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빛 감정선> - 32 | 존경하는 거장에게
증기기관차라는 제목을 가진 그 노래에도 바람이 분다.
부평대로의 지하에서 부는 바람, 참 많이도 울궈먹은 비유였다.
익숙하게도 나에게 안정감을 주는 기관사의 운전 솜씨를 느꼈다.
정겨운 마을의 불빛이
에어컨을 잔뜩 틀어대는 지하에까지 스며들었다.
계양행 증기기관차의 맨 앞칸에서
이곳에도 바람이 불고 있음을 느꼈다.
이 열차의 기관사와는 얇은 알루미늄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기차는 울고 웃으며, 부평과 계양의 땅 속을 질주하고 있었다.
나도, 울고 웃으며 살아가고 있었을까.
지금 들리는 이 소리는, 웃음소리일까.
계양행 증기기관차의 맨 앞칸에서, 나는 시원함을 느꼈다.
유비무환, 이제는 업데이트를 끝낸 나의 아이폰과 에어팟을 만져댔다.
기계를 업데이트하듯이, 시간은 우리를 치유해줄 수 있을까.
예술형 인간이 아닌 예술가형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마초적인 조직 속에서 꽃피는 음침한 인간관계, 반복되는 음악.
나는 벌써 신물이 났다.
마초의 정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녀석들이었다.
외로운 늑대란 무엇인지도 모르는 녀석들이었다.
부평, 부평시장, 부평구청, 갈산, 작전.
추억이 깃든 에이브릴 라빈의 <He Wasn’t>는 부평대로의 지하에서 질주하고 있었다.
불면증과 시간 속에 침투하는 것들.
나는 분명 무언가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나를 지키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도, 아직 서른 살도 살아보지 않은 채로는 모른다.
우리은하의 운명 또한 서른 바퀴조차 돌아보지 않은 채로는 모르는 거니까.
인간의 한 세대는 점점 길어지다 못해 30년, 그 이상이 되었다.
기술의 한 세대는 점점 짧아지다 못해 10년, 그 이하가 되었다.
여기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다행히 명인들의 음악 속에서 숨겨진 그 답을 찾아들을 수 있다.
인간의 삶은 풍족하지만, 충족되지 않는다는 것.
반대로, 과학기술은 점점 충족되어가지만 풍족해지지 못한다는 것.
나는 계양행 증기기관차의 맨 앞칸에서, 충족될 수 없는 것들을 느꼈다.
기차를 탈 때마다, 늘 하는 생각이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자전적인 시를 쓴다.
그럴 때마다, 내가 정말로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인지 의문 또한 느낀다.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시대와 그런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이름.
내가 감히 그것을 빌려 사용해도 되는지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정말 괜찮을까.
단순한 사람은 복잡함을 모르지만
복잡한 사람 또한 단순함을 모른다.
글을 쓰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이들과 거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글 속에 숨고, 글 속에서 침묵하는 작가와 시인의 숙명이다.
나는 언제까지 시선들을 견뎌내야 할까.
조용히 스며드는 사회의 시선과는 좀 다른, 폐쇄회로로 가득한 눈길들.
나는 통신의 기능과 수송의 기능을 동시에 겸하는 계양행 증기기관차가 좋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좋아해서, 좋아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이는 송도달빛축제공원행 열차에게서 느끼는 설렘과는 또 다른 종류의 감정이었다.
과거의 설렘과, 미래의 행복.
과거엔 명백히 둘 중 하나를 취사선택할 수 있는 삶을 살았지만, 지금은 양쪽을 모두 끌어안느라 오히려 부담을 느낄 정도니까.
그리고, 모두와 친하게 지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다.
가까운 사람끼리, 친해질 수밖에 없는 것일까.
여기까지 도달해보면, 통한의 어둠 속을 헤매던 <병원> 같은 시에 나는 침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의 외침에, 이제는 이렇게 답할 수 있다.
‘이화가 만개하는 우리의 하늘엔 바람이 분다.’
그러나, 지금 이곳만큼은 또 다른 나의 병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의사가 병을 모른다 하더라도, 나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친애하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그러나 <병원>이었다.
계양행 증기기관차의 맨 앞칸에서, 그러나 나는 여전히, 이곳이 병원임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