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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ka Feb 23. 2021

남의 나라에 일하러 가기 참 힘들구만

마흔 중반, 멋모르고 해외취업(2)


해외 오퍼는 처음이라

2016년 2월 25일 새벽에 직급과 연봉(Base/Sign-on/RSU)이 적힌 간략한 오퍼 메일을 받고 26일 오전 7시에 전화미팅을 잡았다. 대충 계산해 보니 제시된 연봉은 한국에서 받는 것보다는 많았지만 미국은 렌트비가 $2,000 정도는 기본으로 나간다고 하니 아주 많은 것 같지도 않았고, 글래스도어를 뒤져보니 직급에 따른 연봉 테이블이 있어서 그 범위 안에서만 약간의 조정이 가능한 것 같았다. 남편은 그냥 만족한다고 했지만 나의 부추김에 못 이겨 협상을 시도했다. 결국 Base를 약간 올렸고 그에 따라 *RSU도 미미하게 올랐다. 리쿠르터는 Sign-on으로 더 큰 인상액을 제시했는데, Base가 진짜 연봉이라고 생각(이라 쓰고 '우물 안 개구리의 착각'이라 읽자)한 우리는 그걸 택했다. *Sign-on은 2년 동안 지급되고, RSU는 첫 해 5% - 다음 해 15% - 이후 6개월마다 20%를 받는 조건이었다. 기본적으로 뽑아서 4년은 써먹겠다는 분위기가 퐁퐁 나는 계약이다.


미국 취업비자 추첨에서 떨어졌을 경우 어느 나라에서 일하고 싶은지 선택하라고 해서 1지망으로 밴쿠버, 2지망으로 더블린을 적어서 보냈다. 이런 걸 묻는 걸 보니 시애틀이 아니더라도 해외로 나가긴 하겠구나 싶었다. 온사이트 인터뷰부터 잡 오퍼, 연봉 협상까지 삼일 만에 이 모든 것이 끝났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해외채용을 나온 것이기도 하고, 취업비자 접수가 4월 1일이라서 급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신상도 털리고 정신도 털리고


연봉 협상이 끝난 뒤 곧바로 수정된 오퍼를 이메일 본문으로 받았는데 뭔가 공식적인 문서로 받은 게 아니라서 약간 불안한 날들이 흘러갔다. 그러다 딱 일주일 뒤 비자진행을 담당하는 에이전트와 리로케이션을 담당하는 에이전트에게 연락이 왔다. 비자 쪽은 담당 에이전트가 열어 준 사이트에 졸업 및 성적 증명서와 I-94 History, 여권 전면 스캔 파일, 그리고 혼인증명서를 모두 영문으로 업로드해달라고 했다. 5일 내로. 금요일 새벽에 메일을 받고 월요일에 비자 신청 관련 정보를 다 업로드하고, 화요일 아침 출근 전에 남편이 리로케이션 담당자와 전화통화를 했다. 오퍼 받을 때 첨부파일로 왔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몇 가지 궁금한 사항들을 물어볼 수 있어서 유익했다. 이삿짐을 배와 비행기로 나눠 보낼 수 있다고 했고, H1B 비자가 확정되면 8월부터 하우스 헌팅 트립을 5일간 지원한다고 했으며, 임시숙소 및 렌터카는 30일, 정착지원 서비스는 3일이 지원된다고 했다. 리로케이션 담당자가 보내달라고 하는 여권사본과 거주지 정보 등을 보내고, 시키는 대로 은행 계좌를 만든 뒤 그 날의 할 일을 마쳤다.


수요일 아침에 눈을 뜨니 비자 신청 정보는 추가사항 없다고 연락이 왔다. 그리고 토요일 아침에 미국 세금 담당자와 상담을 했는데 한국말로 해도 어려웠을 내용을 영어로 듣고 있자니 그렇게 곤욕스러울 수가 없었다. 아무튼 한국에 있는 금융계좌를 미국에서 세금 신고할 때 다 신고해야 한다고 해서 계좌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 싶었고, 첫 해 세금신고는 회사에서 회계사를 붙여준다고 하니 고민할 일은 아닌 듯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싱가포르에 있는 해외이사 담당 에이전트가 예상 이사 날짜와 귀중품 여부를 물어 와서 메일로 답변을 보냈다. 우린 귀중품 따위는 없어… 일요일 오전엔 시애틀 정착지원 담당자랑 간단한 통화를 했는데 시애틀에서 집 고르는 법이 담긴 수십 장의 문서를 보내 줘서 열심히 봤다. 담당자가 계속 늘어나고 우리가 봐야 할 문서도 계속 늘어났다. 며칠 뒤 회사에서 지정한 한국 회계법인과 전화상담을 했는데, 한국에서 연말정산을 안 하고 가니 2017년 5월 종합소득세 신고를 통해 정산할 수 있고 그걸 지원한다고 했다.


