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아우렐리우스 1-12

긴박한 용무를 핑계로 사교에 따르는 의무를 피해서는 안 된다

by 미키현 The ess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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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학파인 알렉산더는 어떤 긴박한 용무를 핑계로 사교에 따르는 의무를 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 아주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나는 바쁘다'라는 말을 연설이나 서신에서 자주 사용하지 말도록 나에게 경고했다.


'바쁘다'는 언어의 그림자


우리는 종종 '바쁘다'는 단어 뒤에 숨어버린다. 가족과의 약속을 은근슬쩍 미루거나, 미리 정해 두었던 친구와의 만남을 없던 일로 하거나, 예정되어 있던 어떤 모임에서 조용히 빠져나올 때. 물론 때로는 정말이지 어쩔 수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런 경우라면, 어쩔 수 없다.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이 맞다. 삶에는 때때로 피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일들이 엄습하는 법이다. 그런 경우라면, 물 흐르듯 상황에 몸을 맡기는 것 외에 다른 도리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바빠서 그래'라는 말은 하지 않는 게 어떨까.


정말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내 삶의 목록에서 상위에 배치될 가치는 어떤 형태를 하고 있을까. 잠시 멈춰 서서 그 자문 앞에서, 만약 당신이 똑같이 '바쁘다'는 말을 듣게 된다면, 그때도 당신의 마음은 흔들림 없이 평온할 수 있을까.


가령, 한 아이가 부모와 함께 주말의 놀이공원을 꿈꾸며 손가락을 걸었던 장면을 상상해 본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부모의 사정으로 약속이 무산될 위기에 처한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아이에게 어떤 말을 건네야 할까. '바빠서 못 간다'는 단호한 한마디는 삼켜야 한다. 그 대신, 이러저러한 불가피한 이유가 생겼다는 사실을 담담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낫다.


왜냐하면 '바쁘다'는 그 추상적인 단어가 아이의 마음에 도착하는 순간, 아주 미세하지만 예리한 균열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 우리 부모님에게는 나보다 더 중요한 무엇이 언제든 돌연 등장할 수 있구나.' 혹은 '부모님은 바쁜 순간, 나 아닌 다른 것을 선택할 수도 있겠구나.' 같은 종류의 이해할 수 없는 공허함과 서운함이 자리 잡을지도 모른다.


바쁘다는 이유와 핑계는 어느 관계에서든 좋은 뱡향의 뉘앙스는 아니며 미묘한 불협화음을 낳기 마련이다. 보이지 않는 얇은 막이 서로 사이에 드리워지기 시작하는 것처럼. 그러므로, '바쁘다'는 표현은 관계의 어휘 목록에서 가급적 덜어내는 편이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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