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치죠지와 도쿄 돔의 인공지능 이야기

이야기 파편

by 하 연

여름을 기다리고 있었던 그녀는 키치죠지를 걷고 또 걸었다.


아름다운 추억이 될 거라면서, 오래된 주제에 대한 오래된 쟁점을 토론하기 위해, 오래된 극장이었던 세미나 장소로 가는 길이었다.


때는 2134년, 무더운 6월의 초여름이었다.

그 날 도쿄의 대기질은 맑음, 구름과 햇살 또한 맑음이었다.


이노카시라 공원이 위치한 무사시노의 끝자락부터 도쿄라는 돔의 태양열섬을 헤치고 나아가던 캐서린은, 남자친구인 라파엘과의 데이트 약속에 이미 늦었기 때문인지 등에 땀이 줄줄 흐르는 날씨임에도 발걸음을 늦출 줄을 몰랐다.


둘은 겨울이면 홋카이도의 하늘에 하얗게 내리는 눈과 맑게 걸리는 별을 좋아한다는 공통의 취미가 있었다.


삿포로의 홋카이도대학에서 조교수로 일하던 그들이 이번에 도쿄까지 내려온 것은, 사실 라파엘의 학회 참석으로 인한 출장 때문이었다.


라파엘은 양자응용수학에 관한 논문을 여럿 내면서 이름을 날렸다.

캐서린은 고전적인 양자물리학을 이용한 차세대 인공신경망을 연구하며 그와 만났다.


그들은 학부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지만, 연인으로서 제대로 사귀게 된 것은 대학원생이 된 이후부터였다.


둘이 처음으로 사랑을 이야기했던 곳은 키치죠지의 유명한 절이었다.


벌써 시간은 한달음에 그들을 멀리까지 싣고 내려다주었지만, 시간은 단순히 그들을 그곳까지 태워다준 이동수단인 것만은 아니었다.


어쨌든 지금은, 그녀에겐 시간이 없었다.


그래도 평소에 체력을 열심히 관리해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면서, 캐서린은 라파엘을 만나기 위해 섭씨 30도가 넘는 무사시노의 골목을 가로지르며 열심히 걸었다.


‘차를 가져올걸…’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저녁에 와인이라도 한 잔 걸칠 거라는 기대감에 그러지 않았던 탓이다.


그들은 무조건 차를 직접 운전했다.

그들이 처음부터 수동으로 운전하는 습관을 들였던 것은 아니었다.


명색이 과학자 예비 부부였던 그들이 그런 사소하고도 잘못된 믿음으로 그럴 리는 없었다.


그렇게 깜찍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절대 아니었다.


“캐시, 그렇게 서둘러 오지 않아도 되는데.”

마침내 그녀가 키치죠지의 번화가에 다다랐을 때, 라파엘은 캐서린이 오고 있는 길로 조금 마중을 나갔다.


“미안해. 우리 둘 다 연구소를 비웠는데 갑자기 데이터센터에 냉방이 고장났다길래, 그거 때문에.”

“나도 들었어. ‘오필리아’가 알아서 잘 해결했다지?”


“응. 다행이야. 돌아갈 때 선물이라도 하나 사가야겠어. 너무 기특하지 않아?”

라파엘은 따뜻한 미소를 짓고는, 캐서린의 손을 잡고 극장 방향으로 걸어갔다.


빈티지 옷을 파는 가게와 키치죠지의 명물인 중화 만두 가게가 그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러게. 생각해봤는데, 이번 기회에 나도 너네 연구실 쪽에 핫라인 좀 받을 수 있을까?”

“얼마든지. 그런데 보안 관련 제반 비용도 들고, 굳이 그렇게 할 필요까진 없을 것 같은데.”


“아냐. 나도 내가 어디에 있든 우리 딸을 보고 싶어서.”

라파엘은 캐서린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자신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발산했다.


그런 눈빛은, 아무나 쉽게 가질 수 없는 눈빛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사실, 굳이 따지자면 더욱 특이한 눈빛을 가진 것은 캐서린 자신이었다.


아일랜드 출신의 아버지와 노르웨이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캐서린은, 굉장히 희귀한 연녹빛을 띄는 눈동자를 갖고 태어났다.


반면 라파엘 또한 21세기의 먼 과거부터 프랑스의 엘리트 집안 출신으로 어머니의 화려한 외모를 쏙 닮은 그는 학창시절 알게 모르게 인기가 많은 남자였다.


둘은 사귄 지 이미 오래되어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를 볼 때마다 심장이 뛰었다.


그는 그녀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존재였다.

그것은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제는, 오필리아도 마찬가지였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그들이 극장에 다다랐을 때는 이미 태양이 하루 중 가장 높이 떠 있었다.


