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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크 타이프 Jan 31. 2019

[서평] 노량진 군주론

- 고전을 만화로 읽는다

언젠가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세바시)>이란 강연 프로그램에서 배달의 민족 김봉진 대표가 ‘책 읽기’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것을 기억한다. 지적 허영심, 있어 보이기를 위한 책 읽기를 시작으로 독서광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는 김 대표. 그는 재미있는 독서 팁 하나를 제시한다. 고전(classic book)이라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을 읽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김 대표는 두꺼운 원전(또는 그 번역본)으로 시작하기 전에 고전을 쉽게 해석한 요약서나 만화로 시작하는 것도 괜찮은 고전 읽기 방법이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그 위대한 사상가라는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I>과 <자본론II>를 성급히 사서 읽기보다는 - 두 권을 합치면 1,000페이지가 넘는다 - 임승수 작가가 쓴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을 먼저 읽어보는 것도 괜찮다. 어렵고 난해한 자본론의 내용을 쉽게 정리해 놓았다. 물론 책의 내용마저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서 원숭이보다 못한 인간이라 자책할 필요는 없다.      

근대 현실주의 정치학의 원조라 불리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관한 요약서와 해설서들도 꽤 많다. 그들 중에서 2018년에 출판된 홍세훈 작가의 <노량진 군주론>은 군주론 원전에 대한 현란한 해석을 가미하기보다는 군주론의 핵심 내용을 쉽고 담백하게 정리했다. 심지어 만화책이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저자는 만화책의 특징을 잘 살려 4명의 주요 등장인물 캐릭터를 만들었다. 마키아벨리, 유비, 관우, 장비. 동서양 역사 속 걸출한 인물들이 만화 속에서는 스승(마키아벨리)과 제자(유비, 관우, 장비)로 만난다. 마키아벨리가 “피렌체 도서관에서 우연히 시간 여행 책을 여는 바람에 삼국지 시대(3세기) 중국으로 오게 되고, 이후 중국의 노량진(?)에서 <군주론> 강사로 활동”하게 된다는 가상의 설정이 재미있다.      


강사(?) 마키아벨리는 노량진에 모인 유비, 관우와 장비에게 <군주론>의 핵심을 설파한다. 군주론 전체 내용의 맥락을 구성하는 ‘포르투나’와 ‘비르투’ 개념을 설명하며 운명(포르투나)을 거부할 수는 없지만 비르투(능력)를 갖춘다면 인간은 거친 운명을 헤쳐나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군주론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규범론에 천착하기보다는 실제로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며, 실제 인간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래서 군주론이 “인민을 보는 시각은 솔직하고 현실적”이다. 군주론에서 한 말은 아니지만 마키아벨리는 <로마사논고> 제1권 제3장(로마 공화국을 완성한 호민관 제도 설립 경위에 대하여)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사람이란 모두가 사악해서 자유로이 행동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지면, 본래의 사악한 성격을 마음껏 발휘해 보려고 틈을 노리게 되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현실적' 눈은 어떤 단어가 발산하는 ‘감정’적 요소를 제할 것을 요구한다. 사악하다, 배은망덕하다, 변덕스럽다, 위선적이며, 탐욕스럽다... 이런 말들은 모두 비도덕성과 선하지 못함을 나타내는 말인가? 그래서 나쁜 인간의 본성으로, 비판받아야 할 성질로 규정되는가? 마키아벨리는 이러한 인간의 사악함은 곧바로 감정적, 도덕적 비난의 도마 위에 올리지 않는다. 이러한 말들은 선함과 악함이 아닌 인간 그대로의 본성과 면모를 '묘사'하는 말일 뿐이다. 그렇기에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곧바로 성악설로 치부하거나 '악마의 정치술' 따위로 규정하는 것은 그의 생각을 너무 단순화시키는 것이다. 

 

<노량진 군주론>은 고전 <군주론>의 핵심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만화라는 친근감 때문에 술술 읽힌다. 원전(또는 그 번역본) 정독의 깊이를 느낄 수는 없지만 군주론의 대강을 파악하기 위한 위밍업으로 <노량진 군주론>은 추천할 만한 책이다. 하지만 <노량진 군주론>만을 읽고 마키아벨리와 깊은 대화를 나눴다고는 할 수 없다. 고전읽기라는 고통스러운(?) 지적 작업 이후에 느낄 수 있는 일종의 성취감을 느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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