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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ka Sep 11. 2022

추석엔 무화과지

전라도요

며칠 전 트레이더조에서 사 온 무화과를 꺼내 먹다가 광주삼촌(작은 아빠지만 나한텐 언제나 삼촌)이 보내주던 무화과 생각이 났다. 해마다 추석이면 무화과 대여섯 박스를 사서 부모님 댁으로 오셨는데, 새벽부터 전라남도 고향까지 갔다가 다시 분당까지 예닐곱 시간 품을 들여 사 오신 거였다. 우리는 고향에서 자란 무화과를 먹으며 시골에 같이 살던 이야기도 하고, 할머니와 동양화 맞추기도 하며 추석을 보냈다.


내게 삼촌에 대한 첫 기억은 시계다. 내가 가게 될 국민학교(여기서 나이가...)에 부속유치원이 생겨서 거길 한 학기 다니게 됐다고 하니 당시 대학생이던 삼촌이 시계를 사 와서 선물이라며 내 손목에 채워주셨다. 여름밤에 평상에 앉아 삼촌한테 시계 보는 법을 배우던 그 장면이 따듯한 사진처럼 내 마음에 남아있다. 가죽 시계줄을 여러 번 바꿔가며 5학년 때까지 갖고 있었는데 서울로 이사하는 와중에 잃어버려서 꽤 오래 속상했었다.


삼촌이 가져온 무화과 박스들 중 하나는 늘 내 몫이었다. 내 주먹만 한 무화과가 세 겹으로 쌓인 박스를 조심히 집에 들고 와서 입이 많이 벌어진 것 다섯 개를 골라내고 나머지는 냉장고에 넣었다. 골라낸 애들은 살짝 씻어 칼로 꼭지를 잡고 꺾어 껍질을 벗기고 사등분해서 접시에 놓았다. 말캉하고 달콤하고 빤짝빤짝한 무화과 한 접시를 해치우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원래도 맛있지만 조카를 생각하는 삼촌 마음이 더해졌으니 더 맛있었을 것이다.


남편은 결혼 첫 해 추석에 무화과를 처음 접하고는 손오공이 지키던 복숭아 같은 전설 속의 과일이냐고 궁금해하더니, 한 입 먹고 나선 이게 무슨 맛이냐고 내게 물었다. 아니 이렇게 맛이 있는데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시댁 가족들도 무화과를 먹어본 적이 없다(당시엔 마트에 무화과를 파는 곳이 없었다)고 해서 두 번째 맞는 추석에 부모님 댁에 들러 내 몫의 무화과를 들고 시댁에 갔다. 야심 차게 꺼내 드렸는데 반응이 다들 남편과 비슷했다. 아, 이분들 가족이구나. 남은 무화과는 소중하게 신문지 덮어서 집에 가져와 또 혼자 며칠 동안 꺼내 먹었다.

코스트코, 홀푸즈, 트레이더조 무화과들


미국에 왔더니 트레이더조와 홀푸즈에서 무화과를 팔았다. 내가 아는 무화과는 일단 크고 겉은 보라색에 속은 꿀 든 붉은색인데, 미국에서 파는 애들은 대부분 작은 자두 크기에 검은색 껍질과 크림 분홍색 속살을 갖고 있다. 어떤 건 무척 달지만 뭉개지는 느낌에 가깝고, 어떤 건 아직 익지도 않아(무화과는 후숙 안 된다고요!) 떫었다. 입을 꼭 다문 무화과만 판매를 하니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고 구매했다가 대부분 버린 적도 있었다. 그래서 이젠 추억 되감기용으로 여름 끝무렵에만 가끔 사 먹는다.


남편은 여전히 무화과를 먹지 않아서 아이에게 몇 번 권해 봤는데 아이도 맛이 없다며 먹지 않는다. 같이 먹으며 어떤 날들을 추억하는 건 지금 내 가족 안에선 요원한 일이 될 것 같아 조금은 아쉽다. 아직까지 주변에서도 무화과 좋아하는 사람(내 원가족 말고)을 보지 못했다. 요즘은 마트에서도 보이던데 이것이 과일이란 걸 아예 모르는 사람도 있어서 내가 놀란 적도 몇 번 있다. 이게 정녕 특정 지역 사람들만 아는 과일인 건지. 한국 무화과 맛있어요 한 번 잡솨봐요. 


혼자 맛없는 무화과를 먹다가

삼촌을 생각했다가

추석을 떠올렸다가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다가

밤은 잠시 접어 둔다.


사랑하는 우리 삼촌, 작은 엄마 쾌차하실 거예요. 힘내요!



표지 : Photo by Svitlan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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