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서 정치인이나 유명 연예인들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다는 기사 등이 나올 때 마다 온라인에서는 지지자와 안티들간의 살벌한 전투가 벌어지기 일 수 있니다. 그 와중에 ‘일단 중립기어를 박고 상황을 지켜보고 난 후 판단해보자.’ 하는 소수의 의견이 나타나기는 하나 금방 묻혀버리고 말지요... 특히 정치쪽에서 여당이던 야당이던 간에 무조건 ‘우리 당이 옳고 상대당이 틀리다.’ 하는 한쪽으로 매우 치우진 지지를 하는 경우가 많고 이는 바로 상대방 진영의 더욱 강한 공격과 비난을 불러오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실정입니다.
꼭 정치 뿐만이 아니더라도 세상사를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사랑, 감사 등의 절대적인 진리도 있지만 사회트렌드가 변해가면서 진리의 개념이 상대적으로 변하는 것이 빈번한 지라 어느 한쪽에 치우침없이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어버린 것이 현실입니다. 치우침이 없다는 것은 중용(中庸)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네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중용 관련 설명에 따르면, 중(中)이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기울어지지 않으며, 지나침도 미치지 못함도 없는 것(不偏不倚無過不及)을 일컫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동양권에서만 중용에 대해서 강조한 것이 아니라 서양에서도 중용의 지혜에 대해서 강조한바 있다고 합니다. 플라톤은 어디에서 그치는지를 알아 거기서 머무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최고의 지혜이며 따라서 크기의 양적 측정이 아닌 모든 가치의 질적인 비교를 중용이라 하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마땅한 정도를 초과하거나 미달하는 것은 악덕이며, 그 중간을 찾는 것을 참다운 덕으로 파악하였다고 하네요.
‘여러분! 치우침없는 중용을 실천해야 합니다!’ 하고 글을 쓰거나 이야기하기는 매우 쉽습니다. 그러나 성현이신 공자께서도 ‘천하의 재산도 나누어 불 수 있고, 벼슬과 녹봉도 사양할 수 있고, 시퍼런 칼날도 밟을 수 있지만 중용은 불가능하다.’ 라면서 중용의 어려움을 표현한 바 있습니다 공자도 그러실진데 우리네 같은 일반인들이 소위 말하는 ‘중용의 도’를 실천하기는 더욱 요원한 것 같은...
중용의 경지에는 이를수 없지만, 삶에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없는 자세를 가지기 위해서는 어쩔수 없이 자신의 삶의 태도를 변경해 나가야 한다고 판단해 봅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기’, ‘내 의견은 절대진리가 아니다.’,‘타인의 다른 의견은 다른 것이지 틀린것이 아니다.’,‘어떤 사건이 발생한 데에 대한 표면적인 현상이 아닌 원인이나 본질을 파악해보기.’ 등등... 치우침 없는 삶을 살기위한 삶의 태도를 적어놓고 보니 일종의 도덕책에 나오는 문구를 나열한 것 같네요...
우리가 어떤 문제에 대해서 한쪽에 치우친 판단을 하는 것은 우리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그때 때 마다 생각나는 대로 대응하기에 타인의 생각에 휘둘리거나 편협한 마음가짐을 가지게 됩니다. 아울러 ‘내가 생각하는 것이 항상 옳다’ 하는 거만한 의도가 자신의 마음속에 항상 숨어있기에 우리는 객관적인 판단이 아닌 어느 한쪽에 치우친 판단을 하고야 마는 것 같습니다.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중도의 자세를 지니기는 너무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자기 자신이 치우치지 않는 중간자적 태도를 계속 견지하도록 노력한다면 우리가 가고 있는 삶의 길에서 보다 명확한 방향과 정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씀을 드려봅니다.
중용을 지켜라. 선과 악에 대한 판단은 모두 일시적인 변덕에 따라 좌우된다. -그라시안
중용(中庸, 中行)의 길을 지키면서 스스로 거만한 마음이 없으면 허물이 없으리라. -역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