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갑작스레 집단감염이 터질 때부터 예상하긴 했다. 어느 나라도 안전하지 않고, 이미 사람들 사이에 바이러스는 퍼지고 있겠구나. 조금만 늦게, 약하게, 천천히 닥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한 달여 만에 이곳 워싱턴주에서도 현실이 되었다.
매일 오전 11시에 업데이트되는 워싱턴주 확진자 현황표
내가 살고 있는 King County의 상황이 가장 심각한데, 한 요양병원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한 상태라 앞으로도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 알려지다시피 진단키트의 정확성이나 진단 속도가 한국보단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밝혀진 숫자가 저 정도라면 이미 많은 사람들이 감염되었으리라 추측할 뿐이다. 한국처럼 역학조사를 통해 확진자의 동선을 공지하고 방문지를 폐쇄하는 등의 적극적 대응은 아직 활발하지 않다. 다만 이 바이러스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는 각자 위생에 신경 쓰고 아프면 집에 있으라는 게 정부의 권고사항이다.
남편은 이번 주부터 스스로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데, 수요일 밤 회사로부터 공식적으로 3월 말까지 가능하면 재택근무하라고 지침이 내려왔다. 시애틀에 있는 대기업들이 대부분 같은 지침이 내려왔다고 한다. 학부모들도 학교 휴교하라고 청원을 시작했다. 여기 사람들은 원래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생활화되어 있고, 이제 몇 주간 많은 사람들이 재택근무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확산이 둔화되지 않을까 낙관해 본다. 그래야 내 마음의 불안도 사라질 것 같으니까.
미국 살면서 이런 적 처음. 프라임나우 배달 좀 해 주세요
지난 주말에 대형마트에서 물, 휴지, 쌀 등의 사재기가 좀 있었다고 한다. 우린 토요일에 한인마트에 일찍 가서 고추장, 라면, 참치, 컵밥 같은 걸 좀 많이 사 왔다. 손소독제를 뿌려가며, 이게 무슨 일인가 생각하며. 다른 식재료는 Whole Foods Market에 온라인 배달시키면 되겠지 하고 일요일 저녁에 주문을 했더니 배달이 꽉 차서 주문이 안됐다.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이 이런 것들로 나타나고 나에게도 전이되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새벽에 눈이 떠지길래 배달을 다시 시도했더니 운 좋게 성공해서 그날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는 다시 주문이 되지 않는다. 목요일엔 어쩔 수 없이 마트에 갔는데 평소와 다른 거라곤 마트에 어린이들이 아무도 없다는 것 정도였다. 아시아 사람들에 대한 차별적 시선은 느끼지 못했고 계산대에서 늘 하듯 인사를 주고받고 웃으며 나왔다. '그냥 마트 종종 다녀도 되겠는데?' 생각하다 '안전불감증 아니야?'하고 마음이 흔들린다.
식료품 사재기가 일어나기 훨씬 전부터 마스크와 손세정제는 구할 수가 없었다. 손세정제는 여기서도 워낙 많이 사용하니 그렇다 치고, 마스크는 쓴 사람을 본 적이 없는데 다 어디로 간 것일까?(원래도 마스크를 쓰면 위험하게 보는 문화라서 잘 팔지도 않는데 중국에서 환자가 증가하면서 바로 품절되었다는 얘기가 있긴 하다) 손세정제를 구할 수 없어서인지 비누도 품절. 심지어 어린이 감기약이나 해열제마저도 구할 수 없다. 그런데 지나면서 보면 식당엔 여전히 사람들이 많고 쇼핑몰 계산대에도 줄이 길다. "생활은 그대로, 대비는 충분히"라는 분위기로 봐야 하는 걸까.
3월 안에 한국도 미국도 코로나19 확산의 고리가 끊어지면 좋겠다. 너무나 평범해서 몰랐던 평온한 우리의 일상으로 빨리 돌아갈 수 있기를.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을 모든 의료 관계자 분들께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