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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크 타이프 Sep 24. 2019

순환선, 환승역, 출구

나는 혼자인가, 아닌가

지하철 2호선은 순환선이다. 목적지의 반대 방향에서 탔다 해도 좀 더 멀리 돌아갈 뿐, 언젠가는 목적지에 다다른다. 그래서 2호선에 잘못된 방향이라는 건 없다. 좀 더 멀리 돌아가는 방향이 있을 뿐.


그래도 이왕이면 돌아가지 않는 게 좋다. 여행 삼아 돌아가는 게 목적이 아닌 이상 빠른 길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퇴근 시간, 나는 지금 낙성대역에서 교대역으로 향하고 있다. 최종 목적지는 3호선 매봉역이다. 낙성대, 사당, 방배, 서초, 그리고 3호선 환승역인 교대. 몇 정거장 되지 않는다. 출퇴근 시간이면 어김없이 사람이 붐비는 구간이다. 생활 패턴이 비슷한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


사당역에 도착할 때쯤 이런 안내방송이 나온다.."oo방향으로 가실 분은 14번 출구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사당역에서 갈림길이 14개나 된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사당역까지 같은 배, 아니 같은 전철을 탔던 사람들은 역에 내려 다시 14개의 갈림길로 각자 흩어진다. 사람 사는 길이 이렇게나 다양하다.


어느덧 교대역. 차에 탄 사람들 중 반 정도가 내린다. 역에서 바로 출구로 나가는 사람도 있지만, 또 많은 사람들이 3호선 환승구로 향한다. 같은 칸, 내 앞에서 큰소리로 전화통화를 하던  머리 희끗한 아저씨도 나와 나란히 환승구 통로를 걷는다. 사업상 문제가 생겼는지 거래처 어쩌고 얘기가 나올 때마다 목소리가 커진다.


3호선 플랫폼에 다다르니, 큰 목소리의 주인공이 사라졌다. 나는 오금행을 향하고 아마도 그 중년 남자는 대화행으로 발걸음을 옮겼나 보다.


나보다 먼저 플랫폼에 도착한 사람들 뒤로 줄을 서서 매봉역을 향해 달려오는 오금행 3호선을 기다린다. 나보다 한참은 먼저 온 것 같은데, 결국 같은 차를 타는구나. 세상만사 선착순이 아닌 것도 많다.


이번 역은 매봉역입니다. 자칫 딴생각을 하다 역을 지나칠 뻔했다. 안내방송이 없었더라면, 스마트폰에 열중하고 있던 나의 어깨를 누군가 툭, 치지 않았더라면 여지없이 다음 역에서 되돌아 올 뻔했다.


매봉역 4번 출구, 목적지에 거의 다 왔구나. 출구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밖에 나오니 어느덧 하늘이 어둡다.  저녁 6시 30분이 조금 넘었을 뿐인데, 그 길던 해는 누가 잘라먹었나. 가을바람이 잘라먹었나 보다. 퇴근길을 재촉하는 사람들이 나를 마주 보며 매봉역으로 바쁜 걸음을 옮긴다. 나는 여기에 도착했는데 그들은  여기를 떠난다. 낙성대역에서 내리는 사람도 많겠지.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목적지다. 파란불을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보니 내 옆에는 아까 내 어깨를 툭 쳤던 사내가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던데. 몇 초 후면 이 인연도 끝이다.


횡단보도를 건너니 목적지가 보인다. 도착해보니 나 혼자다. 같은 칸에 탔던 그 많은 사람들은 어디 갔을까. 거성의 중년 남자는 어디로 갔을까. 어깨 툭 인연은 또 어디로 갔나. 왜 난 여기에 홀로 있는가. 이렇게 허튼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친구에게 카톡 메시지가 왔다. 5분 뒤 도착. 나는 혼자인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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