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볼 당첨되셨나...
토요일에 한국학교 수업을 마친 아이들을 태워 DigiPen 공과대학에서 운영하는 게임 개발 클래스에 들여보내고, 아이친구의 엄마 S와 점심을 먹으러 갔다. 주차를 하고 내리는데 맞은편 차 안에 앉아 있던 남자가 우릴 보고 웃더니 내리면서 인사를 했다. 미국 사람들은 눈 마주치면 웃으며 인사하는 게 다반사니까 우리도 인사를 하고 식당으로 가는데 그 사람이 같은 식당으로 먼저 들어갔다. 우리가 들어가려고 했더니 안에서 굳이 나와 문을 열어주었다. 과하게 친절한 사람이 다 있네 싶었다.
우리는 출입문 쪽 테이블에 앉았고 그 사람은 가운데쯤에 앉았다. S가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그 남자가 쳐다보며 너무 느끼하게 웃어서 모른 체하고 왔다고 했다. 나도 화장실을 다녀오며 눈이 마주쳤더니 그 사람이 웃었다. 느끼하다기보단 어색한 웃음 같아서 나도 입만 웃어주고 왔다. 신나게 밥을 먹고 있는데 누가 옆에서 좋은 하루 되라고 말하길래 돌아보니 그 사람이다. 나가면서 우리한테 '굳이' 또 인사를 한 거다. 너도 좋은 하루 보내라고 답해주고 S와 말없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마주 봤다. 이상한 사람이 다 있네 싶었다.
그 식당이 드물게 카운터에 가서 계산하는 시스템이라 계산하러 갔는데 우리가 먹은 게 계산이 끝났단다. 우리 앞에 들어왔던 그 남자가 계산을 하고 갔다며. 이게 무슨 일이지. 식당 들어가서 자리에 앉을 때 직원한테 우리를 가리키고 무슨 말을 하는 거 같더니 그때 그런 일이 일어났나 보다. 이게 무슨 일이야를 연발하며 식당을 나와 주변을 둘러봤다. 혹시나 차 앞에 기다리고 있으면 어쩌나 긴장하며 주차장으로 갔더니 다행히(!) 우리 차만 서 있었다.
스타벅스 드라이브스루에서 뒷 차 커피 계산해 줬다는 얘긴 들어봤어도 식당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다니. S의 찝찝한 마음은 뒤로 하고 그 사람이 오늘 뭔가 좋은 일이 있어서 누군가에게 선행을 베풀고 싶었나 보다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서 우린 (생뚱맞게) 밥값만큼 파워볼을 샀다. 어쩐지 밥값을 지갑에서 비워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달까.
집에 와서 남편한테 말했더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단다. 본인이 일행이었다면 과연 그 남자가 밥값을 계산했을 거 같냐며. 당연하지! 소리가 안 나는 걸 보니 그런 부분 때문에 우리도 마냥 기분 좋은 해프닝으로 받아들이진 않은 것 같다.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밥을 사줬다'에 단어 몇 개를 바꿔 '백인 남자가 동양 여자들에게 밥을 사줬다'로 쓰면 그 간극이 너무 커 보이니 말이다. 후자처럼 생각하면 우리가 너무 꼬인 건가, 괜한 피해의식인가? 여기서는 빈번히 일어나는 선행인데 우리가 잘 몰라서 의심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파워볼은 4달러 당첨! 뒷 차 커피 한 번 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