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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윤작가 Jul 30. 2021

20_8살 캐나다 유학 6개월 차의 영어

폭풍 성장

8월 25일에 입성하여, 이듬해 2월.. 거의 만 6개월이 되었다. 처음 한 달은 그렇게 시간이 안 가는 듯하더니, 그다음 달부턴 정말 시간이 쏜살같았다.


한국에서 6개월 동안 영어학원을 다녔으면 어땠을까.. 파닉스 정도 뗐을까.. 초등학교 1학년 입학하자마자, 학교에서 하는 원어민 영어 교실이라는 방과 후 수업을 3개월 보냈었다. 격일로 원어민 교사와 한국인 교사가 가르쳤는데, 그동안 딸아이가 배운 것은 사실 알파벳 대문자와 소문자였다. 그나마 비슷한 건 헷갈려하는 수준. 물론 캐나다에 왔으니 어떻게 영어학원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영어를 하나도 모르는 아이가 어떻게 영어를 자기 언어로 만들어가는지 내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었는데 내 눈을 의심할 만큼 충분히 놀랐다. 학교 첫날, '내 이름은 앤젤라고, 한국에서 왔다'는 소개 한마디도 영어로 할 줄 몰라 눈물이 났었다는 김만수다.. 자기 이름 Angela 스펠링도 몰라서 학교에서 배워 왔던 아이다.


처음 한두 달은 주워들은 말로, 간단한 일상회화를 하기 시작했다. Say thank you라든지 Say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배운 영어를 나에게 강요(?) 하기도 했다. 만 3개월이 지나면서부터는 아는 단어도 꽤 늘고, 영어를 끄적거리며 쉬운 문장을 만들어 쓰기 시작하고, 영어로 동시를 두세 편 짓기도 했다.




4개월째 접어들면서 만수의 영어가 꽤 늘었다는 걸 체감하기 시작했다. 정확하지 않아도 말을 한다는 거..


요맘때의 여자아이들은 별거 아닌 다툼이 꽤 있다. 그 나이 아이들은 메롱도 왜들 그리 많이 하는지.. 메롱 했다고 싸우고 선생님한테 이르고 ㅋㅋ


초창기에는 메롱을 당해도 할 말을 하지 못해 답답해했었다. 나에게 '나중에 내가 영어 잘하게 되면 OO에게 물어볼 거야. 왜 나한테 메롱 했냐고' 이런 말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자기한테 메롱 한 친구에게 ‘울 엄마한테 이를 거야’ 했다는 거다.


"너 영어로 그 말을 어떻게 했는데?"

"I telling you mom"


정말 기특하지 않은가.. 문법은 안 맞아도 캐나다 온 지 4달도 안된 아이가.. 그것도 알파벳만 알고 온 아이가 말이다.


이렇게 친구들과 아옹다옹하더니 얼마 안가 과도기가 지나고 다들 둘도 없이 친해지고 베프가 되어 사이좋게 잘 노는 사이가 되었다.


만 4개월이 지나면서부터는 친구들과 거의 별문제 없이 소통이 되는 것 같았다. 본격적으로 playdate를 시작하여, 캐내디언 친구 집에 가서 놀기도 하고, 그 친구들을 우리 집에 데리고 와서 놀기도 했다.


캐내디언 친구 집에 가서 처음 놀기로 한 날은 사실 좀 걱정이 됐었다. 영어 못 알아듣고, 말 못 해서 불편할 텐데 하고.. 근데 울 만수 왈,


“걱정 마.. 나 다 알아들어..”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도 눈치껏 대부분 알아듣는 것 같았고.. 학교에서 가져오는 책들도 가끔 모르는 단어가 나오긴 해도, 대부분 막힘 없이 쭉쭉 읽어 내려가고.. 학교에서 써오는 알림장도 이제는 쉽게 쉽게 베껴오고, 글씨도 아주 장족의 발전을 했다.



만 5개월이 넘어서면서부터는 정말 매일매일이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정규 수업 중에 Reading Club이라고 있는데, 기초반에 있다가 중급반으로 진급도 했고.. (같이 있던 캐나다 애들은 그대로이고, 울 딸만 진급을 했단다.. 이게 머선 일이고)


금요일마다 보는 단어 스펠링 테스트(딸아이는 영어 수준이 낮다 보니 1학년 아이들과 같이 5개씩 봤었다)도 항상 다 맞을 뿐 아니라, 몇 주째 외울 필요가 없이 이미 아는 단어들뿐이어서, 이맘때부터는 정규 2학년과 똑같은 개수로 시험을 보게 되었다. 심지어 같은 반 캐나다 친구들이 항상 만수에게 스펠링을 물어본다나..


심지어 선생님이 딸아이에게 같은 반 2학년 남자아이한테 수학을 가르쳐주라고 하셨단다.. (만수가 반에서 수학은 진도가 젤 앞선다고 하셨다고..)


놀 때는 또 어떠한가.. 친구들을 불러 모아 교실 칠판 앞에서 학교놀이를 하고, 지가 선생님 노릇을 한다는 거다.. 주객이 전도돼도 한참 전도됐지.. ㅎㅎ

(이쯤 되니 우리 딸이 혹시 영재 아니야 하실지도 모르겠다. 움.. 지금 고3인데.. 움… 움.. -.-;;)



ESL 수업에서 5-6개월 차에 읽던 책들



내가 가장 놀랐던 것은, 이맘때쯤(캐나다 입성 6개월 정도) 딸아이의 VIP 차례가 되었을 때다. VIP는 일주일 반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하는데, VIP를 하면 앞에 나가 얘기할 기회도 많고, 반 대표로 앞장을 서기도 하는 등 리더십을 발휘하는 기회이다. 울 만수는 아직 영어가 안돼서 어쩌나 하고 걱정이 되어 물어봤다.


