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ka Jun 29. 2021

오늘 46도? 이게 무슨 일이고

지구가 아파서 포효하는 중

최고기온 46도의 날이 밝았다. 새벽에도 바깥 온도는 27도가 최저라서 에어컨이 밤새 돌았다. 에어컨 덕분에 크게 덥진 않았으나 종일 도는 에어컨 소리(엄청 큼)와 묵은 공기 때문인지 잠을 설쳤다. 아침 6시에 잠깐 포치에 나가봤더니 이미 쨍쨍쨍쨍쨍 상태다. 나 오늘 46도 간다니까?


계속 높아지는 기온


지난주에 날씨 앱을 보다가 26일부터 28일까지 40도에 가까운 예상기온이 찍혀 있어서 깜짝 놀랐다. 이런 온도는 태국 갔을 때나 봤던 거 같은데. 아니다, 1994년 여름에도 그 정도 폭염이었던 것 같다. 아침부터 학교가 있는 언덕을 오르느라 이미 땀에 절은 교복이 너무 싫었던 기억이 난다. 40도도 너무 높다 싶은데 주말이 가까워지자 예상기온이 점점 더 오르더니 급기야 28일엔 46도로 바뀌었다. 이건 뭐 상상할 수 있는 기온이 아닌데. 일단 금요일에 코스트코에 가서 과일을 많이 사 왔다. 집에 있는 발열 제품은 모두 전원을 끄고, 냉동실에 생수를 몇 개 얼려두고, 최대한 가스레인지를 켜지 않고 요리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는지 고민했다. 일단 아보카도 샌드위치, 후리가케 주먹밥, 컵라면, 시리얼. 아... 내 손에서는 이것 밖엔 안 나오네. 그래서 하루 한 번은 나가서 먹었는데 주차하고 건물로 들어가는 그 잠깐에도 피부가 아프고 마스크엔 땀이 가득 찼다.


재택근무도 1층으로 옮기고, 잠도 다 같이 1층에 모여서 자기


에어컨을 25도에 맞춰두니 1층은 실내온도 27.5도 정도가 유지되어 쾌적한 편인데, 2층은 30도를 찍어서 도저히 거기서 일하거나 잘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서 남편의 서재도 1층에 있는 아이 놀이방으로 잠시 옮기고, 잠도 1층 거실에 모여서 자기로 했다. 시원했다. 시원했지만 남편은 집중력(아이의 수시 방문)을 잃었고, 나는 수면시간(5시에 일출)을 잃었다.


워싱턴주는 여름에 며칠 덥고 괜찮아서 보통 에어컨이 없다. 최신 아파트나 고급 아파트에 일부 에어컨이 있고 주택에는 대부분 없는 것 같다. 벨뷰에서 살던 아파트엔 당연히 에어컨이 없었는데 그 해 여름도 꽤 더웠다. 실내온도가 31도를 찍기 일수여서 아이를 데리고 바로 앞 쇼핑몰로 피신했다가 잠깐 돌아와 이유식 먹이고 다시 피신하길 반복했었다. 이전 세입자가 왜 사비로 거실 전등을 떼고 씰링팬을 달아놨었는지 이해가 됐다. 그 여름을 겪으며 주택을 보러 다닐 때 지금 우리 집이 유일하게 에어컨 시설이 있던 것도 아주 큰 구매 이유였다. 막상 주택에 살아보니 아파트보다 시원해서 에어컨이 가동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올해 맡은 바 소임을 다 하고 계신다. 너무 고맙다.


워싱턴주가 이렇게 폭염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이 자정작용을 멈추게 된 건 아닌지, 아이들이 오래오래 살아가야 하는데 계속 이상기온과 전염병이 반복되는 건 아닌지, 더워서 에어컨을 틀면서도 희미한 죄책감이 든다. 아무튼 시애틀, 너의 정체성을 어서 회복하도록 해!

시애틀, 너의 정체성
매거진의 이전글 결국 쓰는 백신 후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