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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크 타이프 Jan 25. 2019

꼰대

- 지갑을 채워주지도, 영혼을 채워주지도 않는

오랜만에, 급하게 글을 써본다. 지금 시각 11시 28분. 점심시간까지 30분 남았다! 


친한 지인들과 단체 카톡방 대화를 이어가다 문득 이런 대화들이 오고 간다. 

"넌 어떤 성향의 사람들이랑 잘 맞아?" 

"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과 잘 맞고, 멜론 top 100... 이런 것만 듣는 사람이랑은 안 맞고..ㅎ"

"난 어떤 사람과 잘 맞는다, 이런 건 딱히 없고 그냥 만나보면 느낌이 와. 나와 맞는 사람인지 아닌지. 다들 그렇지 않나?"

"나는 어떤 인간일까. 너희는 어떤 인간이냐..ㅎ" 


나는 어떤 인간일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을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걸까. 참으로 어려운 질문 중 하나다. 언젠가 인터넷에 한창 떠 다니던 프랑스 고등학생들이 푼다는 철학 문제 - 이를테면,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욕망하는 것을 아는가' - 와 같은 난이도다. 


아저씨가 되어 가면서 어떤 사람이 되지는 말자라고 결심할 때가 종종 있다. 꼰대는 되지 말자. "인간이 되진 못해도 괴물이 되진 말자"(영화 <생활의 발견> 중)라는 영화 대사처럼, 좋은 사람은 못되어도 꼰대는 되지 말자. 그런데 꼰대는 어떤 사람이지?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꼰대라고 생각했던가? 꼰대란 무엇인가. 이 또한 난제다. 


마침 예전 술자리에서 만난 한 선배가 머릿속 팝업창을 띄운다. 술자리에서 그 선배는 나를 비롯해 함께 모인 후배들의 동향을 묻는다. 하는 일은 잘돼? 결혼은 했어? 아기는 아직 없냐? 집은 어디에 샀냐...'걔가 범인이다'라는 스포일러 뿌려진 스릴러 영화처럼 결말이 뻔한 질문이다. 아니, 질문도 아닌, 일장 연설을 위한 도입부였다. 그 선배는 그렇게 30분의 연설을 끝냈다. 일 년 전에 들었던 연설의 리플레이. 그렇다. 말하자면 그는 '꼰대'의 전형(prototype)이었다. '오늘 보지 않기 □'에 체크.


생각건대 (나에게) 좋은 사람은 두 부류다. 내 지갑을 채워주거나, 내 영혼을 채워주거나. 꼰대란 어떤 사람인가를 '대우 명제' 기법으로 생각해보면 꼰대의 본질에 근접할 수 있다. '내 영혼을 채워주지도, 내 지갑을 채워주지도 않는' 사람이 꼰대 아닐까. 다행히 그 술자리 선배는 술집을 나서며 자신의 지갑을 열었다.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단체 카톡에 글이 뜬다. 

"내 친구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인데...'하와이에는 백발을 휘날리며 서핑보드 들고 바다로 뛰어가는 할배, 할매가 많다... 그들 누구도 과거를 얘기하지 않고 언제나 내일을 이야기한다.'라고 썼어... 그래, 콘텐츠가 있는 아재가 되자." 


그래. 과거사가 아닌 현재, 미래의 콘텐츠가 있는 사람이 되자. 꼰대는 되지 말자. 급하게 글을 끊는다. 점심시간, 배를 채울 시간이다. 문득, 하와이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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