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야제
작년 여름 한국에서 건강검진을 받은 터라 올해 방문엔 그냥 받지 말까 싶었다. 육 개월마다 치과 정기검진 받으러 가는 것도 싫은데 이건 말해 뭐 하랴. 검사받고 어딘가 중대한 문제라도 발견될까 봐 검사 자체를 받기 싫은 어리석은 인간이 여기 숨어있다. 우리에겐 아직 십오 년은 더 키워야 하는 생명체가 있음을 복기하며 늘 가던 센터에 예약을 걸었다.
한국에서 머물던 숙소에서 한 시간 넘게 지하철을 갈아타고 15분을 걸어 검진센터에 도착했다. 환복하고 혈압부터 재는데 이번에도 수축기 혈압이 120을 좀 넘겼다. 몇 분 뒤 다시 재니 116/79가 찍혀 안심하고 검진을 받을 수 있었다. 고혈압이 아닌 것도 좋은 거지만 당장은 혈압이 높으면 수면내시경을 못 하기 때문(일반내시경 절대 못해!)이다. 나는 검진센터만 가면 혈압이 높아지는 '백의 고혈압'이다. 집에서 아침에 재면 110/70 이하로 항상 찍히는데 센터만 가면 130/80 주변으로 찍혀서 알아보니 긴장한 데다 빨리 걸어온 게 영향을 미쳐 이렇다고 한다. 각종 초음파와 혈액 검사와 위내시경을 마치고 나오니 두 시간 정도 지나 있었다. 와, 착착착 빠르고 너무 좋다.
미국에선 주치의가 일 년에 한 번 문진과 촉진(다 벗고 합니다)을 하고 혈액검사 및 소변검사를 무료로 해주는데 그게 일종의 종합검진이다. 다른 검사가 필요하면 주치의에게 레퍼럴을 받아 해당 병원에 가서 각각 받아야 한다. 나는 갑상선 혹을 추적관찰해야 해서 주치의를 통해 Swedish 병원에서 초음파를 받은 적이 있는데 보험 적용받고도 400달러(적용 전 약 1000달러) 정도를 냈었다. 이번에 한국에서 받은 종합검진 비용과 맞먹는다.
몇 주 뒤 결과지를 받아보니 별 문제는 없어 보였다. 원래 알고 있던 여러 장기에 있는 혹들이 별다른 변화 없이 그대로 있다는 것과, 한국 사람 대부분 갖고 있다는 만성 위축성 위염도 그대로라 하고, 하나 추가된 건 빈혈이 생겼다고 한다. A형 간염 항체가 없다는데 한국에선 1차만 접종해 주질 않아서 미국 와서 맞았다. 이건 보험 있으면 무료다. 미국 의료 중 드물게 좋은 부분이다.
이번 여름에 한국으로 가기 직전 남편은 방광염 증세가 있어서 항생제를 먹었다(참조). 이틀 정도 복용 후에도 증세에 큰 호전이 없어 얼전트케어에 방문해 소변검사를 했는데 방광염균이 없다고 해서 혈액검사 및 생식기검사를 진행했다. 한국 도착 후 며칠 지나서 미국 병원으로부터 아무 이상 없다는 결과를 받았고, 남자는 방광염에 걸리면 균은 없어도 불편한 증상은 오래 지속되나 보다 싶었다.
그리고 며칠 후 건강검진을 받고 이주 정도 지났는데 검진센터로부터 PSA(prostate specific antigen, 전립선 특이항원) 수치가 이상하니 비뇨기과를 가보란 문자를 받았다. 남편은 한국 전화번호가 없어 내게 연락이 왔는데 무슨 내용인지 물어보려 전화하니 본인이 아니라 알려줄 수 없고 검진결과서는 다음날 발송되니 확인하라고만 했다. 하필 남편은 하루종일 회의가 계속 잡혀 있어서 외부에 나가 있는 상태라 혼자서 PSA 수치에 대한 내용을 찾아보며 속을 끓였다. 수치가 4 이상이면 전립선암 위험이 있다는데 작년 결과지를 보니 1 미만이고 올해는 어떻길래 연락이 온 걸까. 방광염 걸린 게 그 수치에 영향을 줬을까? 아니 처음부터 방광염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남편이 병원에 전화를 해 물어보니 수치가 12 정도 나왔다고 했다. 바로 주변 병원을 검색해 미용보다 의료진료를 많이 보는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으러 갔다. 상황을 말했더니 소변검사, 혈액검사, CT, 항문초음파를 바로 진행했고 다행히 전립선암은 아니고 전립선염과 전립선비대증 초기 판정을 받았다. 우리가 방광염이라 자체판단했던 게 실은 전립선염이었고, 전립선염에는 항생제를 보통 4주 정도 쓰는데 1주만 써서 병증이 잡히지 않아 PSA 수치가 높게 나온 거라는 설명을 들었다. 병원에서 검사했을 땐 8 정도가 나왔고 이 수치는 천천히 떨어지므로 6개월 정도 후에 미국에서 정상범주로 내려왔는지 다시 확인해 보라고 했다. 항생제 일주일치와 전립선비대증 약을 처방받아 먹고, 일주일 뒤에 다시 검사한 뒤 약한 항생제를 일주일치 더 처방받고 전립선비대증 약 3개월분을 타서 미국에 돌아왔다. 처방할 수 있는 최대치를 받아왔는데 그 정도면 초기라서 잡힐 거라고 했다.
검진을 받지 않았다면 미국에서 전립선비대증 증상이 나타날 때까지 모르고 있다가, 저 검사들을 세월아 네월아 기다리며 레퍼럴 받아 이 병원 저 병원 다녔을 생각을 하니 아찔하다. 비용은 뭐 생각하기도 싫다.
암일까 봐 걱정했던 부분에 대해 한시름 놓고 결과지를 보니 눈에 띄는 내용들이 있었다. 남편의 장기 곳곳에도 혹이 몇 개 생겼다고 하고, 지방간과 콜레스테롤 수치도 좋지 않았다. 한쪽 귀 청력 저하는 3년 전부터 얘기가 있었는데 이번에야 이비인후과에 갔더니 많이 낡아 있다며 소음 노출에 주의하란 말을 들었다. 우리 집 남자도 늙어가는구나 싶어 짠하다. 가끔 장난으로 아이에게 나중에 연하랑 결혼하라고 하면 그런 게 무슨 상관이냐던 남편이 이번엔 "그래 연하랑 결혼하는 게 좋겠다"라고 맞장구를 치니 더 애잔하다. 이제 이 장난은 그만 쳐야겠다.
큰 문제는 없으나 대단히 건강한 것도 아니라는 결과 덕분에 우리 몸상태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아이 등하교를 걸어서 같이 하며 하루 만 보 걷기를 실천 중이고, 라면을 (거의)끊었다. 나는 아이와 같이 자고 새벽에 혼자 일어나는 형태로 수면패턴을 바꾸어 야식은 자연스럽게 끊게 됐는데, 남편은 라면을 못 먹게 했더니 아이스크림을 계속 먹어서 어떻게 할지 좀 더 고민해 봐야겠다. 그리고 요일별 약통에 영양제를 넣어서 매일 잊지 않고 먹기를 실천하고 있다. 기억하자, 우리에겐 여섯 살 어린이가 있다!
그나저나 건강검진 때문에라도 매년 한국에 나가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