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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ka Feb 06. 2021

어쩌다 보니 해외 이직

마흔 중반, 멋모르고 해외취업(1)

마흔 중반, 멋모르고 해외취업(1)

2016년 9월 21일 12시 50분, H1B(와 H4) 비자를 들고 시택공항에 도착했다. 원래 담당 직원이 공항에서 픽업할 거라고 안내받았는데 나타나지도 않고 전화와 이메일 연락도 받지 않아서, 셔틀을 타고 렌터카 빌리는 곳으로 가서 차를 빌려 임시숙소로 향했다. 시애틀 다운타운은 어찌 그리 비탈길도 많고 일방통행도 많은지, 건물 앞에 잠깐 차를 세우고 숙소 열쇠를 받아와도 되는지, 주황색 깜박이는 화살표에 좌회전을 해도 되는지, 별 게 다 어렵고 긴장됐다.

SEA-TAC 도착 직전, 약간의 설렘도 있었지


해외취업, 그게 뭔가요?


남편은 대기업에서 오랜 시간을 근무했고 자연스럽게 직급에 따라 관리자 업무로 들어서게 되었다. 하지만 개발자로 남고 싶은 욕망이 있어서 퇴근 후 집에서 혼자 공부하고 개발하는 일을 이어갔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2015년 상반기에 링크드인을 통해 아마존 리쿠르터에게 연락이 왔다. 이 시기에 그는 창업에 대한 열망이 강했기 때문에 그런 연락이 와도 관심이 없었다.


“이 아이디어 어때?” 하며 남편이 뭔가 아이템을 물어오면 나는 “어디서 본 거 같은데?”라거나, “이미 관련 특허/서비스가 있어”라며 안 되는 증거를 들이미는 게임이 반복되던 시기였다. 몇 달을 고민하던 남편은 경험치를 올릴만한 회사를 다녀보고 창업을 하겠다며 알아보기 시작했고, 아마존 리쿠르터한테 연락 왔던 게 생각나서 굳이 국내로 한정할 필요가 있을까 하여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2015년 10월, *링크드인 프로필을 정리하고 이력서를 내기 시작했다. 이때 아마존에서 킨들 개발인력을 뽑는데 지원해보지 않겠냐는 연락이 와서 이력서를 내고 온라인 코딩 테스트 날짜를 받았다. 남편은 아무 준비 없이 코딩 테스트에 들어가서 시간 내에 다 풀지 못하게 되자 아예 제출을 하지 않았다. 결과는 물어서 뭐하겠노. 이직 시도도 해외취업 시도도 처음인 초짜가 기본 실력만 믿고 있다가 *따로 공부해야 하는 거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지원할 회사를 정하고 이력서를 내는 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어서 나는 본격적인 정보 탐색에 나서게 되었다. 일단 지원할 나라는 미국/캐나다/호주/싱가폴/홍콩 정도로 제한하고 이 나라들의 채용 형태나 방식이 어떠한지 찾아봤다. 당시 미국은 취업시장이 호황이긴 하나 취업비자(H1B)가 추첨제라서 떨어지면 오퍼가 취소될 수도 있다고 하고, 캐나다는 취업시장이 얼어붙어서 해외채용이 어려운 분위기라고 했다. 호주는 기업이 스폰서하면 취업비자(457)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하고, 싱가폴이나 홍콩은 해외인력 수입에 대해 앞선 어느 나라보다 유연한 분위기였다.


호주에 Job description이 거의 100% 일치하는 공고가 있어 지원하고 며칠 뒤 헤드헌터와 20분 정도 이력서 내용을 확인하는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 마지막에 지원하게 될 회사명을 알려줘서 통과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고 한다. 합격하면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를 정리하고 오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물어서 두 달이라고 얘기하니 좀 길다고 했고, 457 비자가 필요하다고 하니 그 부분은 회사에 물어보겠다고 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헤드헌터가 메일로 회사 정보를 다시 알려 주었지만 더 이상은 진행되지 않았다. 남편은 비자 때문에 진행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호주 기술이민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캐나다 기술이민 비자를 받아본 경험이 있어서 쉽게 생각했던 방법이지만, 우리가 나이가 들었다는 걸 간과했다. 호주 기술이민 점수를 맞추려면 남편이 ielts를 8.0 이상 받거나, 남편이 7.0을 받고 내가 파트너 점수 5점(ielts 6.0+경력심사)을 획득해야만 겨우 가능했다.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은 방법이라 진행할 것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ielts는 보기로 하고 12월로 시험 신청을 했다. 이 즈음에 남편은 호주에 가서 지원하면 면접이 바로바로 가능하니까 확률이 높을 거라며 조급함을 내비쳤다. 너무 무모한 얘기(절대 대책 없이 가면 안됩니다!)라서 못마땅해하는 나와, 외국 나가는 걸 너무 쉽게 생각한다며 예민해진 그가 만나 살얼음판 같은 순간이 가끔 만들어지곤 했다. 남편의 경력으로 가고 싶은 곳과 갈 수 있는 곳에 괴리가 있었고 그것이 그의 복잡한 마음을 더욱 심란하게 만들고 있었다.


시행착오


아마존 코딩 테스트 이후 남편은 알고리즘 공부를 시작했다. 12월에 싱가포르의 한 회사에서 연락이 와서 온라인으로 코딩 테스트를 받았고 이틀 뒤 통과했다는 연락과 함께 스카이프 인터뷰가 15일에 잡혔다. 이직 준비하면서 첫 온사이트 인터뷰가 잡힌 터라 휴가를 내고 집에서 진행했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는데 마지막에 모르는 기술들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고 면접이 급하게 마무리되었다. 그땐 이력서에 없는 걸 왜 계속 묻냐 기분이 나빴는데 지나고 나서 보니 해외취업 인터뷰에 대해 우리가 너무 몰랐다.


