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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크 타이프 Jul 19. 2019

집중한다는 것

슈퍼모델대회에서 키 큰 미인 찾기

록치 않은 삶을 풀어나가는 해법으로 흔히들 '집중'이라는 고도의 행동 전략을 제시한다. 그런데 이 '집중'의 세계에도 어떤 층위가 존재한다. 집중한다는 행위에도 여러 겹의 결이 다른 의미가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층위를 발견하면 보다 견고하고 구체적인 '집중'을 통해 보다 나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집중의 두 가지 의미

무언가에 집중한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집중의 대상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그 대상과 관련한 모든 것에 관심을 갖는다는 의미다. 그래서 무언가에 대해 집중한다는 것은 그것을 - 비록 순간이라 하더라도 - 열렬히 사랑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내 머릿속엔 너 밖에 없다"는 달콤한 고백이 담고 있는 의미가 무엇이겠는가. 네가 아닌 그 무엇에도 관심이 없지만, 동시에 너와 관련한 모든 것에 관심을 갖는다는 얘기 아니겠는가. 이렇게 대상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거치고 나면 우리는 그 대상을 둘러싼 하나의 '세계'를 발견한다. 이것은 사랑의 기쁨이자, 집중으로 얻어 낸 성과(achievement)다.


집중해서 무엇을 남길 것인가

어떤 대상에 집중한다는 것은 무엇을 남길 것인가, 집중의 결과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가령 우리가 책 한 권을 집중해서 읽는다고 했을 때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저 열심히 책을 읽는 것인가? 그렇게 열심히 집중해서 책을 읽으면 무엇이 남는가? 열심히 책을 읽었는데도 머릿속에, 마음속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던 경험은 흔하다. 이런 의도치 않은 허무함이 발생하는 이유는 책을 읽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허무한 경험을 수 차례 겪어 본 사람이라면 독서의 목표를 보다 구체적으로 세워보자. 가령 소설을 읽을 때 그저 이야기에 빠져보는 것도 좋지만, 책을 읽으며 아름다움 문장을 포착하는데 공을 들여 보는 것이다. '미문 발견'이라는 미션을 설정하면 소설 읽기의 즐거움도 커진다. 예전에 읽었던 김사과 작가의 장편소설 <풀이 눕는다>를 다시 펼쳐보니 이런 글귀에 밑줄이 그어져 있다.

... 그 너머로는 남산이 보였는데, 마치 먹다 남은 초록색 케이크 조각 같아 보였다.
- 김사과, <풀이 눕는다> p.140.


이 아름답고 독특한 문장을 곱씹어보니 서울의 남산이 숨기고 있던 또 다른 세계, '먹다 남은 초록색 케이크'를 발견한다.


슈퍼모델대회에서 키 큰 미인 찾기

수려한 문장으로 가득 찬 소설을 만나면 소소한 고민도 생긴다. 감탄하며 소설 속 문장에 밑줄을 긋다 보면 밑줄 친 문장들이 다시 책이 될 만큼 쌓인다. 훌륭한 소설 속에는 좋은 문장들이 너무나 많지만, 그래서 또한 정말 좋은 문장들을 추려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슈퍼모델대회에서 키 큰 미인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인가, 쉬운 일인가. 뭐, 이런 고민과 비슷하다.


이런 고민은 뜻밖의 '추억'을 낳는다. 아름다운 문장을 읽으며 밑줄을 치고, 그렇게 밑줄 친 문장들 속에서 더 아름다운 문장들을 찾고,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생각해보고, 작가가 그려내는 소설 속 세계와 맥락을 떠올려보는 고민의 여정. 이 여정을 마치고 나면 소설책 한 권과 쌓은 추억도 남는다.


집중한다는 것. 이것에 '구체성'을 더하면 많은 것이 남는다. 그저 열심히 한다는 미적지근한 태도는 집중의 의미를 퇴색시킨다. 무엇을 발견하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집중의 과정에 이러한 구체적 고민을 첨가하면 언제나 무엇인가가 '남는'다. 지식이 쌓이고, 감정이 더해지고, 그리고 추억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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