3월 셋째 주부터는 별일 없는 조용한 날들이 지나갔다.


우리의 운은


미국 시간으로 4월 1일이 되자 H1B 비자를 접수했다는 메일이 도착했다. 드디어 시작이다. 85,000개의 쿼터에 들어갈 수 있을지 순전히 운에 맡기는 레이스. 프리미엄으로 신청 시 조금 빨리 결과가 나온다고 하는데 우리는 레귤러로 들어갔고, 4월 28일 밤 11시 반쯤 receipt notice를 이메일로 받았다. 오, 우리 운 좀 좋은데? 더 이상 아침마다 메일을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가장 기뻤다. 이제 우리 비자를 승인해 줄 일만 남았다.

당첨 기념 파티(겸 결혼기념일 겸 임신 축하 겸겸겸)

6월 9일에 (아마도 합류하게 될 팀의) 아마존 엔지니어로부터 H1B receipt notice를 받았는지 확인하는 이메일이 왔다. 그리고 15일에는 리로케이션 담당자에게서도 같은 사항을 확인하는 이메일이 왔다. 7월 9일 토요일 아침, 드디어 이민국 사이트에서 우리 케이스의 상태가 approved로 바뀌었다!


진.짜.간.다.



이제 비자를 내놓으시지!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에 비자용 사진을 찍고 DS-160(미국비자신청서)을 어떻게 작성하는지 좀 살펴봤다. 7월 12일 화요일 아침, H1B 승인된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Q&A 세션이 오픈되니 맞는 시간대를 골라서 접속하라고 아마존에서 연락이 와서 한국시간으로 15일 오전 11시에 열리는 세션에 참석하기로 했다. 14일 아침엔 비자 담당자에게서 I-797B(H1B 승인레터)를 페덱스로 보낼 테니 주소를 확인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 승인되고 나니 차근차근 진행되는구나. HR에 답신을 보내면서 정착지원 및 해외이사 담당자에게도 비자가 승인되었다고 연락을 했다.


15일에 열린 온라인 Q&A 세션의 내용은 그동안 우리가 조사했던 것과 크게 어긋나는 건 없었고, 미국에서 승인패키지가 오기 전까지 DS-160에서 채울 수 있는 부분은 채워 두었다. 당시에 비자 인터뷰 시간 잡으려면 한 달 가까이 걸린다고 해서 예약을 빨리 해야 했는데 페덱스 우편물이 계속 오지 않아서 21일에 연락했더니 아직 보내지도 않았다고 하는 게 아닌가. 곧바로 보내겠다고 하길래 일단 복사본을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해서 다음날 DS-160을 접수하고(수수료 $190*2명) 인터뷰 예약 사이트에서 28일 오전 8시 30분으로 운 좋게 예약을 마쳤다. 승인 패키지 원본은 25일 월요일 오전에 받았다.


7월 28일 오전에 세종로주차장에 주차하고 8시 20분경 미국 대사관에 도착했다.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없어서 여권과 예약확인서를 입구에서 보여주고 바로 들어가서 휴대전화를 맡기고 검색대를 통과했다. 비이민비자는 2층에서 인터뷰가 진행되는데 올라갔더니 5~60명 정도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DS-160, 여권, 예약확인서, I-797, 가족관계증명서를 가져왔는지 서류 확인하는 곳을 한번 거치고 20분 정도 기다려서 지문 등록하는 곳에서 지문 등록을 하고 인터뷰 번호를 받았다. 그런데 이 부스 직원 분이 재직증명서, 소득증명서, 사원증을 요구하셔서 가져오지 않았다고 하니 한숨을 쉬며 “알아서 면접 보세요”라고 하여 살짝 조바심이 났다. 우리 앞의 4명이 각각 10분 정도씩 인터뷰를 길게 했는데 영사가 영어로 묻다가 한국어로 물어본 분들은 결국 거절되셔서 우리도 조금은 긴장한 상태로 인터뷰에 들어갔다. 아마존 가서 무슨 일 하느냐? 한국에서 어디서 일했니? 몇 년 일했니? 미국에 공부하러 간 적 있어? 석사/박사? 이것만 묻고 끝났다. 비자 승인되었으니 3~5일 이내에 갈 거라고 했고, 비자는 바로 다음날인 금요일 점심때 도착했다.


