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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크 타이프 Aug 28. 2018

자유주의에 대한 부분적 이해

자유주의, 불명확하지만 강력한...

용어의 문제

정치적 담론의 세계에서 어떠한 정신(spirit)의 규모가 커져 사회적 확장력을 갖추게 되면 '~주의(主義,~ism)'라는 말이 붙는다. 자유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기주의, 개인주의, 공화주의. 수많은 '~주의'를 들어보지만 그것들이 정확히 무엇인지, 어떤 생각과 내용을 담고 있는지 정확히 알기란 참으로 쉽지 않다. 사실 '~주의'라는 말 자체가 어렵다. 사전을 찾아보면 "주지를 삼아서 주장하는 표준"이라고 쓰여 있다. 풀어쓴 말인데 더 어렵다.      


정치적 용어가 하나의 확정된 정의(definition), 완결된 개념을 갖추기는 불가능하다. 법학의 경우 개념의 안정성(예컨대 사기죄의 정의와 범위)을 중시한다. 그렇지 않으면 죄와 벌을 다루는 법이라는 저울이 수시로 흔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적 담론은 다양한 의견과 개념이 서로 갈등하고 공존하는 과정과 미완성된 합의가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영역이다. 또 이러한 개념의 건전한 불안전성이 흔쾌히 허용되는 세계이기도 하다. 유홍림 교수의 말처럼 정치적 담론의 세계에서는 TV 드라마처럼 마지막 회(final closure)란 없다. 자유주의든, 민주주의든, 공화주의든‘ ~주의(ism)’에 대한 논의는 하나의 뚜렷하고 명백한 개념(clear-cut definition)을 찾아내는 노력이기도 하지만 점점 더 불확실한 담론의 세계로 빠져드는 모험이기도 하다.

    

여기서 잠깐. 그렇다면 ‘~주의’라는 어떤 유사한 정신들의 덩어리를 어떻게 직관할 수 있을까? 나의 경우는 ‘~주의 = ~가 최고다!’라는 말로 도식화하기도 한다. 자유주의라고 하면 자유가 최고다!, 사회주의라고 하면 사회가 최고다!라고 단순화시켜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이다. 우리의 생활과 정신세계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라는 것도 결국 ‘자본(돈)이 최고다!’라는 말이 아닐까?      


자유주의를 규명하기 위한 노력들

자유주의의 필수요건 찾기: 자유주의? 자유주의들?

자유주의의 지성사를 추적한 앨런 라이언(Alan Ryan)은 하나의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평등적 자유주의, 정치적 자유주의, 민주적 자유주의 등 복수의 다양한 자유주의들이 있지만 그래도 하나의, 나름대로 통합된 자유주의가 있어야 할 것 아니냐라는 것이다. 어떠한 이름의, 어떠한 성격의 자유주의들이든 이들이 공유하는 무엇인가(what they have in common)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우선 그는 자유주의가 태동한 17세기부터 전성기인 18~19세기, 그리고 자유주의의 위기였던 후기 자유주의(post liberalism) 시대를 검토하면서 자유주의 전통을 규정하는 필요요건들을 밝혀내고자 했다. 즉 자유에 대한 나름의 어떤 전제들을 공유하는 입장을 자유주의라 해석한 것이다.      


라이언은 '고전적 자유주의'와 '현대적 자유주의'를 구별하면서 고전적 자유주의의 구성요소로 몇 가지를 제시한다. 제한적 정부, 법치, 자의적 권력에 대한 경계, 사유 재산과 자유 계약 보호, 스스로에 대해 책임을 지는 개인 등을 강조하는 것이 고전적 자유주의다. 한편 현대적 자유주의는 자유에 기반을 두고 사회주의적 복지국가 논리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고전적 자유주의와 생각을 같이 한다. 하지만 사유재산 자체를 신성시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고전적 자유주의와 차이를 보인다.     


라이언은 또한 자유주의가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와 혼용되는 것을 경계한다. 자유지상주의는 정부를 불필요한 악(unnecessary evil)으로 여기지만 자유주의는 정부 권력이 - 물론 그 권력을 신중히 다루어야 하지만 - 선한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여긴다. 한편 자유주의는 절대주의에 반감을 가진다. 정치 질서는 개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각자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한적 역할만을 담당해야 하기 때문에 절대적인 권력은 인정할 수 없다.      


역사와 맥락을 통해 자유주의 이해하기

자유주의 전통을 규정하는 조건들을 탐색하는 라이언의 지적 탐험 방식에 딴지를 거는 이도 있다. 던컨 벨(Duncan Bell)은 개인의 자유, 제한적 정부 등 자유주의 전통을 규정하는 조건을 찾아내는 방식을 ‘규정적(stipulative)’ 방식이라 칭하면서 이 방식은 자유주의 전통의 역사성(historicity)과 맥락(context)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을 비판한다. 자유주의 전통 속에서 서로 경쟁하고 모순되기도 하는 다양한 입장들을 포괄적으로 설명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던컨은 이러한 기존 자유주의 탐색 방식에 대한 대안으로 ‘맥락을 중시하는 방식(contextualist approach)’을 제시한다. 자유주의 전통이 형성되어 온 역사를 살펴보면서 자유주의자들 – 또는 그렇게 불리는 사람들 – 의 다양한 입장들을 추적하고 종합해보자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유주의의 내용을 개념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자유주의라 주장해왔던 다양한 입장들이 형성되고 수정되는 ‘동학(dynamics)’을 이해하는 것이다.      


자유주의의 강점, 끊임없는 자기 수정

그래서 자유주의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에 대한 명쾌하고 완결된 개념을 내놓으라 강요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다. 이는 마치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명확하고 완결된 대답을 내놓으란 말과 같다. 개인들 각자가 자신을 ‘자유주의자’라고 생각한다면, 자신이 생각하는 자유, 개인-정부의 관계 등에 대한 입장이 자유주의 전통의 한 부분을 차지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자유주의의 강점은 개념의 명확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주의의 끊임없는 자기 수정(revision)과 진화(evolution)에 있다. 서구 역사와 가장 밀접한 사상적 전통이나 관념은 ‘자유주의’다. 오늘날 자유주의가 가장 보편적인 하나의 정치적 아이디어로 성공한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자유주의는 페미니즘, 생태주의 등의 비판에 대응하면서 끊임없이 재구성하는 노력을 통해 가장 매력적인 공공철학으로서 사상적 헤게모니를 차지하고 있다. 라이언의 지적대로 오늘날 자유주의라는 용어가 19세기 중반의 사상적 내용을 함축하고는 있지만 자유주의의 사상적 기반은 훨씬 더 심오하며 자유주의의 역사는 생각보다 훨씬 길다. 사회주의가 지배하는 공간(이를테면 사회주의국가)이 급격하게 축소된 것과는 달리 자유주의의 영향력은 개인과 사회, 국가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끊임없는 수정과 진화를 통해 자유주의는 개인의 행복을 위한 현실적 유토피아(realistic utopia)를 고민하는 하나의 거대하고 강력한 사상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참고문헌>

* Alan Ryan, The Making of Modern Liberalism (2012)

* Duncan Bell, “What Is Liberalism?” Political Theory 42(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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