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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크 타이프 Dec 14. 2017

'갑질'은 나의 것, 그리고 너의 것

직장 '갑질'에 대한 정치사회학적 소고

정치사회학의 중심, 권력
정치학이 다루는 수많은 주제의 기저에는 '권력'이 있다. 거의 모든 정치현상은 권력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사회학은 정치현상을 사회적 맥락에서 생각해보는 정치학의 세부 분야이며, '권력' 개념을 연구의 중심에 둔다. 

권력을 거칠게 정의하자면, '타인을 강제하여 무언가를 할 수 있게 하는 힘'이다. 순수하고 정제된, 그리고 완성된 권력의 개념을 뽑아내기는 쉽지 않다. 다행히 똑똑한 학자들은 권력의 원천이나 속성에 관한 꽤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한다. 예컨대 쿠르베르타리스는 그의 저서 <정치사회학>에서 권력의 9가지 속성을 밝힌다. 상호작용으로서의 권력, 사회적 교환으로서의 권력, 공간 및 제약으로서의 권력 등이 그것이다. 
     
권위주의 국가와 독재정권이라는 역사적 경험 때문인지 한국인들이 떠올리는 권력의 모습은 그리 밝지 않다. 전세계의 굵직한, 동시에 잔인했던 역사적 사건들은 권력의 어두운 모습들과 다름 아니다. 하지만 권력이 올바른 것인가라는 가치 판단에 앞서 권력은 사람들 사이에서 생겨나는 자연 현상에 가깝다. 그래서 혹자는 "두 사람만 모여도 권력이 생기기 마련"이라 말한다. 권력이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권력을 행사하는 자와 권력을 수용하는 자의 미성숙한 태도, 권력이 유통되는 과정과 채널이 문제다. 

직장갑질119
지난 11월 1일, 노무사, 변호사, 노동 전문가 등이 모인 민간 공익단체, <직장갑질119>가 출범했다. 동시에 이 단체는 오픈 채팅방 '직장갑질119(gabjil119.com)'를 개설했다. 직장 내 갑질을 고발하고 제보하기 위해 카카오톡 내에 개설한 인터넷 오픈채팅채널이다. 개설 첫날 48건의 고발이 접수되었다고 한다. 

아래는 관련 내용을 실은 한겨레21(제1188호) 기사 중 일부이자 핵심이다. 

직장갑질119를 찾은 사람들은 비정규직, 여성, 20대가 많았다. '갑질러'는 오너와 관리자만이 아니었다. 국장이 파견직 사원을, 정규직 대리가 계약직 여성을 괴롭혔다. 직장 구하기 힘들고 비정규직이 많아지면서 회사가 계급화·위계화됐고, 갑질은 더 심각해졌다.
- <한겨레21> 제1188호, p. 062


정당성과 공정성, 합법성을 갖추지 못한 권력이 문제다. 잘못된 권력 행사에 대항하지 않거나, 무비판적으로 권력에 순응하는 것 역시 올바르지 못하다. 악한 권력에 대항할 수 있는 채널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것은 위 기사의 내용과 같은 '갑질의 답습'이다. 잘못된 권력 행사 방식이 '윗사람'으로부터 '아랫사람'에게 그대로 유통되고 있는 것이다. 직장 내 상대적 위치와 상황에 따라 윗사람은 아랫사람이 되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이 되기도 한다. 

직장 내 거의 모든 사람들이 못된 갑질을 행사하고 있는 셈이며, 결국 직장 사회의 가장 낮은 계급들만이 그러한 갑질을 무기력하게 받아들일 뿐이다. 이들 최하 계급들도 언젠가 자기 아랫사람이 생기면 이제까지 당했던 갑질을 그대로 복제할 지 모른다. 

이러한 비뚤어진 권력행사의 악순환은 결국 사실상의 제도(institution)가 되고 하나의 사회적 구조(social structure)가 된다.  우리 사회의 거대한, 또 하나의 - 뜯어보면 타락한 정치가들의 행태와 별다를 것 없는 - '적폐'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적폐는 더이상 이분법적인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다. 단순히 권력에 대한 저항으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동일한, 비뚤어진 권력의 '자웅동체'들이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정치적 대안, 행정적 대책 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반성이 필요하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자기 반성'이다. 나부터 반성하고 나부터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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