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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ka Mar 18. 2021

대책없는 미국 강제적응기

마흔 중반, 멋모르고 해외취업(3)


웰컴 투 아메리카!


시택 공항에 도착해서 입국심사 대기줄이 어찌나 길던지 짐 찾으러 나오기까지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비즈니스석으로 누워서 왔으니 버텼지, 무거운 배로 오래 서 있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리로케이션 담당자는 연락도 없고 전화도 받지 않고, 내 얼굴은 점점 노래져갔다. 아무도 데리러 오지 않았다고 결론 내리고 직접 렌터카를 빌려 시애틀 다운타운에 있는 어떤 빌딩에 가서 임시 숙소 열쇠를 받아서 겨우 숙소에 도착했다.


임시 숙소는 Capitol Hill에 있는 3베드 아파트였다. 삼일만 머무르라고 적힌 임시의 임시 숙소. 피곤한데 배도 고파서 주변에 음식점을 대충 찾아 저녁을 먹으러 갔다. 뭔지도 모르겠는 메뉴판에서 겨우 스테이크와 무화과 샐러드를 찾아 시켰는데 왜 그렇게 맛도 없는지. 거의 남기고 백 달러 가까운 돈을 내고 나오면서 이것이 미국 물가인가 싶어 헛웃음이 났다. 숙소로 가는 언덕길에 작은 편의점이 보여서 물을 사러 들어갔는데 한국분이 직원으로 계셔서 거기선 찐웃음이 났다. 하루 종일 긴장하며 있다가 유일하게 편해서. 리로케이션 담당자의 매니저에게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약간의 항의 메일을 보내고, 들고 온 미국 유심이 왜 안되는지 판매처에 연락해 해결을 보고, 인터넷 전화를 켜서 부모님들께 잘 도착했음을 알리고 바로 잠이 들었다. 여행가방에 라면이 있었지만 그걸 꺼내 먹을 힘(과 기분)도 없어서 거의 기절하듯 잤다.


임시의 임시 숙소에서 내다본 시애틀


22일 오전 10시에 정착지원 담당자를 만나 얘기를 나눴다. SSN과 은행계좌 개설은 우리가 알아서 하기로 하고, 배정된 시간은 집 찾는 데 다 쓰기로 했다. 오후엔 회사 근처에 있는 은행에 가서 계좌를 만들고 데빗카드도 각각 만들었다. SSN을 등록해야 온라인 뱅킹이 가능하다고 하여 SSN 신청이 역시 급선무다 싶었다. 리로케이션 담당자의 매니저에겐 답장이 바로 왔다. 사과의 뜻을 전하며, 담당자를 교체했고 렌터카는 보상해 줄 테니 반납하고 회사 연계된 업체에서 다시 1개월 렌트를 해달라고 했다. 곧바로 새로운 담당자에게 연락이 와서 진짜 임시숙소를 배정해주었다. 마침 비행기짐이 세관을 통과했다며 언제 어디에서 짐을 받을 건지 알려달라고 해서 26일로 정하고 그 주소를 전달했다.


23일 아침엔 남편 혼자 *SSN을 신청하고 왔다. SSN 오피스 분위기가 좀 험악(?)하다며 나는 방문할 일이 없으면 좋겠다고 했다. 공항 근처에 렌터카를 반납하고, Link Light Rail을 타고 시애틀 다운타운에 내려 차를 렌트했다. 그리고 그날 또 뭘 했더라. 한국에 있는 은행에서 돈을 가져오기 위해 몇 가지 정보를 알아보고 신청했고, 임시의 임시 숙소를 나와 진짜 임시숙소로 옮겼다. 스페이스니들 근처의 원베드 아파트였다. 숙소는 좁았지만 바로 앞에 공원이 크게 있어서 캐피톨힐에 있던 숙소보다 훨씬 좋았다. 26일 아침에 보니 송금 신청 승인이 나서 필요한 돈을 송금했다. 그리고 이날 비행기짐 4박스가 도착했다. 드디어 단벌신사 탈출이다.


