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이크 타이프 Feb 09. 2019

[간헐적 에세이] 프레임의 세계

- 객관의 세계는 없다

프레임의 세계

객관의 세계는 없다. 자연과학의 세계가 아닌 사회과학의 세계는 더욱 그렇다.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회’라는 공간 속에서 진정한 객관성을 끝까지 유지하는 사실(fact), 사건(event)이 얼마나 있을까. 수많은 사회과학 연구들의 기본 전제가 되어 주었던 인간의 ‘합리성’은 수많은 역사적 경험을 통해 ‘제한적 합리성’으로 축소되거나 ‘비합리성’으로 대체되고 있다. 사람들은 본 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만을 본다. 이를테면 우리는 프레임(틀)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      


프레임의 세계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논리와 증거가 도구화된 세계다. 사건이 발생하면 증거와 논리적 분석을 통해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 하지만 누구도 잘 실천하지 않는 - 사유의 원칙이다. 하지만 프레임의 세계에서는 사건 발생과 동시에 성급하지만 견고한 판단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진다. 논리와 증거는 그 편협하고 성급한 판단을 합리화하기 위한 사후적 도구다. 이로 인해 누군가는 괜한 피해자가 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근거 없는 영향력과 권력을 가지기도 한다.      


프레임의 세계에는 항상 의도(intention)가 숨어 있다. 사적 경험과 감정에 따라 자연스레 생길 수 있는 편견(prejudice)과 달리 프레임은 언제나 누군가 일부러 그러한 편견을 만든다. 우리는 꽤 자주 그 누군가를 ‘정치판’에서 만난다. 얼마 전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으로 법정구속된 김경수 경남도지사를 두고 정치권은 설 연휴에도 프레임 전쟁을 벌였다. 보수 성향 야당들은 ‘헌법파괴’, ‘삼권분립 유린’ 프레임을 들고 나왔고, 여당은 이들 야당들에게 ‘대선 불복’하는 것이라는 프레임을 씌운다.      


한편, 사람들의 태도, 인상, 말투 등의 요소들은 프레임 형성에 있어 아주 좋은 재료다. 사건과 논리적 관련이 없음에도 사람들의 격정적 감정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성폭행당한 다음날 안 전 지사가 좋아하는 순두부 식당을 찾고 저녁때는 와인바에 함께 간 사실을 문제 삼았다. 이를 피해자답지 못한 행동으로 보고 무죄의 증거로 삼았다. 가해자를 바라보는 시선에서도 비슷한 프레임(틀)이 작동한다. 땅콩 회항으로 온 국민의 공분을 산 대한항공의 조현아 전 부사장은 포토라인에 섰을 때 흘겨보는 눈빛으로 더 뭇매를 맞았다."
- <한겨레21, 1248호>, p.006      


프레임의 세계 속에서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을까. 프레임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선의의 피해자를 구원할 수 있을까. 쉽지는 않겠지만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힌트는 프랑스 시민 혁명의 산물인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 제9조에 있다: 누구든지 범죄인으로 선고되기까지는 무죄로 추정한다. '그냥 네가 싫은' 솔직한 마음은 잠시 접어두고 사건과 맥락에 집중하는 것. 이것이 프레임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이라면 전략. 



작가의 이전글 [서평] 폭정 - 20세기의 스무 가지 교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