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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의 위험성

by 실전철학

미국 부동산 버블 붕괴와 이에 따른 모기지론의 부실화와 관련된 탐욕, ‘내 주식은 끝도 없이 오를거야 ’ 하는 주식시장 개미들의 탐욕, ‘부동산 불패를 신봉하는 투자자’, ‘이번에는 크게 먹을 수 있다’고 하며 슬롯머신 앞을 떠나지 않는 도박꾼들의 탐욕까지 무엇인가를 갈구하는 현대인의 욕망은 멈추지 않고 질주하고 있고, 그 질주는 영원히 이어질것 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탐욕의 질주에 반하여 요즘에는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아’ 하는 무소유 및 자기 만족의 트렌드도 나오고 있습니다만 정작 ‘이렇게 살아도 괜찮아~’ 하기에는 주위에서 모든 이들이 목적을 향해 멈춤없이 달리기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할수 없이 탐욕의 레이스에 동창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지요


탐욕 또는 욕심은 인간의 본성이며, 당연히 본인이 가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일종의 촉진제 역할을 하는 것이 정상적인 과정이지만, 절제를 하지 못하고 ‘하나만 더’하고 달려가다가 파국을 맞이하는 경우도 너무나 쉽게 목격되는 것 같습니다

톨스토이의 '러시아 민화집'에 “사람은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글이 있는데 줄거리는 대략 아래와 같습니다. 바흠이라는 농부가 있었는데, 그의 절실한 소망은 ‘조금이라도 내 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 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마귀가 바흠에게 제안을 하나 했습니다. "네가 아침에 출발해서 저녁 해질 때까지 네 발로 밟는 모든 땅을 다 너에게 주겠다. 하지만,반드시 해지기 전에 출발했던 그 장소로 꼭 다시 돌아와야 한다." 바흠은 아침 일찍 일어나 단 한 평이라도 많은 땅을 가지기 위해서 달리고 또 달려, 넓은 땅을 밟고 돌아왔으나, 너무 무리해 달린 나머지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글은 다음과 같이 끝을 맺고 있습니다. “바흠의 하인은 괭이를 들고 주인을 위해 구덩이를 팠다. 그 구덩이는 바흠의 머리에서 발끝까지 단 2미터의 길이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 묻혔다."

탐욕은 소위 인간의 본능 이라고 합니다. 그 누구도 탐욕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9개를 가졌는데 꼭 하나를 더채워야 하고, 999개를 가져 주위로부터 인정받는 사람조차 가진 것 하나를 더 채우려고 하는, 어떻게 하던 자신의 소유를 늘리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입니다. 심지어 무소유의 실천을 하고 있다고 일컬어지는 스님이나 신부·목사님 조차 본인도 모르게 ‘본인의 성소를 크게 만들고 싶다!’거나 ‘나의 설교나 법행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욕심을 가지는 경우가 종종 있을 정도니, 오죽하면 기독교에서 탐욕을 버리고 겸손해 지는 것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기독교의 제일 되는 덕은 겸손’이라고 하는 지경입니다.


탐욕의 근원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다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에서 탐욕이 생긴다는 결론을 내 보았습니다. 현재의 자신에게 만족하지 않고 무엇을 얻거나 가지고 싶다고 느끼는 것은 자신이 무엇인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이 원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지금 나는 이미 충분히 행복한 상황일지도 모르는데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 나는 타인이 가지고 있는 A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불행하다’ 하거나, ‘내가 B나 C를 가짐으로서 타인보다 나아질 수 있다’ 하고 멈추지 않는 것이 결국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거나 자신을 비하하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지요.


어쩌면 뻔한 이야기로 들릴수 있겠습니다만, 자신의 부족함에 집착하여 또한 자신의 행복울 위한다는 명목하에 소중한 인생을 소진하는 것보다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사랑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는 것이 탐욕의 질주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인생의 가장 큰 저주란 목마름이 아니라 만족할 줄 모르는 메마름이다. - 송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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