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이던 월요일에 저녁을 먹고 있는데 밖에서 매캐한 냄새가 계속 났다. 단체로 고기를 굽고 있나 생각하다 캘리포니아에서 산불이 크게 났다더니 여기까지 연기와 재가 날아오나 보다 싶었다. 일단 창문을 닫고 찾아보니 워싱턴주 곳곳에서도 불이 나기 시작했고 집에서 30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도 발화지가 있어서 동네까지 날아온 것이었다. 그때부터 창문은 못 열고 환기는 팬을 돌려서만 가끔 하고 산책도 못하고 집에 갇혀있는 중이다.
코로나맵 아님 - 출처 https://fire.airnow.gov/
해마다 여름이면 건조한 날씨 때문에 캐나다에서 산불이 크게 나고 워싱턴주까지 재가 날아오는 일이 반복됐다. 그럴 땐 한국처럼 대기가 뿌옇고 날리는 재가 눈에 보일 정도여서 며칠은 문을 닫고 생활해야 했다. 올해는 코로나 덕분에 사람들의 이동이 적어 산불 안 나고 지나가나 했는데 캘리포니아-오리건-워싱턴에서 40개 이상의 큰 불이 최근 몇 주 사이에 발생한 것이다. 유례없이 큰 불이라 비가 와야 잡힐 것 같다는데 다음 주 화요일에나 비 소식이 예정되어 있어 그때까진 집에 꼼짝없이 있어야 한다. 사실 창밖을 보면 나가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다. 나가면 반드시 아플 것만 같은 하늘이다.
9월 12일 아침 하늘(세피아보정 아님)과 급조한 공기청정기
주말이면 스타벅스에서 픽업한 아침을 차에서 먹고 마트를 다녀오는 게 거의 유일한 콧바람 쐬기인데 이번 주는 그럴 수 없고, 온라인 배달을 시키기에도 너무 죄송스러운 대기오염상황이다. 그냥 반조리 식품을 데워 먹고 불을 최소한으로 쓰는 요리만 하면서 버텨봐야지. 얼마나 많은 나무가 타고 있길래 이런 것인지 가늠도 되지 않고, 이것이 기후위기를 더 앞당길 것 같아 걱정도 된다. 우리는 며칠 외출하지 못하는 불편함 뿐이지만 이번 화재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도 많다 하니 안타깝고. 그저 다시는 이런 큰 불이 나지 않기를 바라고 바랄 뿐이다.
9월 12일 밤. 위압적인 미세먼지 상황 - 출처 https://www.airnow.gov , https://aqicn.org
시애틀의 아름다운 여름은 코로나와 함께 하느라 즐기지 못하고 마지막엔 산불로 인해 아예 집 밖을 나가지 못한 채 떠나보내게 되었다. 다음 주에 비가 내리고 나면 이곳은 우기에 접어들 것이고, 비 와서 집에 있다 보면 2021년이 오겠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