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어느 날 HOA(Home Owners Association)에서 우편물이 왔다. 트림(Trim)을 중심으로 찍은 우리집 사진을 동봉하며 우리가 위반한 커뮤니티 룰 조항을 언급하고 Re-painting을 요구하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막 낡진 않았는데... 15% 이상 peeling, cracked, missing, see-thru 등이 있으면 페인트칠을 다시 해야 한다는데 정말 그만큼 벗겨졌나 계산할까 잠깐 생각해 보았다.
어쨌든 하고 있는 말은 그냥 한마디였다.
집값 떨어뜨리지 말고 단장해라
원래 이렇게 생긴 우리집
아파트에 살던 버릇이 여전하여 내가 이 집에 대해 뭔가를 고민해서 바꾼다는 게 별로 설레지가 않았다. 7월에 HOA에서 다시 점검할 예정이니 이번 여름에 페인팅 계획이 없으면 기한연장을 신청하라고 쓰여 있었다. 뭐 칠하기는 해야겠지 싶어 지인들에게 물어서 몇몇 페인터를 소개받았다. 비슷한 조건으로 견적을 냈는데 $3,800 / $6,800 / $8,800으로 너무 큰 차이가 나서 카운터오퍼로 깎기도 애매한 상황이 되었다. 남편은 무조건 싼 곳으로 하자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그 페인터는 무면허 상태라는 걸 알게 되어, 그런 거 찝찝한 나는 싫다고 하다가 흐지부지 시간이 흘러갔다. 영주권 인터뷰에 신경이 쏠려 있어 우선순위가 밀린 것도 있고.
그냥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누군가 알아서 했으면. 그런 생각으로 남편에게 미루다가 퍼뜩 달력을 보니 5월도 다 지나가고 있었다. 매월 첫 화요일에만 Architectural Review Committee 가 열리기 때문에 그 회의 일주일 전까지 Re-painting 신청서를 접수해야 하는데! 그렇다. 여기는 내 집인데 페인트 색도 마음대로 바꿀 수가 없다. 기존 색과 같으면 허가 없이 그냥 다시 칠하면 되지만, 색을 변경할 경우 HOA에 신청해서 승인을 받아야만 한다.
급하게 우리집 사진과 인접한 집들의 사진을 찍어 신청서에 첨부하고, 페인트샵에 가서 집어온 색지를 붙여서 $20 체크와 함께 신청서를 제출했다. 분명히 요식행위이고 보통 다 허가가 난다고 했는데 우린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이유는 바디와 트림의 색이 너무 비슷해서. 트림을 더 진하게 하면 허가해 주고, 바디와 트림 둘 다 바꿀 거면 다음 달 회의로 넘어가므로 신청서(+$20)를 다시 제출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아니, 비슷의 기준은 누가 갖고 있는 겁니까, 내가 커뮤니티 페인팅 룰 읽어 봐도 그런 얘기는 없던데... 하지만 6월에 승인을 못 받으면 페인팅 일정을 잡기 어려울 것 같아서 급히 좀 더 진한 색으로 트림을 바꿔서 겨우 승인받았다.
칠하고 싶었던 색 조합 - 시뮬레이션
기존에 받은 견적은 그냥 폐기하고, 온라인에서 리뷰가 좋은 업체를 찾아 견적을 받고, 과하지 않은 것 같아 진행하기로 했다. 수요일에 페인터들이 왔고 선수금으로 $2,100을 건네니 작업이 시작되었다. 일단 강한 물살로 외벽을 청소하고 물기가 마르면 페인트를 칠하게 되는데, 우리는 파워워시가 끝나고 폭우가 몇 시간 내렸다. 그리고 새가 분비물로 아주 거하게 그림을 그려주고 갔다. 파워워시 왜 했니...
토요일에 페인터 세 명이 와서 바디를 모두 칠하겠다며 일을 시작했다. 기계를 이용해 스프레이로 뿌리면서 칠하는 방식이라 진짜 바디는 다 칠하겠다 싶었는데 한 면은 아예 칠하지 못하고 끝이 났다. 그리고 밤이 되자 비가 몇 시간 왔다. 이러지 마, 우리 방금 페인팅했다고!
