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돈이 나간다 물건도 사라진다
우리가 이용한 해외이사업체의 조건은 기본 3 큐빅에 $1,500이고, 그 뒤부턴 1 큐빅당 350 달러가 추가되는 형태였다. 그리고 전체 운임의 24%가 세관검역비용으로 추가 발생한다. 자비로 이사한다면 무조건 짐을 줄여야 한다. 짐이 많으면 세관 비용도 따라서 늘어나니까. 이사 지원받았을 땐 관심도 없어서 몰랐던 사실들을 우리 지갑을 열어야 하니 비로소 알게 된다. Homedepot이나 Lowe's에서 파는 이삿짐 박스 중 중간 크기 박스(50cmx50cmx50cm) 8개가 모이면 1 큐빅이 되므로 대략적인 이삿짐 규모를 파악하는 데 참고할 수 있겠다. 이 박스 하나에 담긴 물건의 가치가 50달러 미만이면 이걸 정말 가져갈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단 뜻이다.
귀국이사 업체에 서면으로 이사 물품을 체크하여 견적을 냈을 때 7~9 큐빅이 나온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 정도면 괜찮은데 싶지만 예상 견적과 당일 견적에 차이가 심하단 얘기를 좀 들었던 터라 실측을 받고 싶어서 방문견적을 요청했다. 가져갈까 말까 고민했던 빈백과 5단 서랍장 및 흔들의자를 포함해도 큐빅이 확 늘지는 않을 거라고 하더니 19~22 큐빅이 나올 거 같다며 견적을 다시 보내줬다. 좀 황당했지만 고민하던 가구도 다 처분하고, 원래 가져가려고 했던 커피머신과 선풍기는 돌아오면 찾을 요량으로 친구네에 맡기고, 책과 옷도 한 차례 더 정리했다. 내가 포장한 박스는 중형 10개(책과 문구류)와 대형 8개(옷과 잡화)였고, 당일에 업체가 와서 겉옷과 이불 및 주방용품 등을 1시간 정도 포장하여 33개 박스를 추가로 만들었다. 한국에서 미국에 올 때 67박스였는데 이 정도면 선방한 것 같지만 나중에 비용 청구된 걸 보니 16 큐빅(5 크레이트) 가까이 나와서 결국 이사비용으로 7400달러 정도 들었다. 이사비용 천만 원이 실화라니.
4주도 안 되어 생각보다 빨리 이삿짐이 도착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박스를 풀면서 보니 조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불은 압축하지 말라고 해서 봉투에 넣어두기만 했는데 그걸 그대로 하나씩 대형 박스에 넣었더라. 눈치 보여도 압축할 걸 그랬다. 대형박스들이 꽉 차서 온 게 없었다. 짐 한 두 개 들어있고 많이 비어 있었다. 옷걸이에 걸어둔 겉옷들은 특대형 박스에 7~8개씩 옷가게 전시하듯 넣어서 이 특대형 박스가 여러 개 나왔다. 포장할 때 좀 더 넣으라고 참견을 했어야 했나. 내가 그냥 대형박스를 더 받아서 정리할 걸 뒤늦은 후회를 해본다. 한국에서 미국 올 때 이용했던 업체에선 행거박스에 빽빽하게 옷을 걸어주셔서 그게 일반적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주방용품은 본인들이 포장해야 하므로 놔둬달라고 해서 나도 건드리지 않았고 어느 정도 과대포장은 예상했다. 어떤 박스는 스텐 냄비 세 개만 들어있고 어떤 박스는 그나마 양심적으로 그릇이 스무 개 남짓 들어있다. 미국 집에서 일회용품이 들어있는 서랍 하나를 포장하지 않아서 아까워하며 버렸는데 이쯤 되니 고마울 지경이다. 정리하면서 너무 예상했던 대로라 놀라지는 않았는데 이 쓰레기는 어쩌란 말이오. 작은 컵 하나에 종이포장지 5~6장씩 사용해서 박스 하나에 수백 장의 종이가 나왔다. 주방에서만 박스 8개를 해체했는데 우리 아파트는 재활용쓰레기 버리는 날도 일주일에 하루뿐이라 산더미 같은 종이류를 보관하는 것도 큰일이었다. 그릇을 쌌던 종이는 깨끗해서 아깝기도 하여 잘 펴서 일부는 내가 보관하고 일부는 친구가 쓰겠다 하길래 보내주기로 했다. 다음에 또 이사를 한다면 박스를 많이 받아서 모든 옷을 꺼낸 뒤 옷 사이사이에 주방용품 하나씩 넣어서 포장해야지. 그래서 이 쓰레기들도 줄이고 비용도 꼭 줄이리라 다짐해 본다.
그리고 이사업체에서 분실 및 파손에 대한 보험 청구기간으로 한 달을 준다. 한 달을 넘긴 직후 남편이 비싸고 좋은 거라며 가져온 운동기구(Teeter Freestep)를 그제야 조립하기 시작했다. 서재 베란다에 본체는 있는데 나머지 발판과 손잡이와 모니터 등이 보이지 않았으나 남편이 어디 챙겨놨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이 그걸 나한테서 찾았다. 우리는 모든 짐을 푼 상태였고 그만큼 큰 물건이 든 박스를 푼 기억이 없었다. 본체가 든 커다란 박스는 남편이 풀었는데 그 안엔 본체만 있었다고 한다. 난 거기에 운동기구 전부가 들어있었다고 믿고 있었다. 남편은 내가 푼 박스 중 어딘가에 나머지들이 있다고 믿었다 한다. 미국에서 이삿짐을 쌌을 때 51박스라고 적힌 종이를 받았고 남은 짐은 없었다. 한국에서 받을 때 51박스인 걸 확인했는데 그것들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업체 담당자에게 상황을 말하고 보상기간 지난 거 아는데 혹시나 물류창고 같은 곳에 크고 무거운 박스가 분실물로 분류되어 있지 않은지 확인을 부탁드렸다. 알아보겠다고 했는데 한 달 넘게 연락 없는 걸 보면 형식적인 답신이었나 보다. 어디서 사라진 건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1 큐빅은 차지하여 혼자 350달러 충분히 냈을 텐데 이제는 여기 와 엄청 크고 무거운 철물 덩어리로 남은 저것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우리 삶에 또 해외이사란 복병이 나타난다면 그땐 진짜 가볍게 가야겠다. 장기여행자처럼 이민가방만 여럿 챙겨서 비행기로만 이사를 끝내보자. 이사비용이 천만 원이면 그냥 살림살이를 다시 마련해도 될 것 같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