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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크 타이프 Jun 23. 2019

사장님의 명언

사장이 직원에게 월급을 주는 이유

예전 직장을 다닐 때의 얘기다. 흔치 않게 '한우'를 굽는 회식 자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우를 신나게 굽던 직원들에게 사장님이 운을 띄운다. 내가 일전에 말이야...(또 시작된 건가...) 다음은 사장님의 전언이다.


사장이 어느 날 입사한 지 2년이 조금 넘은 K대리를 불러 단독 면담을 나누었다.

- 벌써 우리 회사 들어온 지 2년이 넘었군.

- 네, 사장님.

- 회사는 다닐 만 해? 일은 어때, 힘든가?

- 네...뭐...

- 힘들지?


잠시 머뭇거리던  K대리가 숨을 크게 내쉬고는 입을 떼었다.

- 사실 사장님, 요즘 일이 너무 재미가 없습니다. 힘들다기보다는 일이 그닥 즐겁지 않네요.

엷은 미소를 지으며 사장이 말했다.

- 회사 그만둔다는 얘기 하려는 건 아니지?

- 그런 얘기는 아닙니다. 다만 의욕도 좀 떨어지고... 그렇습니다.


사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흠... 다행이군. 아주 정상이야.

- 네?


사장은 자세를 고쳐 잡고는 K대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 이봐, 회사 다니는 게 그렇게 즐겁고, 일이 재밌어 죽겠으면 자네가 나에게 월급을 줘야지, 내가 왜 자네한테 월급을 주겠나? 놀이공원 가면 자네가 돈을 내고 들어가지 놀이공원에서 자네에게 돈을 주지는 않잖는가?


사장은 말을 이었다.

- 힘들고 지겹고 어려운 일을 자네가 그래도 열심히 해주니까 고마워서 내가 월급을 주는 거라네. 좀 더 버티다 보면 가끔은 하는 일이 재밌고, 해보고 싶은 일도 생기기 마련이지. 회사일이라는 게 그런거라네.

- 아... 네...

- 그때가 되면 그 힘들고 지겹고 어려운 일을 즐겁게 해 주니 내가 월급을 좀더 올려줘야 하지 않겠나.


무슨 궤변인가 싶지만 묘한 여운이 남는 말이다. 직장 30년 차 사장님의 '직원 다루기 내공'이 돋보인다. 동시에 '직원의 열정'이니, '회사의 비전'이니 하는 낭만적 세계관에 대항하며, 자본주의의 생리를 담담하게 담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는데 월급도 받는다면 그건 정말 굉장한 '희극'이다. 하기 싫은 일이라도 열심히 하며 버티면 그래도 월급이 나오니 '비극'은 아니다. 하기 싫은 일을 하는데 월급도 제때 못받는다면...생각하기도 싫다.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오늘도 그 희극과 비극의 어디쯤에서 서성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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