싱가포르 회사를 진행하던 중 11월에 지원했던 미국 LG 법인에서 연락이 와 인터뷰가 잡혔다. 선택 가능한 인터뷰 일정이 모두 우리의 해외여행 일정과 겹쳐서 여행을 가서 인터뷰를 하기로 하고 노트북을 챙겨 12월 19일에 비행기를 탔다. 21일 밤 11시(방콕 시간)로 잡힌 화상 면접 때문에 남편은 준비해 간 자료로 공부를 했다.

호텔방에 인터뷰룸 차려 보았지


인터뷰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하였으며, 미국 거주자 대상으로 오픈된 건데 perfect fit 하니 같이 일하고 싶다는 얘기도 나왔다. H1B 비자를 먼저 걱정해주며 HR에서 연락이 가면 지금과 같은 열정을 보여 달라고 재차 당부하는 걸로 40여분에 걸친 면접이 끝났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합격 소식을 받을 수도 있겠다며 들뜬 마음이 있었음을 부인하지 않겠다. 방콕에서의 마지막 날인 23일까지 연락이 없자 아마도 이건 안 됐나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은 크리스마스-연말로 이어지는 휴가 시즌일 거 같은데 합격했다면 그전에 통보했을 것 같았다.


그날 밤 우리는 호텔방에 앉아 싱하를 마시며 꽤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쾌하기만 한 남편이 그렇게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줄 미처 몰랐고, 조직 개편 시기엔 업무공백이 있으니까 이런 취업 시도를 하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라며 남편을 몰아붙인 게 미안했다. 그는 새로운 조직에서 새로운 업무로 자리 잡아야 하는 시기에 취업 인터뷰 준비를 하느라 회사에 집중하지 못하는 상태였고 그것이 큰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LG가 안 된다면 시기상 미국 취업은 물 건너간 것 같으니 해외취업 시도는 일단 중단하고 2월까지는 회사에서 발 붙일 자리를 우선 만들어 놓고, 3월부터 싱가포르/호주 위주로 취업 시도를 할지 창업 준비를 할지는 그때 다시 논의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망쳤어!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복귀하며 새해를 맞았다. 남편은 회사 업무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라고 생각했는데 나 몰래 아마존에 이력서를 또 냈다. 온라인 테스트 날짜를 지정해야 한다며 말을 꺼냈을 때 약간 놀랐다. 복잡한 상황을 정리하며 스트레스 요인을 쳐냈는데 왜 다시 불씨를 피우나 싶어서. 끝이 보이지 않는 도전과 탈락의 반복이 그에게 심리적인 압박을 주었다면, 기간이 정해진 상태가 그에게 약간의 여유를 준 것 같았다.


온라인 테스트엔 세 문제가 나왔고 완벽하게 풀지는 못했지만 제출했다고 했다. 며칠 뒤 통과했다는 연락을 받고 전화 인터뷰가 잡혔다. 아침 7시였는데 리쿠르터에게 전화가 오지 않아 20분 정도 기다리다가 메일을 보내려는 찰나 전화가 왔다. 인터뷰는 30분 정도 진행됐고 마지막에 온라인 테스트 및 지금의 전화 인터뷰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다.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온사이트 인터뷰 시 참고할 자료라며 열 개가 넘는 첨부파일이 담긴 메일이 왔다. 나는 구글과 Glassdoor 사이트를 뒤져 온사이트 인터뷰 정보를 찾아서 남편에게 넘기고, 남편은 화이트보드 코딩에 대비해 그 문제들을 종이에 풀어보는 연습을 했다. Cracking the coding interview도 다시 보면서.


온사이트 인터뷰는 하얏트 호텔에서 2/22~26일까지 5일간 열렸다. 남편은 24일 오전 세션으로 신청해서 그날 휴가를 내고 아침 7시에 집을 나섰다. 8시 45분쯤 인터뷰 곧 들어간다는 메시지를 받고 나도 서울 갈 준비를 했다. 인터뷰 마치고 지쳐 있을 남편을 위해 이태원 맛집도 찾아보면서. 12시 50분에 종료 예정이라 맞춰서 갔는데 1시 10분쯤 인터뷰를 끝내고 그가 나왔다. *네 개 세션 중 마지막 세션을 망쳤다며 진한 아쉬움과 좌절감을 표하는 남편을 안아주며 그냥 웃을 수밖에 없었다. 문제 다 못 풀었다고 떨어지지는 않을 것 같은데...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피곤할 테니 집에 가자고 해도 뭐라도 하고 싶다길래 일단 강남 교보문고 가는 버스를 탔다. 남편은 계속 망친 인터뷰가 속상하다는 얘기를 하고 나는 뭔가 버스가 이상한 데로 가는 것 같아 찾아보다 반대 방향 버스를 탔다는 걸 알고 - 내릴까 그냥 서울역까지 가서 기차 타고 집에 갈까 - 남편에게 물어보려는데 갑자기 “어? Congratulations 메일이 왔어!”라는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햇볕이 따뜻하게 내리쬐는 버스를 타고 남영동을 지나가던 오후 2시 36분이었다.




        

* 이직을 할 때 링크드인 프로필 정리는 필수입니다. 전문업체의 도움을 받아 영문 이력서를 제대로 작성해서 올려두는 것도 좋겠습니다.


* 그 당시 알고리즘 공부는 책이나 여기저기서 찾은 걸로 공부했는데 미국에 와서 보니 leetcode.com에서 다들 준비한다고 합니다. 남편도 두 번째 이직은 리트코드로 준비했습니다.


* 아마존 온사이트에는 Bar Raiser 가 들어옵니다. 다른 인터뷰 세션과는 분위기나 질문 수준이 다르다고 하니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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