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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ka Mar 04. 2022

고속도로에서 받은 도움

이것이 미국의 '정'인가

어어어 왜 이러지?


아이의 포패트롤 이야기에 정신이 혼미해져가고 있는데 운전하던 남편이 갑자기 당황하기 시작했다. 1차선에 있다가 어찌어찌 차를 갓길 쪽으로 대자마자 차가 푸들푸들하더니 시동이 꺼졌다. 느낌이 왔다. 아, 기름이 떨어졌구나.


아침에 스키장에 가려는데 남편이 남은 기름양을 보더니 다녀오면서 주유해야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코스트코 주유소에 들르려고 I-90 고속도로에서 15번 출구로 나가려던 참이었다. 기가 막히게 출구에서 차가 멈춘 것이다. 고속도로 중간에서 멈췄으면 어쨌을 것이야. 스키장 가는 길에 눈이 너무 와서 평소보다 오래 걸려 도착했는데 아마도 이때 예상보다 기름이 많이 소모된 탓인 것 같았다. 당황해서 보험 부를까 하는 남편과 달리 (희한하게)침착해진 내가 차분히 구글맵을 검색해서 도보 10분 거리에 주유소가 있음을 확인했다. 비상등을 켜고 러버콘이 혹시 있나 뒤졌는데 없어서 스키장비들을 꺼내 차 뒤쪽으로 10미터쯤 위치에 쌓아두고, 나와 아이는 갓길 아래로 내려가 대기하고 남편은 기름을 사러 갔다.


기막히게 고속도로 나가는 지점에서 멈춘 차


나 오늘 친구 생겼어. 내 친구 벤이야!


20분 정도 지났을까, 큰 차가 우리 차 뒤로 와서 세우길래 기름 없어서 사러 갔다고 말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조수석에서 남편이 내렸다. 깜짝 놀라 물으니 새 친구가 생겼다며 같이 내린 사람을 소개해줬다. 풍채 좋은 아저씨가 기름통을 꺼내더니 주유구에 기름을 넣기 시작했다. 처음엔 주유소 직원이 같이 와 준 건가 싶어 팁이라도 드려야겠다 하고 있는데 남편이 그런 거 아니라며 감사인사만 드리자고 했다. 땡큐를 연발하며 차에 타서 들은 자초지종은 이런 거였다.


남편이 걸어가고 있는데 어떤 차가 와서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었다고 한다. 고속도로 나오다가 차가 서 있고 엄마랑 아이가 서 있는 걸 봤다며 가족인 거 같은데 도와주겠다고 했단다. 남편을 태우고 주유소에서 기름을 산 뒤 고속도로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 우리 가족을 도와주고 간 것이다. 남편이 휴대용 주유기를 사용해본 적 없다고 하니 직접 넣어주시기까지. 이렇게 고마운 사람이 있다니! 딸이 아들을 낳아서 축하주를 사러 코스트코에 가는 길이었다며, 가족들이 생각나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고 하셨다 한다.


미국에서 이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전혀 없었는데 이런 게 미국식 '정'인가. 덕분에 이 땅에 정이 조금 붙는 느낌이다. 나도 이곳의 누군가를 도울 일이 생긴다면 꼭 한 손을 내밀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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