주말에는 어느 지역에 집을 구하면 좋을지 구경을 다녔다. Ballard, Queen Anne, Belltown, Mercer Island, Bellevue 등을 다니며 어디가 괜찮을지 살펴봤다. 숙소 앞에도 노숙자들이 있어서 놀랐는데, 다녀보니 시애틀은 시내 곳곳에 노숙자가 많아서 거기에 집을 얻고 싶지는 않았다. 벨뷰에 가니 마치 한국처럼 빌딩 숲에 거리도 깔끔해서 단박에 마음이 기울었다. 그래 여기야, 너무 익숙해! 남편의 출퇴근이 조금 걱정이지만 우리 둘 다 마음에 든 지역은 거기뿐이었다. 숙소로 돌아와 zillow.com, apartments.com, yelp.com 등을 검색하여 대략 마음에 드는 아파트 목록을 뽑아 정착지원 담당자에게 보냈다.


28일 오전에 정착지원 담당자를 만나 벨뷰로 이동하여 아파트를 둘러보았다. 우리에겐 미국 신분증이 없어서인지 같이 간 담당자가 신분증을 관리사무소(leasing office)에 맡기고 같이 돌아보았다. 세 번째 아파트에 갔을 땐 이미 지쳐서 대충 괜찮은 것 같아 그 자리에서 계약을 했다. 계약금 $500은 현장에서 내야 하는데 현금과 데빗카드는 안 되고 체크나 머니오더만 가능하다고 했다. 은행에서 계좌를 만들 때 체크를 줬는데 그걸 언제 쓰는지 몰라서 안 들고 왔더니 이런 일이 생긴다. 근처 마트에 가서 오백 달러와 약간의 수수료를 내고 머니오더를 사 와서 관리사무소에 제출했다. 회사 정보 및 우리의 여권과 연락처 등을 확인하고 인스펙션 데이를 정하고 나왔다. 10시부터 시작해 점심도 거르고 3시쯤 숙소에 돌아왔다. 중기 임산부는 시애틀로 돌아가는 차에서 말을 잃었다.


계약한 아파트의 입주자 관리 사이트에 가입해 계약서를 각각 확인한 뒤 서명하고, 입주 전에 집 보험을 가입해야 한다는 메일이 와서 1년에 $165 내는 걸로 결제하고 해당 내용을 관리사무소에 보냈다. 전기 신청내역도 보내라고 해서 어영부영 전기도 신청하고, *디파짓(1달 렌트비) 및 렌트비도 결제했다. 이제 살 곳도 정해졌으니 우리의 미국 생활도 본격적으로 시작이다.


주말엔 맛(없지 않은)집 탐방


10월 3일 드디어 남편이 첫 출근을 했다. 난 공원에 가거나, 버스를 타고 시애틀 도서관에 가거나, 남편과 점심을 같이 먹으러 회사까지 걸어갔다 오거나 하며 하루를 보냈다. 계약한 아파트는 8일부터 입주였는데 임시숙소가 회사와 가까워서 머물 수 있는 날까지는 시애틀에 머물렀다.


10월 10일엔 배짐이 세관을 통과했다고 연락이 와서 18일에 배달 일정을 잡았다. 이삿짐을 받아 쌓아놓고 나니 거실이 사라져 버리는 작은 아파트였지만 우리 생활용품이 와있으니 우리 집이란 느낌이 확 들었다. 이 날은 남편이 휴가를 냈기 때문에, 이삿짐을 받은 뒤 DMV(Department of Motor Vehicles)에 가서 우리 둘 다 *워싱턴주 운전면허를 신청하고 왔다.


10월 22일엔 Blaine Global Entry Enrollment Center에서 *글로벌 엔트리(GE) 인터뷰가 있어서 다녀왔다. 시택공항센터는 주말에 인터뷰를 잡을 수 없어서 새벽부터 출발해 국경 근처까지 가서 인터뷰를 했다. 그래도 이렇게 받은 GE 덕분에 한국을 다녀올 때 입국심사를 10분이면 끝낼 수 있어서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11월 12일엔 드디어 차를 샀다. 시승을 해 보고 계약서를 작성한 뒤 데빗카드로 결제하겠다고 했더니 수수료를 5%를 내야 한다고 했다. 체크는 수수료가 없다고 해서 자신 있게 체크를 꺼냈더니 그건 안 된다고. 큰 금액을 지불할 때는 Casher's Check를 은행에서 발급해 와야 한단다. 그렇게 또 하나를 배웠다. 차는 주중에 남편 회사로 배달되었고, 준비한 Casher's Check와 교환했다.



