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추얼스토리-15
형식은 시작과 끝을 알려주어 우리가 예측을 가능하게 해주는 역할도 합니다. 시간이 너무 정신없이 빠르게 지나간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 느낌은 우리가 그냥 얼음판에서 주욱 하고 미끄러지는 것과 같습니다. 시간이라는 얼음판 위에서 멈추지 못하고 그저 미끄러져서 질주만 하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끝없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입니다. 한 번씩 내려서 물도 마시고 화장실도 가고 다른 놀이기구는 뭐가 있나 봐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 겁니다. 내 두 발로 내 의지대로 걸어가면서 잠깐 쉬기 위해 멈추기도 하고 그러다 다시 걸어가기도 하고 해야 하는데 중간 시간이 없으니 그냥 지나가기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머릿속에 남는 것도 없지요.
이렇듯 시간에서 미끄러지게 되면 진정으로 시간의 흐름 위에서 나의 속도대로 내 삶을 살기 어렵습니다. 역설적으로 멈추기도 해야 나아가기도 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에게 리추얼이라는 형식이 필요합니다. 형식은 시간을 구조화합니다.
형식은 내가 새로운 무언가를 끝낸다는 감각을 줍니다. 그리고 이제 내가 새로운 상태로 나아간다는 감각을 줍니다.
예를 들어 학교의 수업 시작종과 종료종이 없으면 우리가 시간을 구조화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까요? 시계가 뻔히 있는데도 시작종이 치는 것을 듣고 나면 ‘아, 이제 진짜 시작하는 구나.’를 느끼게 됩니다. 중료종이 안 치면 어떨까요? ‘어? 이거 지금 진짜 끝난 거 맞아?’ 하는 이상한 찜찜함이 듭니다. 이렇듯 수업종의 의식은 내가 시간을 예측 가능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내가 어디만큼 왔다고 인지할 수 있는 안정을 주는 거죠.
코로나 팬데믹때 다수 인원의 집합이 불가해서 학교에서 졸업식을 진행할 수가 없던 적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했을까요? 졸업식을 생략해야 할까요? 그럴 수는 없겠죠. 졸업식을 하지 않으면 졸업하는 기분이 안 들 겁니다. 많은 학교의 경우, 졸업식 가운과 학사모를 가정으로 대여하여 미리 사진을 찍게 했고, 당일 교실에서 하는 졸업식을 줌으로 송출했습니다. 비슷한 의미로 2010년대부터 일본에서는 이혼식이 성행한다는 sbs 뉴스(11.11.14.)도 있었습니다. 가족, 친지가 지켜보는 가운데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고, 결혼반지를 망치로 함께 부숨으로써 혼인 관계가 깨졌음을 공식화합니다. 이혼했으면 이혼한 건데 굳이 이렇게 이혼식까지 하는 이유를 이제는 아시겠지요. 새로운 인생을 출발한다는 선언이 마음에 안정을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형식은 우리의 삶은 그저 흘러서 미끄러져 가지 않게 잡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의 일상에도 리추얼이라는 형식을 적용한다면 우리는 그저 생존이 아닌 진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