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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크 타이프 Sep 28. 2018

간병 일기

어수선하고, 초조하고 지루한

아버지의 배에 탈이 났다. 단순한 배탈이면 좋으련만 서혜부라는 곳 안쪽으로 창자가 흘러나온, 이른바 '탈장'이란다. 노쇄한 몸 속의 장기들은 이제 중력도 버티지 못해 밑으로 흘러나오나 보다. 응급실로 향하는 마음이 무겁다. 응급조치 이후 곧바로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에 다급하게 수술 날짜를 잡고 입원 수속을 밟았다. 다행히 큰 병은 아니라 수술은 한 시간 정도면 끝나고 입원도 2박 3일 정도만 하면 된다는 말에 안도의 한숨을 쉰다.


6인실에 배정받았다. 다행스런 일이다. 추석 연휴가 끝나고 밀린(?) 병을 치료하기 위해 밀려드는 입원 환자들로 병실이 부족하다보니 일단 1인실에 배정받았다가 6인실에 공석이 생기면 자리를 옮기는게 보통이란다. 1인실은 1박에 수 십만원, 웬만한 특급 호텔룸보다 비싸다니 두 번째 안도의 한숨. 더구나 6인실 자리 중에서도 경치 좋은 창가쪽 병상을 차지했으니 운이 좋은 셈이다. 병상 한편에 마련된 옷장과 서랍에 집에서 가져온 이런저런 소지품을 쑤셔 넣는다.


6인실에는 한 지붕 여섯 가족이 모이고 여섯 개의 사연이 모인다. 아버지에게 환자복을 입히고 병상 옆 보호자용 침상에 앉아 숨을 돌리고 있으려니 맞은 편 병상 환자의 보호자가 말을 건다. 팔순이 넘은 할머니가 쉰살이 넘은 아들의 병수발을 몇 달째 들고 있단다. "무신 병 땜시 왔는가?" "어디 사시는가?" "아들인갑네?" 등등의 사뭇 자세한 호구조사가 끝내고 할머니는 자신의 사연을 쏟아낸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할머니의 말동무가 된지 10여 분이 지나자 담당 간호사가 아버지의 이름을 확인하고 병원 안내문을 건네며 유의사항을 친절하게 전해준다. 이 간호사는 이런 똑같은 친절 멘트를 하루에 몇 번이나 반복해야 하는 것일까. 저녁 여섯시에 저녁밥이 나오니 맛있게 잡수시고 다음 날 수술이니 자정 이후에는 금식. 물도 마시면 안된다고 당부한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혹시 병실에서 신을 슬리퍼는 안 주나요? 네, 슬리퍼나 보호자가 쓰실 담요 같은 개인물품은 제공하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응급실에서 미리 준 입원 안내서를 제대로 읽지 않았다. 와이프에게 전화를 했다. "퇴근하고 병원 오는 길에 슬리퍼랑 담요 좀 갖다줘."


고작 2박 3일 간의 입원 생활에도 이것저것 필요한 것이 많다. 집이 아닌 곳에서 숙박을 해결해야 하니 여행과 별반 다르지 않다. 치약, 칫솔, 속옷, 양말, 수건, 휴지, 물컵...그리고 슬리퍼와 담요.


병원에 입성하면서 가장 걱정스러웠던 것은 바로 '시간'이었다. 길이 180cm, 폭 70cm 정도되는 좁디좁은 보호자 침상 위에서 기나긴 48시간동안 무얼 하며 지내야 하나. 누구나 그렇듯 내가 생각해 낸 대안은 '책'이었다. 평소 읽고 싶었던 책 두어 권을 챙겼다. 요시다 슈이치의 추리소설 <분노>, 그리고 김영하 작가의 단편 소설집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간만에 여유를 누릴 수도 있겠다는 묘한 기대감도 생겼다. 그러나...이런 기대는 한낫 초짜 보호자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입원 병실에서의 시간은 '어수선한 지루함'의 연속이었다. 담당 간호사가 병상 환자를 체크하고 나면, 병실 담당 주치의가 와서 수술 일정과 유의사항을 알려준다. 혈압을 재주는 간호사가 왔다가니 정맥주사를 놓는 전문 간호사가 환자의 팔뚝에 길다란 주사바늘을 꽂고 간다. 잠시 숨을 돌리면 수술 전 각종 검사를 위해 간병 요원이 와서 환자를 휠체어에 태우고 이런저런 검사실로 향한다. 검사를 끝내고 환자를 눕히니  앞집 할머니가 또 말을 걸어온다. 여기 간호사들이랑이 그렇게 친절할 수 없당깨. 나는 천안 병원에서 몇 달을 있다가 여기 왔는디 여기는 다들 친절혀서 좋아.