남편은 일주일 후 회사에 퇴사 통보를 했다.



떠날 준비


비자 스탬핑 받았다는 소식을 그동안 연락 중이던 담당자들에게 보냈더니, 이사업체와 날짜를 먼저 잡고 나면 비행기 예약과 정착지원 서비스가 개시된다는 답을 받았다. 이사업체와 얘기해서 이사 날짜는 9/9로 잡았고, 비행기는 마일리지로 좌석 승급을 하고 싶어서 우리가 예약하고 회사에 비용을 청구하기로 했다. 이 즈음에 리로케이션 담당자가 회사를 그만둔다며 후임자를 알려주고 떠났다.


출국까지 일정도 빠듯하고 나의 임신 여정도 험난한 상태여서 하우스 헌팅 트립은 아깝지만 포기하기로 했다. 8/16일 오전 8시에 정착지원 담당자와 통화하며 미국 도착 시 어떤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지 안내받았다. 주로 집 찾기에 삼 일을 다 사용한다며, 후보지 위주로 인스펙션을 같이 해주겠다고 했다. 미국에 은행계좌를 미리 열 수 있냐고 물으니 SSN 없이 회사 보증으로 HSBC 또는 FirstTech에서 열 수 있다고 안내받았다. 회사 이름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외노자 맞구먼.


해외이사 담당자가 9월 2일까지 CBP Form 3299(미국 이사 세관 서류)를 채워서 보내달라고 해서 작성해서 보내고, 비행기짐과 배짐을 구분해서 대략의 항목과 가격을 적어서 제출했다. 새로운 리로케이션 담당자는 일주일 넘게 연락이 안 됐는데 아팠었다며 9월 3일까지 임시숙소의 위치와 이용 안내를 해주겠으니 비행기표를 스캔해서 보내라고 해서 보내주었다.


8월 23일에 갑자기 백그라운드 체크 이메일을 받았다. 현재 회사에 퇴사 얘기도 끝났는데 지금에 와서 백그라운드 체크라니, 이게 통상적인 절차인지 뭔가 어긋난 절차(통상적인 절차 맞습니다)인지 알 수 없어 기분이 좀 그랬다. 아무튼 최근 7년간 어디서 일했는지 간단하게 묻고 백그라운드 체크에 동의한다고 서명해서 보내면 링크를 다시 보내겠다고 해서 동의 서명이 들어간 메일을 답으로 보냈다. 10일 정도 지나 백그라운드 체크도 완료됐다고 연락받았다.


9월 9일에 이사업체에서 짐을 싸고 있는데 남편이 일하게 될 팀의 매니저에게 전화가 와서 어떤 일을 하게 될지에 대해 한 시간 정도 통화를 했다. 비행기짐은 임시숙소 주소를 붙여서 보내야 하는데 이삿짐이 나가는 날까지 리로케이션 담당자가 임시숙소 주소를 보내주지 않고 이메일을 보내도 계속 답이 없었다. 이사업체에 상황을 설명하니 일단 주소 없이 짐을 보내고 주소가 나오면 바로 연락을 달라고 했다. 이삿짐은 70박스 좀 안되게 나왔고, 그중 4박스는 비행기로 받기로 했다. 며칠 후 비행기짐은 9월 17일, 배짐은 10월 3일 미국에 도착 예정이고, 검수절차가 3~7일 정도 추가로 소요될 거라고 연락받았다.


9월 14일에 비로소 임시숙소 후보지 세 곳을 받아 선택해서 답변을 보냈고, 렌터카 얘기가 없어서 물어보니 도착 당일에는 픽업차가 공항으로 갈 예정이고 다음날 임시숙소로 렌터카가 배달될 거라고 했다.


남편은 9월 15일 자로 퇴사를 했고, 우리는 21일 저녁 6시 40분 큰 여행가방 두 개를 들고 아시아나 비행기에 올랐다.


아마존 스피어에서 언제 다시 산림욕 할 수 있을까나





* 아마존 주가가 오르는 것을 보며 가장 중요한 건 RSU 였음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16년 2월 26일로 누가 좀 데려가 줬으면...

 

* 아마존의 경우 Sign-on을 한번에 주는 게 아니라 급여에 쪼개서 넣어줍니다. 그래서 3년차부터는 급여가 확 줄어들어 생활비에 타격이 올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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