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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크 타이프 Feb 15. 2019

[간헐적 에세이] 에세이

누구나 쓸 수 있는, 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을지 모르는

‘에세이’에 대한 에세이     

에세이(essay): 일정한 형식을 따르지 않고 인생이나 자연 또는 일상생활에서의 느낌이나 체험을 생각나는 대로 쓴 산문 형식의 글(네이버 사전). 가끔 ‘에세이’란 말을 붙여 글을 쓴다. 내가 에세이를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쓰기 쉽기 때문이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여전히 간헐적 취미로 향유하는 수준에 머무는 나 같은 사람에게 ‘에세이’란 형식의 글은 왠지 만만하다. 치기 어린 감정일기를 에세이란 말로 그럴듯하게 포장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왜 ‘에세이’란 장르의 글을 읽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상념에 가까운, 개인적 소감에 가까운 글 따위를 왜 읽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전문적 지식을 전달하는 것도 아니고, 뛰어난 통찰력이나 지혜를 제시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문학의 ‘무용성’을 순수하게 즐기기 위해서라면 소설을 읽으면 될 것이고, 잉여의 시간을 즐기기 위해서라면 패션잡지나 여행잡지가 더 재밌다.


그래서 100쇄를 넘겼다는, 베스트셀러를 넘어 스테디셀러로 승격한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를 나는 아직 읽지 않았다. 서점에서 성의 없이 훑어보기는 했다. 그게 다였다. 만만해 보여서 가끔 쓰지만, 그래서 읽지는 않는, 에세이에 대한 일종의 모순적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이런 나의 모순적 질문(왜 나는 에세이를 쓰는가, 그런데 왜 읽지는 않는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찾았다. 얼마 전 중앙일보에 기고한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의 글이 그 해답이다. 김 교수는 지난해 추석 즈음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칼럼으로 일약 가장 핫한 칼럼니스트로 변신한 인물이다.     

 

그는 얼마 전 설날을 기해 중앙일보에 <설이란 무엇인가>라는 신문 한 면 넘게 차지하는 사뭇 긴 글을 남겼다.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칼럼을 워낙 재밌게 읽었던지라 주저 없이 속편 <설이란 무엇인가>를 읽었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345714?fbclid=iwar0iitdzmpc-urvltmair-ipq7bujbtudhjo978txewzkgmeiimzeqv90hs            

에세이는 "인식의 쇄신"

이 글에서 김 교수는 에세이의 목표를 명확하게 정의한다.


... 칼럼이나 에세이 같은 글의 목표는 인식의 쇄신이거든요.
기존의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을 쇄신해서 달리 보게끔 하려는 것이죠.
좋은 에세이란 자기가 알던 것이 전부가 아니라
더 큰 어떤 것의 일부임을 깨닫기까지 독자와 함께 걸어가는 일이거든요.
 

에세이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 이토록 극명하게 말해 준 이가 있던가. 에세이 따위의 글의 목표는 ‘인식의 쇄신’이라니. 이 한 문장만으로도 사유의 깊이와 농도를 감지할 수 있다.

      

그의 말을 듣고, 아니 읽고 나는 일종의 ‘질투심’이라는 어떤 지독한 감정을 느꼈다. 질투심은 강렬하고 즉각적이며 찝찝한 감정이다. 존경심 같은 온순한 감정과는 결이 다르다. 이해를 거쳐, 존중을 거친 후 이르게 되는 완만하고 평화적 감정의 곡선을 그리는 존경심과는 다른, 일종의 권력을 가진 감정이 바로 질투심이다. 나는 김영민 교수에게 “에세이 같은 글의 목표는 인식의 쇄신”이라는 말에 그런 질투심을 느꼈다.


김 교수가 툭 던진 이 한 문장을 통해 나는 에세이에 대한 인식을 쇄신할 수 있었다. 별 것 아닌 글이라 별 수고 없이 끄적이면 되는 줄 알았던 나의 경솔한 태도에 작은 경종을 울리는 문장이었다. 동시에 에세이를 왜 - 최소한 가끔은 - 읽을 필요가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자기가 알던 것이 전부가 아니라 더 큰 어떤 것의 일부임을 깨닫”게 해주는 '좋은 에세이'를 경험하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동시에 그런 깨달음을 교조적으로 강제하는 게 아니라 “독자와 함께 걸어가는 일”이기에 나 같은 아마추어도 에세이를 쓸 수 있겠다는 용기도 생겼다.


에세이(essay): 일정한 형식을 따르지 않고 인생이나 자연 또는 일상생활에서의 느낌이나 체험을 생각나는 대로 쓴 산문 형식의 글(네이버 사전). 그래서 누구나 쓸 수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읽지 않을 수도 있다. 좋은 에세이를 한 번쯤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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