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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ka Jan 12. 2022

코리안 티처 할 줄 알았지

외국에서 살게 된다면

한국어 교사로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한 지인에게 마지막까지 갖고 있던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학 개론]을 보내주었다. 그녀가 한국어 교사를 해보겠다고 했을 때 이미 갖고 있던 관련 책들을 다 줬는데 이 책은 책장에서 빼지 않았다. 어쩐지 이 책만이 내가 한국어 교사였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을 것 같고, 이 책마저 없다면 나는 이제 한국어 교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 같은 기분. 3급 교원 자격을 취득하고도 몇 명의 개인교습 외에는 해보지도 않은, 한국어 교원이라고 할 수도 없는 사람이면서 무슨 미련이 이리 진득하게 남았을까. 몇 년 남은 미국 생활 동안 누군가(내 아이는 빼고)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의지가 없음은 나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은 얻을 것이 있는 사람에게 가는 게 맞다.


열심히 공부했네


우리 부부는 은퇴 후 태국에 살자는 막연한 꿈을 갖고 있었다. 해마다 태국으로 여행을 가고, 그곳이 점점 더 좋아져서 방콕 어느 동네서 살면 좋을지 기웃거리곤 했다. 태국에 살게 되면 뭘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한국어 교사가 괜찮을 것 같았다. 동남아시아는 한국어를 배우려는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었고 자격증이 있으면 일하기도 쉽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집 근처 대학교의 한국어 교원 양성과정에 등록했다. 영어가 너무 싫어서 내가 한국어를 가르치고 말겠다는 유치한 마음도 조금은 들어갔던 것 같다.


120시간의 수업을 듣고 깨달은 건, 한국인인데 한국어는 너무 어렵고 한국어 교사의 미래가 (경제적, 경쟁적 측면에서) 그다지 밝지 않구나 하는 거였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게 만만한 일이 아니라고 느꼈지만 그럼에도 내가 배운 것을 가르쳐보고 싶었다. 3급 교원 시험 준비를 하면서 온라인 외국어 첨삭 사이트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교원 자격증을 딴 뒤에는 언어교환 사이트를 뒤져 근거리에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연락해서 만나보았다. 한국어를 못하는 캐나다 교포와 미국 교포, 회사 한국어 수업이 버거운 미국인, 남편 따라온 프랑스인, 아일랜드인 영어유치원 교사 등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이 어떤 사람일 줄 알고 겁도 없이, 게다가 외국인 울렁증도 있었는데 어떻게 그랬는지 지금도 그때의 나는 내가 아닌 것 같다. 


그러다가 한 분이 본인은 이제 회사 수업만 해도 될 거 같은데 아내가 한국어를 전혀 몰라서 어디 나가지도 못하고 집에만 있으니 정기적으로 수업을 해줄 수 있냐며 개인과외를 부탁해왔다. 내 수업이 쓸모가 있었구나 하며 기쁜 마음으로 수업 날짜와 수업료를 정했다. 수업 준비는 즐거웠고 수강생도 나무랄 것 없었는데 회차가 지날수록 내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졌다. 돈을 받은 만큼 내가 가르쳤는지 자꾸 자신이 없어지더니 급기야 재미가 없어져버린 것이다. 마침 이직을 했고 그걸 핑계로 하고 있던 모든 한국어 수업이나 언어교환을 그만두었다. 그렇게 시시하게 도전을 끝내고 관련 자료들은 상자 속에 봉인되었다.


몇 년 후 갑작스레 결정된 미국행 이삿짐을 싸다가 어쩌면 미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며 봉인 상자를 들고 왔다. 헛된 꿈이었다. 물론 하려고만 하면 교원 자격증 없이도 한글학교 선생님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누군가에겐 이민이 기회겠지만, 나에겐 맨정신으로 아이를 키우며 버텨야 하는 시간이었다. 내가 변화에 취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많은 자책과 자존감 하락을 겪으며 이젠 인정하기로 했다. 여행과 삶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임을 직접 부딪치고 나서야 깨달으며. 이제 우리 부부는 더이상 태국으로의 은퇴에 대한 꿈을 나누지 않는다. 좋은 곳은 여행만 가자, 사는 건 한국에서.


어쨌든 책들이 쓰임을 다하러 갔고, 나는 그에 만족해하며 글을 쓴다. 

언니, 내 몫까지 신나게 가르치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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