이직+임신, 누가 좀 말려!


2016년 2월에 남편이 오퍼를 받고 우리는 곧장 시험관 시술을 결정했다. 몇 년째 난임 병원을 다니고 있었지만 시험관에 대한 결정을 선뜻 내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미국 가서는 그 결정도 우리 뜻대로 하지 못할 것 같아서 바로 진행하게 되었다. 두 번째 시술 끝에 아이가 찾아왔는데 유산 위기가 여러 번 있어서 거의 집에 누워있었다. 16주에 난임 병원에서 일반 산부인과로 옮겼는데 두 병원의 의사 선생님 모두 한국에서 낳고 가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하셨다.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남편이랑 있는 게 낫지. 최대한 조심하겠다고 하며 의료기록을 받아 미국으로 왔다.


입사한 뒤 회사에서 지원하는 의료보험 프로그램을 골라 신청하고 일주일 정도 후에 보험 카드가 왔다. 산부인과 예약이 급했기 때문에 집 근처 출산병원에 소속된 의사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후기 임산부는 잘 받아주지 않는다는 정보를 미리 듣기는 했는데 실제로 주수를 묻고 예약을 안 받는 곳이 많았다. 가장 빠르게 예약되는 곳을 주치의로 정하고 11월 3일에 첫 진료를 받았다. 얘기를 들어 미리 알고 있긴 했는데 진짜로 줄자를 꺼내 배 크기를 재고 몇 가지 확인을 하더니 진료가 끝났다. 한 달 뒤에 처음이자 마지막 초음파를 하고 10일 간격으로 병원을 다녔다.


출산 전 도시락 싸서 출근시키던 날들


1월에 아이가 태어나고 30시간 만에 퇴원을 했다. 진통을 오래 했더니 병원에서 내 몸을 추스를 시간을 그것밖에 안 줬다. 남편은 입사 1년 미만이라 6주 출산휴가 혜택을 받을 수가 없어서 오일 휴가를 냈다. 그것도 원래 삼일뿐인 휴가를 이틀은 빚내서 쓴 거였다. 산모도우미를 불렀는데 도움을 별로 못 받아서 환불받고 싶었으나 사람을 어찌 환불하나 싶어 꾹 참았다. 2주 지나니 몸도 괜찮아져서 아이 돌보는 게 꽤 수월해졌다.


그렇게 미국 생활에, 육아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우리는 필요한 얘기만 하는데도 자꾸 날 선 말들을 주고받고 있었다. 평소에 대화를 많이 해서 말다툼도 해 본 적이 거의 없었는데, 대화는 별로 하지 않고 서로에게 서운한 말을 하고 짜증을 냈다. 아이랑 지내는 낮에는 행복한데 남편이 퇴근하면 뭔가 부딪치는 일이 생겨서 힘들었다. 이게 다 미국 때문이야! 그때는 그냥 그렇게 탓을 하고 싶었다.


일 년이 지나 집을 사서 이사했을 때 남편이 그런 말을 했다. 이제야 수많은 불안정 중에 하나는 안정된 것 같아서 마음이 좀 편하다고. 미국에서의 일 년 동안 이토록 자존감이 바닥인 적이 없었다며 속내를 꺼냈다. 한국에서는 영어를 못한 편이 아니었는데 미국 오니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1차 충격, 전혀 다른 업무를 하게 됐는데 빠르게 적응이 안 되어 2차 충격, 그로 인해 언제든 잘릴 수 있는 신분의 불안함 등이 그를 괴롭혀왔다고 한다. 집을 사서 이제 여기서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긴다고. 난 집을 사서 이제 여기 묶이는구나 하고 조금은 우울했는데. 우리는 이토록 다른 사람이었던 거다. 미국에 오지 않았더라면 모르고 살았을 어떤 부분들을 이제야 또 알아간다.


