보물찾기 같은 재미가 있는 곳이다)에 가서 머리 묶는 고무줄 뭉치 발견. 다행히 100개가 넘는다. 글루건 사다가 둘이서 열심히 붙였다.
다른 애들 작품을 보니, 정말 희한한 발상이 많았다. 마카로니를 붙인 아이도 있었고, 꽃봉오리를 따서 붙인 것, 종이로 꽃을 접어 붙인 것 등등. 우리 작품(?)과 똑같은 건 없으니 어쨌든 성공.
우린 2년만 하고 돌아왔으니 ‘재미있는 경험이네’했지만, 미국에 사는 지인은 아이 둘에게 매년 찾아오는 이 과제(다른 나라는 잘 모르겠지만 미국에도 있다고 한다)가 귀찮다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