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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크 타이프 Jul 21. 2018

남은 시간

잡독 후감

잡독

나는 '잡독'을 즐긴다. 찬찬히 뜻을 새겨가며 읽는 것이 '정독', 빠르게 읽어 내려가는 것을 '속독'이라 한다면 잡독은 '잡스럽게 이것저것 두서없이 읽는 것' 정도가 되겠다. 정독에서 오는 피로감, 속독에서 오는 공허함이 싫을 때 잡독을 하면 나름 정신건강에 좋다. 오늘은 유난히 잡독 욕구가 치밀어 올라 정기 구독하는 신문과 잡지들을 주섬주섬 모아 본다. 목차들을 보며 읽고 싶은 기사나 정보를 뽑아 읽는다. 


다양한 매체, 다양한 주제들을 다룬 기사들을 보다 보면 일맥이 상통하는 것들을 발견한다. 각기 다른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전달하는 메시지를 하나로 묶어볼 수 있는 기사들이다. 억지로 꿰어 맞춰 둘러대는 '못된' 능력이 약간은 필요할 수도 있겠다.  


죽음다운 죽음

2018.7.23. 자 <한겨레21> 제1221호는 '죽음'을 다루는 특집기사를 다루고 있다. 28세의 젊은 나이에 '직장암 4기'를 선고받은 송영균씨의 인터뷰에서 송씨는 이렇게 말한다. 


"(암 투병으로) 힘든 순간만 있는 건 아니에요. 그냥 죽어가는 삶을 사는 거죠. 이것도 삶이에요. 암 덕분에 철저히 혼자가 되어보고 괴로워하기도 하고, 나에 대해 알게 되고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있어요." - <한겨레21> no.1221, p.20


송씨는 죽음을 생각하며 '적극적 안락사'도 고민해 보았다고 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불가능하다.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 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이 2018년 2월 이후 시행되고는 있다. 하지만 이 법은 '소극적 안락사'만을 인정한다. 회생 가능성 없는 환자나 그 가족이 연명치료만을 거부할 수 있는 '소극적 안락사'만을 허용하고 있다. 


소극적 안락사를 인정한 법조차도 실상 현장에서는 잘 지켜질 수 없다고 한다. 소규모 병원에서는 법적 절차 진행을 위한 의료진도 부족하고 복잡한 서류 절차 때문에 법 이행 비율은 10~20% 밖에 안된다. 더 중요한 것은 '물리적' 삶에만 집착하는 사회의 인식이다.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이끈 허대석 서울대병원 교수의 인터뷰를 들어보자.


" 우리는 죽음으로 가는 길에 '의료 집착'이 너무 심하다. 무의미한 항암제를 마지막 순간까지 투여하고, 인공호흡기를 달고, 그것이 최선인 것처럼 생각한다. 병원에서 치료받고 또 치료받다가 끝나는 게 죽음의 길인 것처럼 인식한다. 그럴수록 환자는 더 고통당한다."  - <한겨레21> no.1221, p.26


사람 하나 살리겠다고 사람을 더 고통스럽게 죽이는 모순. 그 모순 때문에 해마다 3만~5만 명의 환자가 고통스러운 죽음의 순간을 연장하며 죽음다운 죽음을 맞지 못하고 있다. 


삶다운 삶

한편에서는 사람답게 "죽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면, 또 한편에서는 사람답게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제주도에 체류 중인 예멘 난민들이 그렇다. 


"매일 총소리와 폭탄 소리가 들린다. 일터는 무너졌다. 아내의 임신 사실을 알았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텐가. 누구나 죽기살기로 이 상황을 벗어나려고 애쓰지 않겠나." 

- 2018.7.20.(금) 자 중앙일보 4면, 예멘 난민 모하드 알라즈키 인터뷰 내용 중


누군가 인생은 모순 투성이라더니, 과연 그렇다. 누구는 안락하게 죽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누구는 안락하게 살기 위해 죽기를 무릅써야 한다. 


남은 시간

삶과 죽음. 그 사이에 '남은 시간'이 있다. 삶다운 삶, 죽음다운 죽음을 위해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또는 어떻게 죽어가야 할지) 한번 정도는 구체적 고민이 필요하다. '웰다잉(well dying) 강사' 정은주씨의 조언처럼 사진 자서전, 유언장 쓰기, 버킷리스트 만들기,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을 써봐야겠다. 잘 살아가기 위해, 잘 죽기 위해서 말이다. 죽음다운 죽음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암투병자 송영균씨, 삶다운 삶을 위해 고국을 뛰쳐나온 난민 모하드 알라즈키씨, 이들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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