집을 사려고 한국에서 돈을 가져와야 했을 때 그걸 알아보는 일이 참 싫었다. 5월인데도 아주 더웠던 어느 날 밤, 남편은 온콜이 와서 자다 말고 식탁에 앉아 일을 하고 있었다. 난 자다 깬 아이를 다시 재우고 나와 흔들의자에 앉아 그 사람을 바라봤다. 이 늦은 시간에, 책상도 없어서 식탁에 앉아, 에어컨이 없어서 민소매 한 장 입고 땀 흘리며 화상회의를 하고 있는, 그 초췌한 중년 남자가 내 남편이었다. 한국에선 늘 칭찬받고, 좋은 옷 입고, 매달 김원장님께 헤어컷 받으며 살던 사람이 미국 와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저러고 있나. 그래! 좀 넓은 집으로 가서 책상은 꼭 사줘야겠다. 그 날 그 시간이 내 마음을 바꾸게 계기가 되었다.


지금 우리는 나름 행복하게 잘 지내지만, 그래도 내 친구가 첫 해외 이직과 임신을 병행한다고 하면 한 번은 말릴 것이다. 일단 한국도 요즘 개발자 대우 너무 좋은데? 그래도 미국 가고 싶다고? 그럼 아이는 한국에서 낳고 정신 좀 차린 뒤에 가는 건 어때? 안 되겠다고? 그렇다면 갈 때 가더라도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남의 나라에선 서로에게 서로 뿐인데 각자가 책임진 일이 힘들어 상대방의 힘듦을 헤아리지 못할 수 있다고, 상처낼 사람이 배우자뿐이라 내 마음이 더 아플 수 있다고. 그러니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마음의 갑옷을 잘 두르고 가보자 친구야!





* 남편의 SSN은 신청 2주 후에도 나오지 않아 오피스를 두 번이나 방문한 끝에 10주가 지나서야 받을 수 있었습니다. H4(H1B의 동반비자)SSN이 나오지 않습니다. 따라서 세금신고를 하려면 IRS에 ITIN(Individual Taxpayer Identification Number)을 신청(+인터뷰)해서 식별번호를 받아야 합니다. 이후 영주권 진행 중에 EAD(Employment Authorization CarD)를 받으면 SSN도 딸려오므로 SSN 오피스에 따로 방문할 필요가 없습니다.


* 아파트 디파짓은 퇴거 시 보수가 필요할 경우를 위해 미리 내는 돈입니다. 제 경우는 1년 후 나올 때 이사 청소비를 제하고 돌려받았습니다. 계약기간보다 한 두 달 미리 퇴거하려고 해도 보통은 끝까지 렌트비를 내야 합니다. 그리고 렌트비 외에도 주차비($85), 전기세($70 안팎), 수도세($90 안팎), 쓰레기처리비($9) 등의 고정지출이 발생합니다.


* 워싱턴주는 한국 운전면허를 미국 운전면허로 교환해주는 협정을 맺고 있어서 별도로 시험을 볼 필요가 없습니다. 입구 쪽에 방문 이유를 말하면 E/R/F로 구분된 번호표와 작성할 서류를 주는데, 기다리다가 번호가 불리면 서류와 여권 및 i-94, 그리고 한국 운전면허증을 제출하면 됩니다. 시력검사 후 비용(당시 $89)을 내고 기다리면 사진을 찍어주고 임시면허증을 줍니다. 실물 면허증은 며칠 뒤 집으로 배달됩니다.


* GE는 미국 자동출입국심사 서비스인데, 범죄/수사경력조회 회보서를 제출해야 하므로 미국 오기 전에 신청하고 오면 좋습니다. 저는 출국 전날 GE를 알게 되어 신청하고, 출국일에 서류를 떼서 인천공항에 제출하고 출국했습니다. 자세한 절차는 https://www.hikorea.go.kr/ses/GeApplInfoR.pt 에서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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