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아우렐리우스 2-2

오늘의 불평과 내일의 비탄으로 운명에 대하여 분개하지 말라.

by 미키현 The ess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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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에 대하여 불평하고 내일에 대하여 비탄함으로써 당신의 운명에 대하여 분개하지 말라.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는 일은, 자기 연민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이다. 그건 마치 낡은 옷장 속에 갇혀 나오지 못하는 것과 같다. 슬픈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 한없이 자신이 가여워지는 순간. 눈물이 나고 가슴은 답답해진다. 그렇게 허우적댄 끝에 우리가 손에 쥐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질문은 언제나 해결되지 않은 채로 우리에게 돌아온다.


슬픔은 나눌수록 반이 된다는 말이 있다. 그 말에 담긴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물론 상대의 위로가 때로는 시원한 물 한 잔처럼 갈증을 해소해주기도 하지만, 대개는 듣는 사람이 우리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봐 주기 때문이다. 그 제3자의 시선은 우리 스스로에게는 보이지 않는, 우리의 어깨너머를 보여준다. 그렇게 깨닫는다. 내가 생각한 만큼의 절반만 비통하면 되겠구나.


슬픔은 혼자서 느낄수록 자꾸만 곱절로 불어난다. 슬픔은 곱씹을수록 새로운 맛이 돋아나 그 달콤 씁쓸하고도 위험한 맛에 빠져들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에 대한 연민은 느끼면 느낄수록 결국 손해만 보는 장사가 된다. 오늘에 대하여 불평하고 내일에 대하여 한숨 쉬어봤자, 우리는 점점 더 부정적인 감정의 늪으로 깊이 매몰되어 갈 뿐이다. 마치 모래시계 속 모래알처럼, 그 늪은 우리를 서서히 집어삼킨다.


한 발자국만 물러서서 바라본다면 어떨까.


그 일은 아마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심각하지 않을 것이다.


설령 모든 것이 완전히 망가졌더라도,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분개하고 분노해서 무언가가 나아질 것이었다면, 우리는 이미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분개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분노는 결국 누구를 위한 분노였을까? 그건 마치 텅 빈 극장에서 혼자 고함을 지르는 것과 같다.


딱 한 발자국만 떨어져서 바라보자. 그러면 당신이 분노하는 데 쏟아부었던 그 엄청난 에너지가 아까울 것이다. 그 아까운 에너지로, 내일 그리고 모레부터는 조금만 더 새로워지는 일에 써보는 건 어떨까. 낡은 창문을 열고, 새로운 바람을 맞이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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