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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ka Mar 15. 2020

세 살, 스키 타기 좋은 나이

아빠의 바람은 이루어질 것인가

회사 동기 H와 나는 회사 선배 A와 그의 친구 B로부터 각각 스키와 보드를 처음 배웠다. H와 나는 용평리조트 초보자 코스에서 몇 번 어기적 대다가(가르쳐 주신 게 분명 있었겠지만) 갑자기 상급자 코스(레인보우 슬로프)로 가는 곤돌라에 태워졌고, 매서운 바람이 부는 산꼭대기에서 A와 B님은 본인들의 스피드를 즐기러 떠나시고 우리는 거기 남겨졌다. 황망했지만 겨울 해가 짧으니 내려가야 했고, 도저히 우리가 스키와 보드 자세로 내려갈 수 있는 기울기가 아니어서 거의 기다시피 거길 벗어났다. 서툰 스키 초보자와 겁까지 많은 보드 초보자 둘이서 내려오는데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안전요원에게 실려가는 사람도 보이니 무섭고, 언제 이 길이 끝날지 몰라 눈물도 좀 날 것 같았다. 한 시간 정도 걸려서 내려오니 선배님들이 왜 이리 늦었냐 더 타려면 야간권 끊어야 한다 하셔서 그냥 빨리 집에 가자고 서둘러 스키장을 벗어났다.


그 뒤로 몇 년은 스키장에 가지 않다가, 보드를 즐기는 남편을 만나 다시 좀 배워서 턴은 못하지만 쓱쓱 내려올 수는 있게 되었다. 거기까지는 재미가 있었던 것도 같은데 속도가 나면 마음이 불안하고 자꾸만 멈추고 싶어서 더 이상의 흥미가 나지 않았다. 어떤 날엔 스키장 가기로 했는데 별로 타고 싶지 않은 차에 마침 친구가 보드를 배우고 싶어 하길래 냉큼 데려가 남편에게 보드를 배우게 하고 난 대충 타기도 했다. 그렇게 보드와는 안녕.


눈 내려서 더 폭신폭신한 스키장. 몸풀기로 눈사람 만들기

시애틀 지역은 겨울에 주로 비가 내리고 눈은 몇 번 보기 어렵다. 하지만 집에서 동쪽으로 조금만 달리면 산맥을 지나 기후가 바뀌고 바로 거기에 The Summit at Snoqualmie라는 꽤 큰 스키장이 있다. 지난겨울엔 튜빙 하러 자주 갔는데 스키 타는 사람들을 보며 남편이 말했다.

"내년엔 아이한테 꼭 스키를 가르치자. 우리 가족이 다 같이 스키 타는 게 내 꿈이야!" 

그.. 그래 당신 꿈인데 나도 배워야 하는구나, 그렇구나.


우선 아이부터 가르치자 타협을 하고 스키장에 가기로 한 날, 아침에 비가 많이 내려서 CCTV로 스키장 상황을 확인해 보니 눈이 날리고 있길래 출발했다. 스키장 쪽으로 가니 점점 눈 섞인 비가 내리다가 어느 순간 눈으로 확 바뀐다. 겨우 주차한 뒤 눈보라를 뚫고 스키장에 들어갔더니 아이는 신이 나서 눈사람부터 만들기 시작한다. 올해는 우리 동네에 눈이 펑펑 왔을 때 한국에 있었던 터라 아이가 눈사람도 못 만들고 썰매도 타지 못해 내내 아쉬웠는데 여기서 다 풀고 가려나 보다.


드디어 탑니다. 혼자 타겠다네요?

렌털하우스에서 아이의 스키를 빌려서 신기고 야트막한 언덕에 데리고 갔다. 아이의 첫 도전에 괜히 나도 두근두근. 아빠가 손을 잡고 끌어주려고 는데 아이는 자꾸 뿌리치면서 혼자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 알지, 뭐든 혼자 다 하기 딱 좋은 나이 세 살. 

손을 놓으니 경사를 따라 스르륵 미끄러지더니 재미있다며 씨익 웃는다. "또 타!" 

좀 더 긴 언덕으로 데려가 손을 놨더니 엉거주춤 일어났다 앉았다 나름 중심 잡을 심산인지 춤을 추며 내려온다. "또!" 

그런데 이번엔 꽈당 넘어진다. 눈물 닦고 다시 가는데 또 꽈당. 그리고 또 우당탕탕꽈당.


에잇 스키는 무슨 스키

0에서 1을 알게 되어 무서움이 왔는지, 이제는 일으켜주고 출발하자고 하면 그냥 주저앉아 "난 자꾸 이렇게 넘어져" 하신다.

야, 너 아까는 재미있다며! 

스키를 벗겨주니 언제 침울했냐는 듯 소리를 지르며 눈에서 놀기 바쁘다. 스키 다시 탈까 물으니 싫다고 하고, 다음에 다시 타러 올까 물으니 그것도 싫단다. 하지만 눈놀이는 좋아서 볼이 빨갛게 터져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아빠와 눈밭을 뒹군다.


남편, 어떡하니. 당신 꿈이 이뤄지기 쉽지 않겠어.





내리던 비가 서서히 눈으로 바뀐다

Snoqualmie Pass로 가다 보면 눈이 쌓이는 지점에 '4륜 구동이 아닌 차는 스노체인을 장착하라'는 지시판이 나오고 갓길이 길게 나타납니다. 거기서 반드시 스노체인을 채우고 출발해야 합니다. 스키장 구역으로 들어가면 도로제설을 했더라도 눈이 내리는 날엔 바퀴의 반이 눈으로 가려질 정도라 위험합니다. 다시 시애틀 쪽으로 나올 땐 기후가 바뀌는 지역의 도로에 스노체인을 뺄 수 있도록 갓길이 나 있으므로 거기서 정리하고 출발하시면 됩니다.


어린이용 스키 렌털 비용은 $25이고, 헬맷도 빌리려면 $8을 추가해야 합니다. 렌털하우스에서 신청서를 작성해서 계산하고 스키와 부츠를 받을 수 있고, 어린이 부츠는 US 8 사이즈부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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