뜨겁고 습한 도쿄의 여름 날씨에 은근히 먼 걸음으로 잔뜩 진을 뺀 그들은, 극장가 근처 ‘에어 돔’ 안으로 입성하자 그야말로 천국의 냉골이 그들을 맞이했다.


“와, 우리 15분 정도 걸었나? 더워 죽는 줄 알았네.”


“아, 진짜 도쿄는 여름이 문제야. 왜 이 여름에 키치죠지에서 학회를 여는 건지 나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가.”

캐서린이 말했다. 그녀는 숱 많고 긴 붉은 머리를 뒤로 묶으며 땀으로 촉촉하게 젖은 목에 붙은 머리카락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라파엘은 그 말에 공감하면서, 그녀의 행동과 그녀의 하얀 뒷목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캐서린이 도쿄에 온 지도 어느덧 2주, 그녀는 단지 그 짧은 기간 동안 도쿄에 머무르며 자외선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광대와 콧등이 이미 약간 붉게 올라와 있었다.


물론 원래도 홍조가 많고 창백한 피부를 가진 그녀였다.

간빙기의 한복판을 건너가는 시대에 태어난 그들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도쿄에 비하면 훨씬 고위도 지역인 노르웨이의 오슬로에서 거의 대부분의 어린 시절을 보냈던 라파엘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지구의 세차 운동이 점차 태양을 향해 똑바로 곧게 서는 방향을 향하고 있다지만, 그럼에도 고위도 지역은 여전히 적도 부근 저위도 지방보다 일조량이 낮았기 때문이다.


지구는 원래부터 극지와 고위도 지역에 빙하를 갖고 있지 않았다.

여전히 빙하가 적게나마 남아있는 시기를 살아가는 그들은 아직도 명백히 빙하기를 살고 있는 22세기의 인간이었다.


단지, 현생인류가 빙하기 중 꽤나 혹한기에 해당하는 시절에 태어나 현재에 이르러 지금의 기후를 괴로워할 뿐이었다.

21세기 말에 찾아온 소빙하기는 태양 운동에 의한 것이었고, 지구는 인간에게 잠시 냉기를 다시 돌려주었지만, 이내 태양은 과거의 활력을 되찾았고 그 결과 지구는 다시 더워졌다.


그들은 2134년 올해의 지구 평균 기온은 약 17도로 예상된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었다.


그만큼 행성기후학에 대한 연구와 관심 또한 활발한 시대였다.

라파엘과 캐서린은 그쪽 분야의 사람들과 크게 교류하지는 않았지만, 하여간 그들은 그런 주제로 이야기를 하며 키치죠지의 에어 돔을 건너가 학회가 열리는 큰 아트홀의 입구에 다다랐다.


“난 먼저 들어가서 컨퍼런스 준비하고 있을게. 기대해도 좋을 거야.” 라파엘은 말했다.

“그래봤자 재미없는 대규모 큐비트 계산에 대한 방정식만 늘어놓을 거잖아.” 캐서린이 말했다.


“재미없다니, 우리 오필리아의 재능을 꽃피울 수 있는 중요한 논문이야.”

“글쎄, 나는 그런 논문을 아직은, 세상에 공개하면 안 될 것 같다는 걱정이 드는데.”


학회장 안으로 들어가며, 캐서린은 그렇게 말했다.


“아니, 그래도 ‘오필리아’는 언젠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겠지. 어쩌면 우리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일 수도 있어.”


“난 그 부분도 걱정이야. 그래서 도쿄까지 너를 따라왔어.”


캐서린은 잠시 뜸을 들이고,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이번 건에 대한 학계의 반응은 아주 중요해. 그건 네가 나보다 더 잘 알 거야.”


둘은 갈림길에 섰다.


왼쪽으로 가면 발표를 준비하는 무대 뒤편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오른쪽으로 가면 학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관객석이었다.


“맞아. 이미 논문의 요지를 알고 있는 너는 더 잘 이해하리라 믿어.”

라파엘은 그렇게 말했다.


“뭐, 두려움은 대부분 가짜니까. 네가 항상 하던 말이잖아.” 캐서린이 말했다.


“그래도 전도유망한 전세계의 석학들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는 알아야 해.” 라파엘이 말했다.


캐서린은 아트홀의 무대와 객석을 가르는 커다란 갈림길 한복판에서, 그를 보내기 직전에 그의 손을 꼭 붙잡았다.

그리고 나즈막히, 그의 입술을 올려다보고는 그녀 자신의 입술을 갖다댔다.


“떨지 말고 잘 할 수 있어. 우리에겐 이미 ‘오필리아’가 있으니까.”

캐서린은 스르륵 감았던 눈을 떼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들은 미소를 짓고 있다기보다는, 그 어느 때보다 사뭇 진지했다.

라파엘은 그녀의 눈을 또렷하게 마주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걱정 마. 이번 학회는 창조에 대한 아담과 이브의 모험이 될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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