“너 VIP 할 수 있겠어?”

“응 그럼.. 나 할 수 있어..”

“영어 잘해야 되지 않아?”

“나 그 정도는 할 수 있어..”


VIP를 앞둔 주말, 동네 카메론 도서관에 갔을 때다. 어떤 책을 하나 갖고 오더니, 그 책이 자기가 학교에서 애들한테 읽어주려고 고른 책이란다. (VIP는 앞에 나가 반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시간이 있단다.) 그 책이 만수네 교실에도 있는데, 여기도 있다고 좋아한다.


<The Cat in the Hat>이라는 제목의 책인데  내가 보니, 허거거거걱… 총 61페이지에, 한쪽은 그림이 대부분이어도, 다른 한쪽 페이지는 글이 빽빽하다.. 슬쩍만 봐도.. 아니다 싶다.


“이렇게 어려운 책을 니가 어떻게 읽어줘? 다른 쉬운 책으로 바꿔..”

“아냐.. 나 읽을 수 있어.. 학교에서도 내가 읽어봤어..”

“말도 안 돼.. 이렇게 글이 많은 걸 어떻게 읽어?”

“아냐.. 읽을 수 있어..”

“그거 다 읽으려면 시간 너무 오래 걸려.. 그리고 애들 지루해 할 수도 있어.”

“아냐.. 긴 거 읽는 애도 많았어”


죽어도 그 책을 읽겠단다.


“그럼 함 읽어봐..”


도서관에 앉아 읽기 시작한다. 헉.. 이게 웬일.. 너무 잘 읽는 거다. 중간중간 히죽거리기까지 하며, 대화 부분에서는 또 톤이 바뀌어 대화하듯 읽기도 한다.


“너 이 책 내용 알아?”

“응.. 다 알아..”

“우아~ 정말 잘 읽네..”

“거봐.. 나 잘 읽지?”

“근데, 학교에서 이 책 읽을 때 누가 도와줬어?”

“아니.. 점심시간에 그냥 나 혼자 읽어 봤어.”



바로 그 책


나 혼자만의 기우였던 것. 큰소리로 잘 읽었다고 선생님께 칭찬을 들었다고 한다. 친구들 반응도 좋았다나..


그날 오후 동네 카메론 도서관 겸 주민센터에 방과 후 수업 갔다가 같은 반 남자아이를 우연히 만났다. 울 딸에게 오더니, 그거 자기도 좋아하는 책이라고 한마디 하고 가는 거 목격.. 아~ 이거 왜 감동이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딸아이는 영어를 훨씬 더 많이 습득했고, 훨씬 더 많이 앞서 있었던 거다. 아이가 이렇게 영어 실력이 늘 동안, 난 뭐 한 건가.. 흑.. 물론 울 만수의 영어가 다 된 건 아니었다. 학교에서 선생님 말씀이나, 친구들과의 대화는 그다지 문제없는 수준이지만, 학교 밖의 세상에선 아직 잘 못 알아들었다. 그리고, 아이가 말하는 문장은 문법이 아직 안 잡혀 있었다. 그런데도 거침없이 그것도 아주 빨리 영어가 나온다. 그런데 또 그 영어가 다 통한다.


밸런타인데이 때 담임선생님께 한국에서 가져온 카네이션 볼펜을 갖다 드렸는데, 선생님이 아주 좋아하시더란다.


“나중에 니가 영어 더 잘하게 되면, 선생님께 말씀드려.. 카네이션이 한국에서는 감사의 의미로 엄마 아빠나 선생님께 드리는 꽃이라고..”

“나 그 말 할 수 있는데..”

“잉 진짜? 뭐라고 말할 건데?”

This flower is carnation. In Korea carnation is thank you to mom and dad and teacher.


정말 말은 통하지 않는가.. 그다음 날 진짜 선생님한테 가서 이렇게 말했단다. 선생님이 감탄하며 좋아하셨다고 한다.



다른 아이들의 경우를 보지 못했기에 우리 아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주관적인 시각으로, 울 딸의 영어가 이렇게 하루가 다르게 늘었던 것은, 많은 시간 영어에 노출된 환경과 학교에서 무지하게 시키는 독서 덕분이라고 본다. ESL 수업도 거의 책 읽기고, 학교 자체에서 책을 엄청 읽힌다.


집에서도 매일 책을 읽고 스티커를 붙여서 한 달 단위로 그 증거를 제출해야 하고, 학교에서도 등교하자마자 대부분의 아이들은 카펫에 앉아 책을 읽는다. VIP나 높은 학년 언니 오빠들이 책을 읽어 주기도 하고, 학부모가 가서 책을 읽어주는 시간도 있다. 반 단위로 매주 학교도서관, 또 매달 동네 공립도서관에 가기도 한다.


어른들은 영어로 말할 때 아주 작은 실수라도 할까 봐 벌벌 떨고 창피해하고 그러는데, 울 딸의 영어는 정말 겁 없는 영어다. 울 만수가 문법 생각 안 하고 막힘없이 줄줄 겁 없는 영어를 말할 때, 난 너무나 기뻤고 보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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