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y-at-Home이 계속되던 가운데 5월 5일부터 주립공원의 출입허가가 났다. 집에 있으라면서 공원은 열어주면 어떻게 하라는 건가 싶어 갈 생각은 안 하고 있었는데 2주 뒤 토요일에 날씨가 너무 좋아서 공원에 가 보았다. 늘 가던 모래밭이 있는 쪽으로 갔더니 주차할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비고 사람들도 너무 많았다. 그래, 우리도 날 좋다고 나왔는데 미국 사람들이 안 나왔을 리가 없지. 차를 돌려 패들보트 타는 쪽으로 가니 그곳엔 사람이 적어서 물리적 거리를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어 보였다. 다음 날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가서 돗자리도 펴고 해먹도 설치한 뒤 간만의 여유를 누렸다. 수영복 입은 사람들이 멀찍이 앉아서 대화하고, 가족들이 둘러앉아 밥을 먹고, 아이들은 카누와 자전거를 타고, 그런 모습들을 보고 있으니 그냥 기분이 좋았다. 그냥. 타의로 인해 이동의 자유를 제한받으니 알게 모르게 쌓인 답답함이나 억울함이 있었나 보다.
우리도 날씨 좀 즐겨보자
올해는 COVID-19 덕분에(!) 한 달 늦게 동네 파머스마켓이 열렸다. 마스크를 쓴 상태로 제한된 인원만 입장할 수 있고, 부스도 예년의 1/4 수준으로 멀찍멀찍 배치되어 있고,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거리 두며 다녀서 좀 안심이 됐다. 언제까지 집에만 있을 순 없고, 누군가는 소비를 해야 다른 누군가가 살 수 있으니까 서로 조심하면서 생활을 이어나가야지. 오랜만에 나들이 나온 아이도 팝콘을 하나 받고 신이 났고, 실해 보이는 snap pea와 맛있어 보이는 딸기와 레이니어 체리를 산 나도 콧노래가 나왔다. 소나기가 와서 소리 지르며 차로 돌아가는 길도 싫지가 않다. 셋이서 몇 달 만에 같이 장을 본 것인지 두근두근 들썩들썩.
나름의 자구책을 마련하여 개장한 파머스마켓
워싱턴주는 5월부터 경제 재개를 단계적으로 시작했지만 여기 킹 카운티는 Stay-at-Home 명령이 5월 31일에서야 해제되었다. 수정 1단계가 시행되어 야외에서 5명 이내의 인원이 모일 수 있고, 식당은 야외테이블 50%에 한해 영업할 수 있게 됐다. 가능하게 됐다고 해서 사람들을 막 만나거나 외식을 하지는 않겠지만 외출해도 되는 자유(이걸 감사해야 하다니)가 생겨서 마음이 한결 낫다. 사실 동네에서는 이미 사람들이 다 만나고 있다. 백야드에서 바베큐하며 모임하는 집도 있고, 집 앞 작은 공원에 삼삼오오 모여 애들은 잔디밭에서 뛰어다니게 하고 그렇게 얘기들을 많이 나누더라... 마스크도 쓰고 좀 떨어져서 얘기하면 좋을 텐데그쵸?
5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가 시애틀에서 있었고, 다음 날에 벨뷰 다운타운에서도 있었다. 시위를 틈타 방화와 약탈도 발생해서 야간통행금지령(군사정권때나 내리던 거 아닌가요...)이 며칠 내렸고, 시위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의미 있는 일임을 알지만 경제 재개와도 맞물려 코로나바이러스가 폭증하지는 않을지, 그래서 다시 감금의 세월을 보내게 되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된다. 미국이란 나라에서 집에 가만히 있으라고, 영업하지 말라고, 밤에 돌아다니지 말라고, 이런 명령을 들으며 살고 있다 2020년에.
졸업을 알리는 사인들
이번 학기에 학교에 가지 못했던 아이들이 졸업을 맞았다. 작년까지는 못 본 것 같은데 올해는 동네 곳곳에 아이들의 졸업을 축하하는 푯말이 꽂혀 있어서 찾아보니, 이런 Grad Yard Sign 문화가 원래 있는데 올해는 학교에서 졸업식을 하지 못해서 다들 집에서 이렇게 기념한다고 한다. 이 아이들에게 2020년 상반기가 어떻게 기억될까. 아이들이 9월에 새 학기를 맞을 땐 집이 아니라 꼭 학교에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