토요일 바디 80% 칠 완료
시애틀, 요즘 일 년 내내 우기 접어들어
월요일 비 - 작업 취소
화요일 비 - 작업 취소
수요일 비 - 작업 취소
창문이 3개 빼고 비닐로 다 막혀 있어서 답답한데 비 때문에 계속 작업이 취소되어, 아침에 눈을 뜨면 비가 왔나 확인하고 날씨앱을 켜는 게 하루 일과의 시작이 되었다. 목요일 새벽에도 비가 왔고 오전에 소나기 예보도 있어서 또 취소구나 했는데 페인터들이 와서 작업하기 시작했다. 아직 젖어있는 거 같은데 작업할 거냐 물으니 집 만져보며 다 말랐다고, 그래도 지붕으로 가려진 현관문부터 작업하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트림은 롤러로 작업하고, 현관문은 열어둔 채로 기존 색을 갈아내고 프라이머를 칠한 뒤 다음 날 색을 칠한다고 했다.
날씨는 계속 흐리다가 저녁 무렵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해서 당일 작업은 끝이 났다. 그리고 또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아 놔, 우리 방금 페인팅했다고!!
금요일엔 날씨가 좋았고 4시쯤 작업이 끝났다. 집 주변을 돌며 추가 작업이 필요한 부분을 확인하고 바로 수정해 주었다. 잔금($3,250)을 치르고 팁($100)도 주고 나니 비로소 뭔가 끝낸 기분. 근데 앞쪽 기둥과 차고 기둥에 집 번호를 다시 달아야 하는데 페인터들이 못을 잃어버렸다며 우리보고 하라는 게 아닌가. 이것도 확인하고 잔금을 치렀어야 했네 하하. 알았다고 하고 나중에 보니 은색 번호판이 페인트로 얼룩덜룩해서 현관문 페인트 남은 걸로 대충 칠해서 붙였다.
어쨌든 변신 완료!
낮에는 이렇게 밝고
밤에는 이렇게 따뜻한 우리집
주택 외관 페인팅은 대략 아래와 같이 진행됩니다. 셀프로 하실 수 있다면 비용은 많이 절약됩니다.
1. 색상 선정
근처 페인트샵 브랜드를 보고 온라인에서 대략적인 색상을 선택합니다. 샘플로 여러 집들의 페인트 색상을 세트로 제공하고 있고, 직접 시뮬레이션해 볼 수도 있습니다. 가까이에 Sherwin-Williams 가 있어서 저는 주로 이 회사의 웹사이트(https://www.sherwin-williams.com/visualizer)로 색상을 조합한 다음, 페인트샵에 방문하여 색지를 수십 개 가져와서 다시 고민해서 선택했습니다. HomeDepot에 BEHR이란 브랜드도 있는데 트렌드 컬러에 대한 소책자가 많으니 참고하세요.
2. 페인터 선정
소개를 받아도 좋고 온라인에서 찾아도 괜찮습니다. 소개를 받으면 보통 개인이 하는 팀인 경우가 많은데 일은 믿을 수 있겠지만 일정 잡기가 어려운 단점이 있습니다. 업체를 통하면 하청을 주는 거라서 일정 잡기는 용이하나 어떻게 일하는 팀이 올 지 예측이 어려운 단점이 있습니다. 시간이 없거나 며칠씩 걸리는 게 싫다면 많은 사람이 와서 하루에 일을 끝내는 업체도 있으니 참고하세요.
3. 파워워시
선수금을 주고 외관 전체를 강한 물살로 청소하는 작업을 합니다. 그리고 며칠 말린 뒤 페인팅이 시작되는데, 페인팅하기 전에 오물이 묻은 곳이 없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게 좋습니다. 우리는 현관 쪽 벽에 새가 투척한 오물이 있었는데 그 위에 칠을 그냥 한 걸 발견하고 내용물을 뜯어내고 덧칠했습니다. 덧칠하니 덧칠한 티가 납니다!
4. peeling, crack, missing 등 선작업
너무 깊게 파이거나 떨어져 나간 부분은 메우는 작업을 합니다. 우리집 트림은 이 작업이 필요해 보였는데 했을 거라 믿고 있습니다.
5. 페인팅
창문과 포치를 모두 비닐과 종이로 막고 바디를 칠합니다. 바디 작업이 끝나면 가림막을 제거하고 트림을 칠합니다. 현관문은 칠하고 이틀 정도는 조심하라고 하네요. 다른 날은 집에 상주할 필요가 없지만 선수금 줄 때와 현관문을 작업할 때, 그리고 잔금 치를 때는 집에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6. 검사 및 마무리
페인터들이 다 끝났다고 하면 계약서에 적힌 항목들이 다 적용되었는지 같이 확인합니다. 적용했겠거니 하고 색이 덜 칠해진 곳이 있는지만 찾아서 다시 칠해달라고 하고 잔금과 팁을 치르고 마무리했습니다. 이후에 문제가 있으면 한 두 번은 와서 봐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은 페인트는 집에 두고 가므로 소소한 부분은 직접 수정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