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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자가 살아남는 법 (21) ]

질척거리기

by 실전철학

‘절척거리다’ 라는 표현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질척거리다'의 사전적 의미는 '진흙이나 반죽 따위가 물기가 매우 많아 차지고 진 느낌이 자꾸 들다' 라고 하는데 현실에서 흔히 쓰이는 ‘질척거리다’의 뜻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한쪽이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달라 붙는 모습을 표현한 말로 상대방이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끈질기게 부탁을 하거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매달리는 모습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 질척거림과 관련하여 한가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어느날 거래하던 은행에서 간단한 예금상품을 만들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무리의 나이드신 어머님들이 oo 노인 협의회’ 문구가 적힌 어깨띠를 하고 요란하게 객장에 들어오셨다. ‘무슨 일이지?’ 하고 호기심에 어머님들을 주목해 보았는데, 이내 해당 어머님들은 은행의 몇몇 직원들을 붙들고 ‘우리 노인들을 지원해 달라, 찬조금 좀 달라’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은행 직원들은 안된다고 어머님들을 돌려 보내려 했다. 그러자 어머님들은 “저번에 과장님은 우리 후원해 주었는데 한번 후원해 줘요” 등의 이야기를 하면서 물러서지를 않았다.

직원들의 반응이 없자 어머님들은 은행 2층으로 올라갔고, 어머님들은 몇 번이고 1층과 2층을 오르락 내리락 하셨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해당 어머님들은 결국 찬조금을 받아내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객장을 떠났다.


나는 어머님들의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아무리 힘없고 나이든 어머님 들이라지만 저게 무슨 민폐인가? 진짜 질척거리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짜증섞인 눈길로 어머님들을 바라 보고 있을 때 그중 한 어머님과 눈길이 마주쳤다. 왠지 그 어머님은 한없이 슬프고 약해 보였다. 그 어머님 자신도 은행에서 이런 행동 하기는 싫지만 달리 방법이 없으니 하고 있다는 무언의 이야기를 내게 하시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문득 해당 어머님같이 아무런 도구도 없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약자들이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리고 상대방의 불편을 야기했던 어머님들의 방법이 맞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머님들의 질척거림이 약자가 살아남을수 있는 방법의 한 예시를 보여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질척거린다는 것은 ’포기하지 않는다‘ 와는 그 괘를 달리 하는 것 같다. ’포기하지 않는다‘는 나의 전력을 다해 필사적으로 매달린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 질척거리다‘는 달리 . 대안이 없으니 어쩔 수 없으니 계속 가서 들이대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원래 세상일이라는 것이 쉽게 되는 바가 없다. 약자들은 아무런 지원 없이 되도 않는 일에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부딪혀 보지만 실패와 차디찬 외면만을 만나게 된다. 대부분의 약쟈는 벽에 막히게 되면 좌절하고 이내 포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약자는 몇번 거절 받았다고, 몇번 일이 막혔다고 그냥 멈추어 있을 수가 없다. ’왜냐면 약자는 뒤가 없기 때문이다. 약자는 얼마 안되는 기회에 대해서 계속 질척거려야 한다.


강자에 의헤서 안된다고 결론이 난 사항에 대해서 약자가 질척거린다는 것은 상대방의 외면, 무시, 상대방에 대한 피해를 불러오는 행동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치 좀비처럼 계속 부딪혀 갈수 밖에 없는 것이 약자의 숙명 같다. 일단 질척거려서라도 살아남아야지만 다음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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