곧이어 병실 청소해주는 분이 한바퀴 대걸레질을 하고 나면 어느덧 저녁 6시. 심심한 병원 식사가 나오고 환자들은 별 말 없이 밥과 국을 입에 넣는다. 식사를 하는 아버지를 우두커니 바라본다. 보호자가 먹을 밥은 없다. 따로 미리 주문하면 보호자 식사도 함께 나온다지만 병원 밥을 먹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다.


지하 1층 푸드코트에서 뚝배기 불고기 한 그릇을 뚝딱하고 올라오니 6인 병실은 면회 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환자 면회 시간은 여섯 시부터 여덟시까지 두 시간이다. 병실 2번칸에 살고 있는 아주머니 한 분이 나에게 송편 몇 개를 담은 은박접시를 건넨다. 면회 온 분이 가져왔단다.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하얀 송편 하나를 입에 넣는다. 나도 뭐라도 줘야 하나.


여덟시가 다 되어 도착한 어머니와 그의 며느리가 슬리퍼와 담요, 정성스레 깎은 과일을 건넨다. 약간의 담소를 나누고 두 여자를 돌려 보내야 했다. 보호자는 한 명만 남으라는 병원의 지령이다. 이제야 한 숨 돌리고 보호자 침상에 누워 볼 수 있겠구나. 병실 내 마련된 화장실에서 대충 세수를 마치고 병상 커튼을 두르고 나니 아버지와 나, 두 남자만의 공간이 남는다. 별로 할 말은 없다. 보통 말을 건네는 쪽은 아버지다. 휴지 좀 줘봐. 물 좀 떠와라. 베개 좀 허리에 대 줘라.


소한 간병을 끝내고 마침내 침상에 누우니 아홉시가 넘었다. 반듯이 누워 기립근에 한껏 힘을 주어 본다. 기지개도 펴 본다. 딱딱한 침상의 불편함이 주는 묘한 편안함이 온 몸에 전해진다. 엎드려 자세로 고쳐 눕고 집에서 가져온 책의 첫장을 펼치니...병실 불이 꺼진다. 전체 소등. 그래...잠이나 자자. 그러고 보니 이렇게 일찍 잠자리에 든 적이 언제였던가.


팔 베개를 하고 눈을 감았지만 잠이 쉽사리 올 것 같진 않다.  옆 칸, 그 앞 칸, 그리고 그 옆 칸 병상에서 울려 퍼지는 코곯이 소리가 교묘하게 엇박자의 리듬을 탄다. 코를 고는 사람들의 정작 심각한 문제는 코곯이 그 자체가 아니다. 코를 골다 갑자기 숨을 멈춰 옆사람을 놀래킨다는 점도 아니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들이 항상 다른 사람보다 먼저 잠이 든다는 것에 있다.


반 수면 상태의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코곯이  이웃들 때문에 뜬 눈으로 밤을 샜다는 아버지의 눈가가 퀭하다. 친절한 간호사가 아침 인사를 건넨다. 오후 두 시쯤 예정되었던 수술이 조금 늦어질 것 같다는 말도 덧붙인다. 자정 이후 금식에 밤잠까지 설친 아버지의 눈가에 초조함이 덮힌다.


어제와 비슷한, 어수선한 오전을 보내니 어느덧 오후. 간병 요원을 따라 아버지를 모시고 수술 대기실로 향한다. 걱정 반, 격려 반을 손끝에 실어 아버지 어깨를 한 번 꾹 쥐고 대기실을 나왔다.


한 시간이 조금 넘는 수술이 끝나고 환자는 회복실로 옮겨졌다. 전신마취에서 깨어날 때까지 또 한 시간을 기다리니 "보호자는 회복실 앞 엘리베이터에서 대기하라"는    멘트가 나온다. 수술은 잘 된 것 같다. 환자를 실은 이동 침대가 6인실로 향하니 그 뒤를 따르는 내 발걸음도 한결 가볍다. 금식 제한도 풀렸다. 아버지는 물부터 찾는다.


2박 3일의 짧은 간병을 거의 끝낸 지금 시각은 어느덧 자정을 넘기고 있다. 코곯이 소리를 피해 잠시 병원 복도에 마련된 휴게 공간에서  몇 글자 끄적이고 있다.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일까. 복도에 놓인 긴의자에 누워 쪽잠을 청하는 이들이 종종 보인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저 살기 위해, 살리기 위해 분주하고 어수선한, 초조하고 지루한 하루를 묵묵히 견뎌낸 사람들이 새삼 안쓰럽고 대견하다. 

아프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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