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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ka Jan 02. 2021

아직 한국 시간을 산다

스스로를 지키는 자가격리 중입니다만

눈을 뜨니 정오. 어제보다 한 시간 빨리 눈 떴다. 출근하는 사람도 없고 외출할 일도 없으니 급할 게 뭐 있나 2주 동안 시차 적응하면 되지. 밥을 안치고 나니 다다다다다 아이가 달려오는 소리가 난다. 뛰지 마 밑에 집에서 불편해해! 라고 말하려다 보니 아, 여기 미국이지, 정신을 차려본다. 일어나 밥 한 끼 먹었을 뿐인데 해가 지고 있다.


코로나가 곧 끝날 것도 아니잖아


남편의 이직 레이스가 거의 끝나고 10월 마지막 주에 원하던 회사의 오퍼 레터를 받았다. 이직하기 전에 최대한 쉬기로 합의했기 때문에 출근도 1월 중순으로 잡아 두었다. 여기서 스키장이나 리븐워쓰 정도 여행 가자고 대략 계획한 터였는데 그는 갑자기 한국 가는 게 어떻겠냐며 내 의사를 물었다. 이직 인터뷰 시작할 때 한국행을 고려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아흔이 다 되신 할머니도 뵙고 싶고, 5년 동안 받지 못한 우리 부부의 건강검진도 받고 싶고, 친구들도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이 시국에 비행기를 타야 하는 위험성과 자가격리 2주를 감당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에 계속 물음표를 찍었다.


COVID-19가 금방 끝날 것 같지가 않아서 해외 입국자 자가격리 2주 규정도 계속될 것 같은데, 그렇다면 남편이 회사를 다니는 동안엔 아무리 휴가를 모아도 한국에 가기는 요원한 일이 될 것 같았다. 그래, 가자! 남편이 회사에 2주 노티스를 주는 순간 나는 2주 뒤 출발하는 한국행 왕복 비행기표와 자가 격리할 에어비앤비 숙소를 예약했다. 그리고 비행기 타러 갈 때까지 집에서 최대한 몸을 사렸다.


한국에서 가장 자유로웠던 자가격리 기간

공항에도 비행기에도 사람이 거의 없어서 큰 불안함은 없었고, 인천공항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보니 이 시국에 입국해서 죄송합니다 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자가격리기간은 힘들지 않았다. 게스트하우스로 사용하던 한옥을 빌려서 아이도 우리도 새로운 체험이었고, 마당이 있으니 갇힌 기분도 들지 않아서 좋았다. 찬찬히 처리해야 할 일들을 하고, 먹고 싶었던 음식을 배달시켜 먹고, 포토북도 편집하며 슬기로운 격리생활을 마쳤다.


돌아가자

격리가 끝날 무렵 한국도 확진자가 늘기 시작했다. 누구를 만나기도, 어디 놀러 가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가끔 백화점에 가서 밥을 먹고, 볼 일을 보고, 남은 대부분의 시간은 부모님 댁에 머물렀다. 아파트에서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건 참... 어려운 일이었다. 우리의 방문 목적 대부분을 마쳤으니 그만 돌아가자는 남편의 요청에 따라 비행기표를 10일 당겨서 오게 됐다.


왔다. 일 확진자 20만의 나라로.


시애틀 공항에서 코로나 관련 질문이나 체온 확인 등의 아무 절차도 없었다. 그래도 돌아와서 2주 자가격리에 돌입했다. 남편이 진지하게 물었다. 우리의 자가격리 목적이 무엇이냐고, 우리 스스로를 지키는 자가격리냐고. 생각해 보니 확진자 적은 나라에서 엄청나게 많은 나라로 와서 자가격리라니 웃기긴 하다. 맞다. 이건 우리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자가격리다.  밖이 더 위험한 것 같으니 당분간 집에 머무르자 :)


미국에 있을 땐 한국이 그립다. 늘 가고 싶은 건 아니지만 문득문득 여기 있는 내가 낯설다. 그런데 내가 그리운 건 한국에서의 일상이지 한국으로의 여행은 아니었던 거지. 머무는 곳이 내 집이 아니라서 불편하고, 돌아가고 싶은 내 집이 미국에 있다는 것은 조금 슬펐다. 회사 그만두겠다고 노래하는 사람들이 제일 오래 다니듯이,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더 오래 이민자 생활을 한다고 누군가 그랬다. 나도 이제 그런 마음일랑 꾹 눌러둬야할끄나.




자가격리를 힘들지 않게 해줬던 배달음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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